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자는 사서 쓰는 것이 아니라 이어나가는 것 이라고 생각합니다.”

 

경기도 고양시 우보농장 이근이 대표는 10여년전 토종씨앗으로 농사를 짓기 시작해 현재는 토종벼 120여종을 키우고 있다. 처음에는 토종씨앗을 구하러 다니다가 우연히 토종벼를 알게 됐고, 토종볍씨 20가지를 심어본 것이 지금에 이르게 됐다.


“토종벼는 다수확, 대량생산이 잘 안됩니다. 반대로 말하면 토종벼는 다수확, 대량생산이 되는 계량종자에 밀렸다고 할 수 있습니다. 토종과 계량은 농법에서부터 차이가 확연하게 나타납니다. 참고로 토종은 모내기와 벼베기도 손으로 하고, 탈곡도 홀테도 합니다.”
그는 토종벼는 소규모 농사로 대부분 이뤄지기 때문에 이에 대한 시장이 열려야 하고, 적합한 시스템이 구축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 소비자들이 쌀을 선택하는 다양성 측면에서도 토종벼는 가치가 있다고 설명했다.


‘흑조’, ‘흑갱’, ‘돼지찰’,‘버들벼’같은 토종벼 종자는 현재 국립농업유전자원센터에 450여종이 보관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과일이나 채소처럼 쌀도 품종에 따라 맛이 다 다릅니다. 토종과 계량은 물론이고 지역별 특성이 강한 토종 안에서도 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다시 말해서 소비자들이 내 입맛에 맞는 쌀을 골라 먹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맛이 다양해지면 문화가 다양해지는데 작은 씨앗 하나가 세상을 바꿀 수 있습니다.”


그에 따르면 토종벼는 일제강점기 1,451종에 이를 정도로 지역마다 특색이 있었고, 이름도 생김새나 까락의 길이 등에 따라서 붙여졌다고 한다. 일례로 영서지방에서 주로 재배했던 것은 ‘돼지찰’은 붉은 돼지의 등처럼 보인다 해서 이름이 붙여졌고, 버들벼는 이삭이 능수버들처럼 휘어 있어서 그렇게 부른다고 한다.


“쌀 한 톨 키우는데 사람 손이 88번이 갑니다. 쌀 미(米)자를 풀면 팔(八)과 (八)이 되는데 조상들이 그냥 붙인 이름은 아닌 것 같습니다. 종자를 받고, 심고, 베고를 손으로 다 하면서 귀하게 키운 것인데 지금은 기계화가 되다보니 대부분 8번으로 끝이 납니다. 관행은 관행대로, 토종은 토종대로 가치를 인정받아야 합니다.”


이와 함께 그는 토종은 보존과 나눔으로도 큰 가치가 있지만 여기에 더해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먹을 수 있도록 해야한다고 강조한다.


“1평에 토종벼를 심으면 1,000평에 심을 수 있는 종자를 얻습니다. 하지만 이것을 사람들이 먹어야 그 의미가 더 커진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토종쌀 테이스팅 워크숍을 주기적으로 열고 있고, 도시민들과 소통하면서 토종벼를 재배하고 확대하기 위한 가능성을 연구하고 있다.”


토종벼를 관행 농업인들 재배하는 것은 현실성이 떨어지는 측면이 있다. 그래서 토종벼도 연속성도 다른 토종작물처럼 지역의 소농이나 도시농부들에게 달려 있다.


“우선은 토종벼에 대한 관심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소비자가 생산자의 감정과 철학을 공감할 때 토종의 가치는 더 커질 것으로 생각합니다.”

 

■ 이근이 대표가 추천하는 토종 <북흑조>


북방지역의 거친 모습이 묻어나는 벼

 

“북흑조는 북방 지역의 풍토를 닮아 개성이 아주 강한 토종벼입니다.”


평안남도의 주요 재래종인 북흑조는 벼의 모습이 북방 지역의 강인한 풍모를 연상시킨다. 이삭이 검고 토종벼 가운데 키가 가장 큰 품종 중 하나로 마디까지 튼실하게 이어져 있어 잘 쓰러지지 않는다. 또 까락이 없다. 색은 이삭이 팰 때부터 흑자색을 띠고 볏대 속의 색은 자주색을 띈다. 볏대 마디에 검은 띠를 두른 것처럼 선명한다. 현미색 또한 진녹색을 띠어 백미와 어울려 밥을 지으면 맛이 더 해진다. 키는 다 자라면 최대 180cm에 이른다고 하고, 특이하게 쌀은 녹색이다.


특히 지난해 11월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 때 그는 직접 농사지은 쌀 ‘북흑조’ ‘흑갱’ ‘자광도’ ‘충북흑미’ 등 4종을 제공해 큰 화제를 모았다. 당시 북흑조와 흑갱은 북방지역을, 자광도와 충북 흑미는 남방지역을 대표해 화합을 기원했다.


또 최근에는 토종벼 재배 관련 프로그램이 다양하게 열리는데 이 대표 역시 도시민들과 모내기, 김매기, 벼베기 등을 할 때 1년에 8차례 정도 만나고 있다.
여기에다 매년 농업인, 소비자, 요리사 등을 초청해 토종쌀 테이스팅 행사를 열고, 토종쌀의 가치를 알리고 있다.


“농업인들 마다 각자 선호하는 벼가 있듯이 토종벼도 마음에 드는 벼가 있어요. 저는 북흑조를 좋아하는데 이 벼는 야생성이 강한데 수 천년간 북방 지역의 거친 자연환경에서 살아남은 벼에요. 앞으로 토종벼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으면 좋겠고, 무엇보다 농법과 맛의 다양성 측면에서도 토종벼 재배가 활성화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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