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제가 빌려서 농사짓고 있는 밭은 면적이 대략 470여 평 정도입니다. 사실 이정도 규모는 전적으로 농업을 생업으로 하고 있을 경우는 먹고 살기에는 부족한 넓이지만 저처럼 생업이 아닌 텃밭개념으로는 감당하기 힘든 규모이기도 합니다.


대부분 농촌이 고령화를 넘어 초 고령화가 되는 게 시간문제니 앞으로 땅은 있되 농사지을 사람이 없어 방치되는 농지가 점점 늘어날 건 불을 보듯 뻔한 일입니다. 하기야 저도 한 해한 해 몸 상태가 달라 올 농사 어떻게든 마치고 나면 내년에는 어디 작은 농지를 빌려 놀며 쉬며 해볼까 생각하고 있으니까 말입니다.


문제는 농지가격이 수요공급의 법칙과는 아무 상관없이 제멋대로라는 겁니다. 현재 거주하고 있는 마을이 유명관광지와 인접해 있어 그 프리미엄을 감안하더라도 밭이 평당 30만원을 호가하니 아무리 계산해 봐도 농사로는 수지타산을 맞출 수가 없고, 그렇다고 뭐 특별히 돈벌이가 될 조건도 없는데도 이 정도 가격을 부르니 매도하기가 쉽질 않아 보입니다.


토지 앞쪽으로는 이미 모텔 두 군데가 영업 중이고, 옆으로 나란히 철길이 달리니 입지조건이 좋아 보이지 않다는 게 제 생각이지만, 또 누가 알겠습니까 철길을 이용한 낭만카페라도 만들겠다는 이가 있다면 저와 반대되는 생각을 할 수도 있을 테니 말입니다.


어쨌든 얼마에 토지를 시장에 내 놓느냐는 건 주인장의 주관이니 그저 굿이나 보고 떡이나 얻어먹으면 그만이기 하지만 바로 나란히 인접한 밭은 주인장이 누군지도 모를 정도로 무관심해서 벌써 오래전부터 옆집에서 무상으로 농사를 짓고 있다니 너무나 대조적이긴 합니다.


제가 이 밭을 빌리는 대금으로 년에 20만 원을 지불하고 있으니 아마 동네사람들이 보기에 저는 호구 중의 호구라고 여길지 모를 일입니다. 하기야 전에 살았던 동해시에서도 집세 포함 연 임차료가 150만 원이었는데 나중에 토박이들로부터 뭘 그렇게 비싸게 줬느냐는 핀잔을 들은 적이 있으니 어딜 가도 호구신세를 벗어나질 못하는 모양입니다. 더욱이 오랫동안 거주할 욕심으로 집수리에 거금을 들였음에도 아무런 보상도 못 받고 오히려 보증금을 돌려  받을 때 다툼도 있었으니 참 지금 생각해도 어리석기 짝이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사실 밭이나 논을 빌려 농사를 짓는 일이 수지타산을 따지면 답이 없어 보이는 게 현실입니다. 농지은행 같은 기관에서 임대차 계약을 맺고 농사를 짓는 이들이야 그 규모가 상당하고 이미 상업적 이익을 염두에 두고 실행을 하지만 이렇게 아름아름 개인 간 거래는 나중에 따지기도 쉽질 않아 사전에 잘 판단해야 낭패를 보지 않는 법입니다. 어차피 밭이든 논이든 농사를 짓지 않으면 금방 황폐해지기 마련이니 농사지으려는 이가 있는 것만이라도 감지덕지해야 될 일이 아닌가라는 생각도 해보긴 하지만 세상만사야 제멋대로 움직이니 그저 생각만 할 따름입니다.


누구는 공짜로 밭을 쓰고 누구는 돈을 내는 세상이 살아 움직이는 세상의 모습이긴 합니다만 괜히 억울하다는 느낌이 드는 건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뭐 그렇다고 물릴 수도 없는 노릇이니 그저 열심히 풀과의 싸움에서 승리를 다짐할 밖에 다른 방도가 없긴 합니다.


지역마다 특성이 있고, 토지의 비옥도도 모두 상이하니 평당 얼마에 임차를 한다고 일률적으로 규정짓는다는 건 어려운 일이긴 하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납득될만한 기준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라는 게 제 생각입니다. 하기야 개인 간 거래에서 이러쿵저러쿵 간섭을 한다는 게 오히려 문제가 생길 수도 있으니 어떤 방식이 좋다고 결론을 내리기가 쉽진 않을 것 같긴 해 어려운 문제이긴 합니다.


이랬든 저랬든 제가 빌린 밭에는 매실 다섯 그루와 엄나무 여러 그루가 있어 그 과실에 대한 권리가 애매해 마음이 편하질 않았었습니다. 일단 임차료를 지급했으니 밭에 딸린 모든 부속물에 대한 권리가 제게 있음에도 주인장과 엄나무 순이나 나물 따위들을 나눠야 될 형편이 되니 괜히 마음이 불편해지는 건 욕심이 생겼기 때문일 겁니다. 좋은 게 좋은 거라는 평범한 진리를 내동댕이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건 바로 임차료를 지불했다는 갑의 마음이 들어서일지 모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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