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여름, 태풍 ‘콩레이’로 제가 살고 있는 동네 대부분이 침수돼 그야말로 난장판이 따로 없을 지경이었습니다. 자원봉사자와 저같이 피해가 없는 주민들 모두가 피해복구를 위해 뻘도 걷어내고 물에 젖은 가재도구들을 집안에서 끌어내고 옷가지 등도 세탁하고 젖은 집안을 말리느라 그야말로 온 동네가 정신없이 지낸 며칠이었습니다.


세탁기며, TV, 냉장고 같은 가전제품들도 침수되니 그냥 쓰레기가 됩니다. 몇 백 만원씩이나 주고 구입했다는 최신형 스마트TV도 수리하는 비용이 엄청나니 쉽게 엄두를 못 냅니다.


길가 한편에 쌓아 놓은 가재도구며 젖은 쓰레기더미가 산을 이룹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지자체 대응이 신속해서 쓰레기로 인한 악취 같은 2차 피해는 발생하지 않았다는 거지요.


어쨌든 마을회관에서 숙식을 해야 했던 주민들이 집으로 들어가기 위해 집안을 말리고 도배며 장판을 깔아야만 하는데 이도 지자체에서 지원을 해준다고 하니 예전에 비해 불편함이 덜해졌으니 다행이지요. 물론 지원시점에 대한 차이 등으로 불만과 불평이 아주 없었던 건 아닙니다.


피해를 입은 세대에 대한 조사가 끝나고 각 세대마다 수재피해 지원금으로 100만원이 지급됐다고 합니다. 사실 침수돼 못쓰게 된 냉장고 한 대 겨우 살 정도의 지원금이니 없는 것 보다는 낫겠지만 이게 별 도움이 안 된다는 볼멘 주민들 소리가 맞을 겁니다.


어쨌건 피해를 입은 주민들만 상처를 안고 가는 거지 시간이 지나면 그저 과거에 있었던 사건으로 지나쳐 버린 남의 일이 돼버리고 마는 게 현실입니다. 속으로야 가슴이 찢어지는 고통이 있어도 세월은 아무 일 없는 양 골목길 따라 무심히 흐르니까 말입니다.

반장이 문을 두드리며 마을회관으로 나오라고 일러줍니다.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니 시청에서 풍수해보험 설명회를 여니 모두들 모이라는 얘깁니다. 농작물피해를 보전해주는 보험은 알고 있었지만 주택에 대한 풍수해보험 얘기는 처음입니다. 태풍으로 인한 직접 피해를 당한지라 마을주민 대다수가 마을회관으로 모였습니다.


시청재난안전과 담당자가 설명하는 풍수해보험은 ‘국민들이 저렴한 보험료로 풍수해 피해를 보상받을 수 있도록 보험료의 절반 이상을 정부가 보조하는 정책보험’이고 자동차보험처럼 1년 단위로 갱신되는 보험이니 이번 같은 태풍피해를 입었을 때도 유용하니 들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겁니다. 거기다 단체로 가입하면 보험료의 10퍼센트가 감액되니 가구별 부담액도 1년에 4만원이 채 못 되고 일반보험처럼 보상받으려고 보험사와 밀고 땅기는 일도 없이 정부가 보상을 책임진다는 하니 이보다 좋은 보험이 없을 듯싶긴 하더군요.


보험이란 게 들 게 할 때는 온갖 감언이설로 꼬드기다가 막상 보상을 받게 될 시점에서는 이런저런 핑계로 소송까지 가야할 경우도 다반사인지라 선듯 동의하기가 쉽지 않긴 했지만 마당까지 밀고 들어왔던 거친 물폭탄을 생각하니 신청서를 작성하지 않을 수 없더군요.


저야 제 소유의 주택이니까 주택보험을 들어 만약의 경우 보상을 제대로 받을 수 있지만 문제는 세입자들의 경우입니다. 주택이 전파되거나 반파돼도 소유자는 거의 90% 보상을 받지만 세입자는 겨우 10%만 보상을 받을 수 있다니 보험가입에 대한 필요성이 높질 않습니다.


물론 세입자건 소유자건 보험 없이 풍수해로 피해를 봤을 때 지자체 재난지원금이 턱도 없는 금액이니 만약을 위해 보험가입을 하는 게 유리하긴 합니다. 예를 들어 주택면적이 80㎡인 경우 보험에 가입했을 경우 소유자는 침수가 됐을 때 270만원 정도 보상을 받고 세입자는 170만원 보상을 받을 수 있지만 무보험일 경우는 소유자나 세입자 공히 100만원 지원금이 전부이기 때문입니다.


일년 단위로 내야 하는 보험금이 아무 일 없을 경우 없어지긴 하지만 그래도 사람 일이란 게 알 수 없는 노릇인지라 깨알 같은 약관을 읽고 신청서를 작성해 제출하고 말았습니다. 물론 눈이 어두운 이웃을 위한 대필도 마다하지 않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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