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덥다 덥다해도 이런 경우는 처음인 것 같습니다. 작년, 그리고 재작년 일정표를 들여다봐도 그저 며칠 정도 덥다가 말았는데 이번은 정말 모든 걸 태워버리듯 태양이 이글거리니 급기야 초열대야라는 생소한 용어까지 등장하게 된 겁니다.


사람이 견디기 어려운 뜨거운 날씨에 밭작물이라고 온전할 리가 없습니다. 7월 중순 이후부터 비 한 방울 내리지 않아 그동안 견뎌내던 작물들도 말라비틀어지기 시작합니다. 새벽녘에야 겨우 손수레에 물통 몇 개 싣고 밭으로 나가 주전자로 목마른 옥수수나 고추, 토마토, 오이에게 물 한잔 건넬 뿐이니 저도 힘들고 작물들도 성에 차지 않습니다.


철길 너머 높은 산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을 때는 그마나 뭔가 할 수 있지만, 일단 햇살이 비치기 시작하면 금방 온몸이 땀으로 목욕을 할 정도가 되니 철수하는 게 상책입니다. 


오후에 어떻게든지 나가봐야지 마음먹고 밭으로 나가봤지만 감당키 어려운 열기에 그만 한 시간도 버티지 못하고 온몸이 땀으로 젖어 빨래 감만 늘릴 뿐이니 아예 포기하고 맙니다.


겨우 심어놓은 작물들도 이 지경이니 마지막으로 심어야 할 들깨는 어쩌나 노심초사하면서 일기예보에 온 신경을 쏟아 살피지만 비 온다는 소식도 기온이 떨어진다는 예보는 없으니 답답할 노릇입니다.


장마가 시작되기 전 들깨모종 밭을 만들어 꽤 넓은 면적에 파종했건만 어찌된 일인지 단 한 개도 발아되지 않고 전멸해버렸으니 기가 막힐 따름입니다.


새들이 파먹었는지 개미들 식량으로 공급됐는지는 미스터리지만 어쨌든 들깨는 심어야 돼 종묘상에서 200구 포트 한 판에 8천원이나 주고 2판을 사서 심기는 했지만 빈 밭을 채우기에는 어림도 없는 수량이어서 직파는 포기하고 육묘를 해 보기로 했습니다. 포트의 크기에 따라 담겨지는 상토 양이 차이나고 그로 인해 모종이 자라는데도 결정적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종묘상들이야 작은 포트에서도 잘 길러내지만 제 실력으로는 어림도 없는 일이니 그동안 모아두었던 사이즈 큰 포트를 전부 동원해 파종을 했습니다.


문제는 생각지도 못한 폭염과 가뭄이 닥쳐왔다는 사실입니다. 집사람이 매일 하루에도 서너 번씩 물을 공급해주며 정성을 기울인 들깨모종은 튼실하게 자라났지만 도저히 모종판을 들고 밭으로 나가 작업할 엄두가 나질 않을 정도니 이 일을 어찌한단 말입니까.


새벽녘에 잠깐 기온이 내려갈 때 심을까 생각했지만 하루 종일 엄청난 햇살을 견뎌낼 힘이 없을 거라고 판단하고 해가 질 무렵 일단 100여 포기 모종을 들고 밭으로 나갔습니다.


줄을 띄우고 적당한 간격으로 구덩이를 파고 물을 듬뿍 부어 메마른 땅에 인사를 합니다. 다시 그 위에 물을 더 붓고 모종을 놓고 마른 흙으로 줄기까지 덮어주면 한 구덩이가 끝납니다. 이러니 시간은 더 걸리고 금방 해가 져 사방이 캄캄해져버립니다. 핸드폰 조명 불빛을 비추며 심어보지만 결국 다 심지도 못하고 일어서고 맙니다.


제법 자란 모종들만 골라 저녁 무렵 정식하는 일이 며칠째 계속됩니다. 저녁에 심었다 해도 다음 날 그 뜨거운 햇살을 고스란히 받아야 할 모종들이 힘겹게 버티고 있습니다. 사람이라고 별다르겠습니까. 땀으로 목욕하는 아침저녁에 그만 힘이 빠지고 손가락 하나 움직이기도 싫어집니다.


여름에 찾아오는 손님이 호환마마보다 무섭다더니 왜 그런지 이해가 갑니다. 가스레인지 불을 붙여야 뭔가 먹을 걸 만들 텐데 불이 무섭습니다. 물도 끓여먹기 힘들어 생수를 사다 쟁겨 놓았습니다. 사람이야 에어컨 켜고 어떻게 하든 버틴다 해도 이 불볕에 심어놓은 모종들이 과연 살아남을지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나오질 않습니다. 이래저래 농사짓는 일은 점점 더 힘들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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