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촌을 준비하면서 찾아보았던 이런저런 집들 중 지상권주택이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었습니다. 이런 형태의 집은 도시에서는 보기가 어려워서 과연 법적으로 거주하는데 문제가 없을 것인가 의심스러워 부동산에서 소개하더라도 영 믿음이 가질 않은 건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남의 땅에다 집을 짓고 권리를 주장하는 게 지상권인데 시골에서는 이런 집들이 흔해 늘 다툼이 일어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는지라 그저 살펴만 봤지 들어가 살 엄두가 나지 않은 것은 불확실한 권리 때문입니다.


지상권주택들도 그 형태가 매우 다양해 토지소유자가 개인부터 문중이나 법인체, 혹은 지자체까지 망라돼 있어 도지나 임대료 등도 그에 따라 정도의 차가 심한 편입니다. 법률적으로 지상권주택에 대한 권리가 30년으로 제한된다던지, 그렇지 않고 평생 살아도 된다던지 등 아직도 왈가불가할 수 있는 여지가 많은 권리임은 틀림없습니다.


동해시에서 임차했던 집을 떠날 때도 전국 방방곳곳 거의 안 가 본 곳이 없을 정도였고 물론 지상권주택에 대한 매매나 임차에 대해 가서 보고 접해 보기도 했습니다. 다 쓰러져가는 슬레이트집에서부터 살기에 전혀 불편함이 없는 좋은 집까지 너무도 다양해서 오히려 괜히 집사느라고 돈 많이 들이지 말고 적은 금액으로 지상권주택을 구입하는 게 낫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들 정돕니다. 지상권주택은 건평이 20평 내외가 대부분이고 매매가는 1천만 원에서 1천5백만 원이 평균이지만 때로는 5,6천만 원까지 부르는 경우도 있긴 합니다.


몇 달이나 돌아다니다 마음에 든다고 결정하고 살고 있는 이곳이 태풍 ‘콩레이’로 동네 절반이 침수되는 참사가 일어나서 알게 된 사실이 제집과 몇몇 집을 제외하고는 모두 지상권주택이라는 거였습니다. 땅주인의 허락 없이는 개축이나 증축을 할 수 없으니 옛날 흙집 형태는 물이 들어오면 그냥 주저앉게 마련입니다. 그러니 비가 새는 지붕도 루핑이나 천막지 등으로 덮고 무거운 돌이나 폐타이어 따위로 눌러놓는 게 최선의 방책일 수밖에 없습니다.


땅주인에게 내는 도지는 대개 일 년에 한 번 십 몇 만 원 정도가 공정가격처럼 돼 있어 지상권주택을 여러 채 구입해 세를 놓아 오히려 땅주인보다 수입을 더 올리는 이도 있으니 세상이 요지경이라는 말이 실감납니다.


땅주인으로서는 괜한 세금을 내야하고 재산권을 온전히 행사할 수 없으니 지상권주택이 눈에 가시 같은 애물단지입니다. 땅을 팔려고 시장에 내놓아도 사려는 이는 땅값에 주택 값을 또 별도로 내야 되니 매매가 성사되기 힘듭니다. 지그재그로 생긴 저의 집 앞마당에 접한 주택도 지상권주택이고 그 집 지붕 처마가 앞마당을 지나다니는데 자꾸 걸려 저 집을 매입해 헐어버리면 어떨까라는 생각은 언감생심 주택 값에 땅값에다 슬레이트집을 허무는 비용까지 생각하면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쓸데없는 공상에 불과합니다. 2백여 평이 될까 말까한 땅 위에 여러 채의 지상권주택이 있으니 땅주인이 분할해서 팔기도 어려우니 그저 세월 가기만 기다리는 게 상책일지도 모릅니다.


땅주인이야 속이 타든 말든 지상권주택 매매는 음으로 양으로 활발하게 이뤄지는 게 또한 현실입니다. 저렴한 가격으로 한 몸이든 가족이 함께든 쉴 수 있는 집을 마련할 수 있는 장점이 있으니까 말입니다. 문제는 이런 집들에는 대부분 노인들이 거주하고 있어 이번처럼 물난리 같은 재난이 닥치면 거주상태가 더욱 더 열악해지거나 아예 거주 불능 상태가 되기도 하지만 별다른 대책이 없다는 거지요.


물난리가 지나간 골목길은 언제 그랬냐는 듯 길가 감나무는 잎을 떨구고 진홍빛 열매를 맺고 있습니다. 물에 젖은 온갖 가재도구들과 쓰레기로 가득했던 골목입구도 이제는 깨끗하게 치워졌고 방바닥을 말리기 위한 보일러 소음만이 골목길을 채우고 있습니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빈집이 된 주택들은 을씨년스런 가을 햇살에 더 쓸쓸해 보입니다. 장성한 자녀들이 다시 돌아와 살 가능성마저 없는 집들은 결국 헐값에 팔리거나 세월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허물어지고 잡초만 무성해질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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