성제훈 국립농업과학원 수확후관리공학과장

생선을 손질해 고기에 열을 가하지 않고 신선하게 먹는 요리가 회(膾)이다. 따지고 보면 역사가 가장 오래된 음식 중 하나이다. 예전에는 어쩔 수 없이 날로 먹을 수밖에 없었다지만, 지금은 고급 음식이 생선회이다.

회는 날 것이라 맛을 잃고 상하기 쉽다. 회 뿐만 아니라 요리를 위해서도 재료의 신선도가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고등어회를 위해 고등어의 머리부근 어딘가에 침을 놓아서 기절시켜서 유통하는 기술이나 꽃게를 얼음물에 담가서 겨울잠을 자게 만들고 톱밥에 담아 가수면 상태로 운송하는 기술이 사용된다. 가수면 상태에서는 최소한의 호흡으로 신선도를 유지한 채로 유통기한을 늘일 수 있기 때문이다.


과일 유통에도 그런 방식이 쓰인다. 과일도 씨앗을 품은 생명체이기에 숨을 쉰다. 그 과일을 가수면 상태와 같이 호흡속도를 조절함으로써 유통기간을 늘이는 기술이 있다.


우리가 숨을 쉬는 공기에는 질소 78%와 산소 21%가 들어 있고 나머지 1%는 아르곤 등 기타 기체로 구성되어 있다. 사람이 산소를 들이마셔 생명을 유지하듯이, 과일도 산소를 들이마셔 씨앗의 생명성을 유지한다. 이때, 과일 주위의 기체 구성 비율을 바꿔 과일을 ‘기절’ 시키는 기술이 CA저장 기술이다.


CA 저장은 Controled Atmosphere의 약자로 공기를 구성하는 기체에서 산소 농도를 2%까지 낮추어 과일의 호흡을 조절하고 생리작용을 억제함으로써 유통기한을 늘이는 저장기술이다. 농촌진흥청에서는 그동안 외국 기술에 의존하던 대형 CA저장기술을 국산화해 장수군의 명품인 사과, 상주시의 명품인 감 등에 적용해 유통기한을 획기적으로 늘이는 성과를 거뒀다. 이 기술을 활용하면 과일의 신선도뿐만 아니라 단단함까지 그대로 유지할 수 있어 농산물 가격안정화는 물론 농촌에서 필요한 일손이 수확시기에 집중되는 현상까지 막을 수 있다. 이제는 가을에 딴 사과를 다음해 여름철에도 아삭하게 깨물어 먹을 수 있고, 감을 농한기인 겨울철에 짬짬이 곶감이나 홍시로 만들어 먹을 수 있다.


CA저장과 비슷한 듯 다른 기술이 MA포장이다. 오랜 기간 동안 품질을 유지하는 ‘저장’이 아닌 유통기간 동안 품질을 유지해야 하는 ‘포장’에 적용되는 기술이 MA포장(Modified Atmosphere)이다. 기존에는 필름 포장에 구멍을 너무 많이 만들어서 기체농도가 대기와 별 차이 없게 포장되거나 구멍이 없이 포장되어서 높아진 이산화탄소 농도 때문에 채소 맛이 변하고, 높은 수분 때문에 쉽게 상하거나 곰팡이가 피는 문제가 있었다.

이를 개선하고자 농산물의 호흡속도에 맞추어 포장지 윗부분에 기체가 드나들 수 있는 구멍을 만들어주고 수분은 통과하고 산소 같은 기체는 잡아주는 선택적 투과성이 있는 필름 사용하는 방법으로 개선하였다. 이렇게 채소를 포장해서 유통할 때 온도까지 낮춰주면 채소는 호흡량을 줄이고 생체활동을 거의 하지 않는 ‘기절’ 상태가 되어 싱싱함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농촌진흥청에서는 외국에서도 우리나라 채소를 싱싱한 상태로 맛볼 수 있게 하기 위해 상추, 시금치, 깻잎, 얼갈이배추 등 잎을 주로 먹는 채소와 풋고추, 애호박 등 열매 채소를 동시에 MA포장해 수출하는 데 성공했다. 기존 방식대로 상자에 포장한 상추는 20%∼30% 정도 물러졌으나, 새로 개발한 기술을 적용해 선박으로 싱가포르에 수출한 상추는 물러짐이 없었다. 시금치, 얼갈이배추, 열무, 풋고추와 애호박도 신선도를 그대로 유지했다.


상품 가치를 유지한 채 잎채소와 열매채소를 함께 선박으로 수출할 수 있게 되면서 중·장거리인 싱가포르에도 선박 수출이 확대될 전망이다. 물류비도 항공 수출의 1/6 수준이어서 한국산 채소류의 가격 경쟁력을 높이는 데도 많은 도움이 된다. 아울러, 선박 수출 시 큰 고민이었던 한 가지 농산물로 컨테이너를 다 채우지 못한 문제를 해결함과 동시에 한국산 채소류에 대한 해외 시장의 수요에도 부응할 것으로 기대된다.


공기가 늘 우리 주위에 있어서 고마움을 모르고 사는 것처럼, 농업 기술도 늘 우리 주위에 있어 과학기술의 소중함을 느끼지 못하는지도 모른다. 공기를 구성하고 있는 기체의 비율을 바꾸면 과일과 채소의 유통기간을 늘일 수 있듯이, 농업기술을 발전시키면 우리 삶과 식탁을 윤택하게 만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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