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부지라는 말은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린아이를 일컫는 말이긴 하지만 농부가 농사철을 제때 챙기지 못해 농사를 망치는 경우에도 해당되는 말이라고 합니다.


이럭저럭 농사를 시작한 지도 6년여가 됐는데도 여전히 농사가 어렵긴 처음이나 매 한가지입니다. 하기야 뭐를 심어 가꾸든 1년에 단 한번만 해보는 거니 다음 해에는 언제 어떻게 했었는지 정확하게 기억이 나질 않아 인터넷도 뒤지고 핸드폰에 저장된 지난 해 일정표도 살펴보지만 그만 철을 놓치기 일쑤입니다.


옥수수와 고구마는 집사람이 워낙 좋아해 반드시 심고 가꿔야 할 최우선 작물입니다. 문제는 이들이 고라니나 멧돼지에 의한 피해가 커 심고 나서도 제대로 수확하기가 쉽지 않다는 겁니다. 그래서 올해는 옥수수를 심기 위해 일찌감치 밭 끝부분에 퇴비도 충분히 넣고 비닐로 멀칭까지 해 길게 이랑을 두 줄 만들어 놓았습니다. 이곳에 이사 와서 두 번째 농사를 짓는 거라 땅이 어떤지 확실치는 않았지만, 그래도 워낙 풀이 무성했던 곳이라 그저 무난하게 평년작은 올릴 거라고 믿었었습니다.


봄철 산비둘기를 비롯한 물까치와 꿩 같은 대형 조류들이 파종한 씨앗을 죄 먹어 치우니 할 수 없이 육묘를 하기로 하고 좀 이르게 포트에 파종을 했고 햇볕 잘 드는 베란다에서 그만 웃자라 버리고 말았습니다. 영양이 부족한 포트 상토에서 견딜 수 있는 기간과 밭에 정식할 타이밍을 맞춰야 됨에도 너무 일찍 자라버린 모종을 좀 이르다싶지만 어쩔 수 없이 만들어 놓은 밭에 정식을 해야만 했습니다. 문제는 날씨였고 나중에야 알아차렸지만 밭이 너무 척박하다는 거였습니다.


4월 중순이 지나 날이 따뜻해지기 시작했지만 동해안 날씨가 이 시기에 매우 불순하다는 걸 염두에 두지 못했으니 누굴 탓하겠습니까. 기온이 곤두박질치고 거의 영상 10도 안팎으로 오르락내리락하니 모종인들 견딜 재주가 없겠지요. 황량한 벌판에서 찬바람을 맞으며 버텨주던 모종이 이번에는 6월 극심한 가뭄에 잎이 말려들어가며 누렇게 뜨기 시작하는 겁니다.

옆집 옥수수는 화학비료 덕에 푸르고 싱싱하게 잘도 자라건만 우리 집 옥수수는 그 집 절반에도 키가 미치지 못하니 방법이 없습니다. 하루에도 몇 차례씩 물을 길어다 부어주었지만 어느새 꽃대가 올라오고 이삭은 피질 못하니 옥수수 농사는 끝장이 난 겁니다.


이삭과 꽃대가 타이밍을 맞춰 꽃가루를 뿌려줘야 열매가 맺히는 법칙에 어긋났으니 꽃대에서 꽃가루가 다 떨어지고 말라갈 즈음에 이삭이 패니 그게 수정이 될 턱이 없겠지요.


잘한다고 일찍 모종을 내고 아침저녁으로 보살폈지만 결국은 철부지 농사꾼의 한계가 거기 까지라는 걸 뼈저리게 느끼고 말았습니다.


그래도 그나마 다행인 것은 100여 개 모종을 심고 나서 혹시 잘못될까 다시 몇 군데 직파한 곳에서 자라기 시작한 옥수수는 장마가 시작된 덕에 건강하게 자라주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사실 육묘해서 정식하는 것 보다 바로 직파해서 자라는 게 더 생육이 빠르다고 하는데 새들 등쌀을 이기기가 어려우니 육묘해서 옮겨 심을 수밖에 없는 게 현실입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직파한 옥수수가 워낙 수량이 적어 여름 옥수수를 심기로 하고 종묘상에 들려 가격을 보니 겨우 50알 들어있는 흑찰옥수수 한 봉지가 무려 4천원이나 합니다.


뭐 그래도 어쩝니까. 집사람이 심어야 된다며 두 봉지를 사 왔습니다. 덕분에 다시 땅이 좋은 곳을 찾아 여기저기 이랑을 만들고 퇴비를 넣고 멀칭은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새들도 봄철이 지나면 파먹을 씨앗이 없는 걸 안다고 해서 그냥 모종내지 않고 직파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장마가 끝나갈 무렵 직파한 옥수수는 120알 가량 심었음에도 발아된 것은 불과 30여 개에 불과해 씨앗이 불량한 것이었거나 그사이 새들의 습격을 받았었거나 어쨌든 또 실패한 건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하늘도 무심하지 폭염까지 덮치니 견뎌낼 작물들이 없습니다. 겨우 발아된 옥수수도 결국 무지막지한 햇볕아래 견디지 못하고 시들어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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