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칠구 농촌진흥청 국립원예특작과학원 연구관

 

이번 여름은 1907년 기상청이 생기고 난 이후 111년 만에 서울의 기온이 39.4℃까지 올라가는 등 폭염이 지속되었다. 이러한 기상이변으로 인하여 ‘대프리카’, ‘서프리카’라는 신조어가 생겨나기도 하고, 손으로 들고 다니는 휴대용 선풍기는 전년대비 420% 판매 증가를 보였다고 한다.

 

또한 8월 23일경 우리나라 중부서해안으로 상륙한 태풍 19호, ‘솔릭’은 기상청과 농업인이 우려했던 만큼은 아니지만, 일부 지역에서 침수와 토양유실 등 피해를 입혔다.


  이제 한낮의 따스한 햇볕을 피하고 나면 이른 아침과 저녁에는 찬바람이 불어와 옷깃을 스치는 가을이 시작되었다. 들판에는 누런 곡식들이, 과수원에는 붉고, 노란 빛을 띠기 시작한 과일들이 경쟁하듯 가을 하늘의 맑은 햇살을 받으며 자양분을 열매에 쌓아가고 있다. 수확의 계절에 하늘이 도와준다면 올해도 들판의 곡식과 과수원에 달린 과일을 소비자들은 풍족하게 먹을 수 있을 것으로 조심스럽게 예측해 본다.


  가뭄과 기록적인 폭염에도 불구하고 우리 모두는 풍년을 바라지만 농업인의 마음은 어떨까? 좋은 기술로 열심히 노력해서 많은 수확을 하여도 어떤 농업인은 돈을 많이 벌어 지속적인 영농이 가능하고 어떤 농업인은 돈을 벌지 못하여 부채만 늘어간다.


  미국 시카고대학의 노동경제학 교수인 베커(Gary Stanley Becker)는 소득을 창출하는 데 있어서 인간에 내재되어 있고 활용할 수 있는 인적자본(Human Capital)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노동의 양보다는 교육, 훈련, 정보 등에 의해 습득된 지식과 기술이 갖추어진 노동의 질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육체적인 노동도 중요하지만 정신적인 노동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아직도 대부분의 농업인들은 재배환경을 개선하여 생산량을 높이고자 시설투자를 하고, 작업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하여 성능이 우수한 농기계를 구입해야 돈을 많이 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농장에서 생산량과 품질을 높이는데 많은 시간을 보내고 투자를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금은 어떻게 고객을 관리하고, 판매할 것인가가 더 중요한 시대가 되었다.


  일본 아오모리현의 어떤 사과 농가가 태풍에도 떨어지지 않고 나무에 달려 있는 10%의 사과를 바라보았다. 발상의 전환으로 ‘떨어지지 않는 합격사과’로 명명하여 판매함으로 풍년 때보다 30% 더 많은 소득을 올렸다는 사실은 우리 모두가 잘 아는 이야기이다. 농사일을 하는 농업인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도입하고 차별화된 경영과 마케팅으로 위기를 넘기고 소득을 높인 사례이다.


  농촌진흥청에서 2016년도에 조사한 농산물소득조사 자료에 의하면 똑 같이 사과농사를 지어도 소득이 높은 농가는 10a당 6,747천원의 소득을 올리는 반면에 소득이 낮은 농가는 동일한 면적에서 648천원을 올려 약 10배의 소득 차이가 난다. 사과뿐만 아니라 가을배추는 11배, 시설수박은 4배, 고구마는 18배 상·하위 농가간의 소득 차이가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경영주의 경영과 마케팅 능력에서 차이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농업인이 생산에만 치중하여 돈을 벌던 시대는 지났다. 1인당 국민소득(GNI)이 3만불 시대가 되면서 농산물 시장은 다변화되었고, 소비자는 더 까다롭고 세련되어 가고 있다. 이제부터는 소비자의 거주지역, 연령과 소득수준, 라이프스타일 등을 세분화해서 맞춤형 상품을 개발하고 판매 전략을 세워야 한다.

 

농기계와 시설을 이용한 단순 농산물 생산자가 아니라 경영마케팅에 더 많은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 경영주로써의 능력을 발휘해보자. 특히 쌀과 같은 식량작물보다 판매처가 다양하고 소비자의 선택폭이 훨씬 큰 원예작물에서는 경영주의 경영 및 마케팅 능력에 따라 더 많은 경영성과의 차이가 나타날 것이다.


  유난히도 무더웠던 올 해의 여름날 들판과 과수원에서 노력한 땀방울을 통하여 얻은 풍성한 열매가 경영·마케팅 기술로 보상을 받는 가을이 되기를 바란다.

저작권자 © 농업인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