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솔릭’이 한반도에 어마어마한 에너지를 쏟아 붓고 스러졌다. 미크로네시아가 제출한 이름 ‘솔릭’은 전설속의 족장을 칭한다. 우리는 족장 ‘솔릭’에 관해 잘 모르나 이번 태풍으로 상상컨대 그의 위세가 대단했을 것이라는 짐작이다. 팔월 하순 제19호 태풍 ‘솔릭’이 한반도를 어슬렁거렸다면 20호 태퐁 ‘시마론’은 일본 열도를 할퀴고 지나갔다. 필리핀이 이름을 지은 ‘시마론’은 야생 황소를 뜻한다.


솔릭은 근래 발생했던 여러 태풍과는 ‘급’이 다른 태풍으로 알려지면서 일찌감치 두려움을 불러왔다.

 

국가태풍센터를 필두로 각 방송사들은 태풍의 진로를 실시간으로 알리며 피해를 막기 위해 철저히 대비할 것을 당부했다. 태풍은 강풍과 폭우 등의 직접적인 위협과 홍수, 해일과 같은 간접적인 재난을 몰아쳐오기 십상이다. 가능한 한 모든 대비책을 세운다지만 시시각각 알 수 없는 태풍의 향방에 따라 타격은 불가피하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고 했든가, 태풍은 사라져도 그의 흔적은 생생하다. 돌풍이든 폭풍이든 바람의 수명은 길지 않다. 존재감도 미미하다. 기껏해야 요란이나 회오리로 연명한다. 따로 이름도 없다.

돌풍과 태풍은 하루살이와 사람에 비견할 수 있을까? 태풍은 수명도 길고 여느 바람과 달리 이름을 붙여 그를 기린다. 2002년 팔월에 몰아친 ‘루사’는 246명이 사망하거나 실종하는 큰 인명피해와 5조 원이 넘는 재산피해를 기록했다. ‘루사’로 쓰고 ‘악몽’으로 읽힌다. 역대 피해기록을 갈아치운 ‘루사’는 결국 퇴출돼 ‘누리’로 대체됐다.


태풍은 일주일 이상 지속될 수 있으므로 같은 지역에 동시다발로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혼동을 피하기 위해 이름을 붙이게 됐다. 이름붙이기는 몇 단계 과정을 거쳤다. 처음에는 번호를 붙였다. 1천 명 넘게 인명피해를 낸 1923년과 1936년의 태풍은 각각 2353호, 3693호였다. 태풍에 이름을 붙이기 시작한 이들은 호주 예보관들이었다고 한다.


호주 예보관들의 작명은 위트가 있다. 그들은 자신이 싫어하는 정치가의 이름을 붙였다. 예컨대 싫은 정치인의 이름이 ‘앤더슨’이면 태풍에 이름을 붙여 “현재 앤더슨이 태평양 해상에서 헤매고 있습니다” 또는 “앤더슨이 엄청난 재난을 일으킬 것으로 보입니다” 하는 식으로 예보를 했다. 이후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공군과 해군에서 공식적으로 이름을 붙이기 시작했다. 이들은 자신의 아내나 애인의 이름을 사용했다. 그렇게 1978년까지 여자 이름을 쓰고 이후에는 남녀 이름을 번갈아 사용했다.


태평양 서북부에서 발생한 태풍(typhoon)의 경우 1999년까지 미국 태풍합동경보센터에서 정한 이름을 붙였다.

이듬해 태풍위원회는 아태지역 국가와 국민들의 관심을 이끌고 경계를 강화하자는 뜻에 따라 미국 일방의 서양식 이름을 버리고 태풍위원회 14개 회원국의 고유한 이름을 제출받아 순차대로 쓰기 시작했다. 나라별로 열 개씩 이름을 받아 모두 140개를 쓰는데, 한 조에 나라별 이름 두 개씩 28개를 배치하는 식으로 다섯 조를 짰다. 올해 20호 ‘시마론’ 다음 21호 태풍은 우리나라가 낸 ‘제비’가 된다.


태풍은 적도 부근에서 탄생해 중위도로 에너지를 옮긴 뒤 꺼진다. 태풍의 숙명이다. 위도 5도에서 25도 사이, 수온이 섭씨 27도 이상인 열대 해상에서 발생한 바람이 태풍으로 성장한다.

태풍은 그 규모가 다를 뿐 열대 요란, 열대 폭풍과 함께 열대 저기압의 한 가지 현상이다. 공기 밀도가 낮은 저기압 지역에는 상대적으로 기압이 높은 사방으로부터 바람이 밀려오게 되고 이 바람이 치밀어 오르다 지구자전에 따라 회전력이 붙어 소용돌이가 된가. 그 규모가 거대하면 태풍이다.


그리하여 태풍은 양면성을 띤다. 태풍은 강한 바람과 큰비, 홍수와 해일 등 지구라는 ‘과일’에 작지 않은 생채기를 내기 일쑤다. 인명피해와 재산피해는 예상을 초월하고는 한다. 뿐만 아니라 사람의 왕래와 물류를 불가능하게 하고, 애써 키운 농작물에 몹쓸 짓을 하고, 고기잡이 등 인간의 생산 활동마저 막고, 아이들이 학교에 가지 못하게 하는 등 일상을 파괴한다.

반면 태풍은 수자원과 에너지를 옮겨 물 부족 현상을 해소하고 지구상의 기온 균형을 유지하며, 바닷물을 뒤섞어 순환함으로써 바다 생태계를 건강하게 만들기도 한다.


사실 태풍의 양면성을 논하면서도 우리는 현실적인 문제에 봉착한다. 태풍은 그 순기능에도 불구하고 인류에게 막대한 해를 일으키기 때문에 대비하지 않으면 안 된다.

과일 등 농작물 보호조치를 취하고, 용수로와 배수로를 보수하고, 비닐하우스와 인삼재배시설 등을 결박해두고, 산사태나 둑이 무너질 만한 곳에 대해서 적절한 방지책을 마련하고, 침수로 인한 감전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잡도리하는 등 농촌지역의 태풍 대비는 피해 방지와 최소화에 있다. 일부지역은 태풍이 몰아올 비로 해갈할 수 있기도 하다. 비단 농촌뿐 아니라 도시, 해안지역의 방비책도 허투루 다룰 일이 아니다.


태풍은 지구에 꼭 필요한 프로그램이다. 즉 인류에게도 태풍은 자연스런 일상, 없으면 곤란한 도구인 것이다. 태풍이 지구를 가꾸듯 우리는 스스로를 가꿀 ‘태풍’을 바라는 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는 가끔 태풍과 같은 존재를 갈망하지 않을까, 무미건조한 일상에 일대 혁신을 꿈꾸듯 스스로 태풍을 키우고 있지는 않을까, 저 미지의 족장 ‘솔릭’을 단초 삼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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