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돈 농촌진흥청 국립농업과학원 기획조정과장

입추가 지나고 모기 입이 삐뚤어진다는 처서도 지났건만 낮에는 여전히 여름 날씨다. 폭염이 지나 숨통은 트였으나 늦더위는 10월까지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길고 긴 더위와 함께 여름철 불청객으로 손꼽히던 식중독 주의 기간도 길어졌다.


차라리 한여름이라면 탈이 날까 꼬박꼬박 냉장고에 음식을 보관했을 텐데, 아침저녁 선선한 바람에 걱정과 염려도 누그러드나 보다. 그러다 보니 요즘 같은 시기 냉장고에 넣지 않은 음식을 들고 먹을까 버릴까 고민해 본 경험, 한 번 쯤은 있을 것이다.

킁킁 냄새를 맡아봤는데 냄새마저 멀쩡하면 고민은 더욱 깊어진다. 상한 냄새라도 훅 하고 올라오면 고민이나 안 할 텐데. 냄새가 괜찮아 맛있게 먹은 후 탈이 나서 고생해 본 사람도 있을 테고, 아무렇지 않게 넘어가 지금도 음식 보관을 소홀히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냄새가 멀쩡하다고 해서 음식 속까지 멀쩡한 것은 아니다. 식중독균 증식 정도를 알아보는 미생물성장예측모델에 따르면 36도에서 2,630마리였던 균은 1시간이 지나면 9,300마리, 3시간 후에는 5만 2,000마리로 급증한다. 4시간이 경과하면 37만 마리까지 불어난다.

식중독을 일으킬 수 있는 균의 양인 10만 마리를 훌쩍 뛰어넘는 양이다. ‘오, 냄새 괜찮네!’ 하고 한 입 먹는 순간, 몸 속에서는 비상을 알리는 빨간불이 번쩍번쩍 켜질 것이다.


그래서 본격적으로 날이 더워지는 6월부터 실온에 오래 둔 음식을 먹으면 안 된다는 뉴스나 기사가 매일매일 쏟아진다. 덤으로 ‘잘 익혀 먹을 것’, ‘손을 잘 닦을 것’ 등의 정보와 함께. 여기에 한 가지 주의사항을 덧붙인다면 바로 ‘농산물 안전하게 먹기’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병원성대장균 식중독을 일으키는 주요 식품으로 채소류가 34%로 가장 많았고, 육류 16%, 김밥 등 복합조리식품이 3% 순으로 나타났다.

흙에서 자라는 농산물은 생산이나 수확, 유통과정에서 다양한 미생물에 노출될 가능성이 큰데다 육류, 해산물과 달리 가열 조리하지 않고 섭취하는 경우가 많아 식중독 위험도 높은 것이다. 실제로 2011년 미국에서는 식중독을 일으키는 원인균 중 하나인 리스테리아균에 감염된 멜론 때문에 28개 주에서 식중독이 발생했으며, 33명이 목숨을 잃었다. 같은 해 유럽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장출혈성대장균의 경우, 새싹채소와 오이가 원인으로 지목된 바 있다.


농촌진흥청에서는 소비자가 안심하고 농산물을 구입할 수 있도록 GAP 실천 기술을 개발해 보급하고 있다. GAP는 농장에서부터 식탁까지 농약, 중금속, 식중독균, 곰팡이독소 등 유해한 물질들이 농산물에 잔류하지 않도록 농산물을 깨끗한 환경에서 위생적으로 관리하는 제도다.

정부는 안전 농산물 공급 확대를 위해 2022년까지 GAP 인증 농가를 전체 농가의 25% 수준까지 늘릴 계획이다. 지난해에는 많은 사람이 이용하는 구내식당, 식품가공업체, 학교급식소 등에서 쉽게 활용할 수 있는 대장균 간편 검출기를 개발해 보급했다. 기존 검출 장비는 가격도 비싸고 대장균 확인까지 3~4일 정도 걸렸으나 이 장치는 12~18시간이면 대장균 오염여부를 알 수 있고, 장비 비용도 낮은 편이라 현장에서 부담 없이 활용 가능하다.


선진국인 미국에서도 먹거리 안전사고 가운데 식중독 사고가 2위를 차지하고, 매년 수천 명이 목숨을 잃는 등 큰 문제가 되고 있다. 10월까지 긴긴 더위가 예보되고 있는 상황에서 긴장의 끈을 놓지 말고 건강한 밥상, 건강한 생활을 위해 국민은 먹거리와 개인위생에, 우리 농촌진흥청은 연구 개발에 힘써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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