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짓는 이들에게 잡초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서는 이름조차 불리지 않고 그저 없애버려야 할 귀찮은 존재일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어떤 이들은 세상에 잡초는 없다고 말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이상향을 꿈꾸는 특별한 농법에서야 가능한 판단일 겁니다. 극단적 친환경적 농법에서야 잡초든, 씨를 뿌린 작물이든 모두 다 생명체고 나름 서로 공존해야 할 이유가 있다고 여기니 당연히 잡초라는 개념이 있을 수가 없겠지요.


이랬든 저랬든 저같이 평범하고 전문 농사꾼도 아닌 얼치기 농부로서야 잡초는 잡초에 불과할 뿐이고, 조그만 틈만 보여도 어느새 토지를 점령하는 무적의 침입자이니 잠시만 게으름 피워도 그 결과는 참담할 지경이 되니 한시도 마음을 놓을 수가 없습니다.


모종을 사다 심는 경우는 덜 하지만 씨앗을 직파해서 기르는 경우에 처음 올라오는 싹이 내가 뿌린 씨앗 싹인지 아닌지 헷갈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옥수수를 심은 곳에서 올라오는 잡초는 거의 옥수수 새싹을 닮은 잡초가 올라오고, 들깨 파종한 밭에서 올라오는 새싹도 처음에는 들깨와 그 모양이 똑같아 뽑아내지 못하고 한참동안 기다려 본 후에야 잡초인 걸 알게 됩니다. 이러니 잡초를 솎아내는 일이 더 힘들어질 수밖에요.


작년 봄에 밭 가장자리 1/6정도 면적에 도라지 씨를 뿌려 놓았었습니다. 풀 잡는 일도 고되고 손도 별로 가는 일이 없는 작물인지라 그냥 뿌려놓고 기다리기만 하면 나중에 도라지 꽃밭이라도 구경할 요량이었지만 어디 세상일이 제 마음대로 되겠습니까. 미처 도라지 새싹이 돋아나기 전에 바랭이를 비롯한 온갖 잡초들이 경쟁이라도 하듯 밭을 덮어버려 결국 정글 같은 풀밭이 돼 올 봄 이 잔해들을 치우느라 고생이 막심했었습니다. 더욱이 옆집이 친절하게 경운기로 로터리까지 쳐 줬으니 아예 도라지는 구경조차 못할 거로 마음먹고 있었는데 이게 웬일입니까. 작년에 한두 개 살아나 있던 도라지는 물론 여기저기 새싹들이 돋아나고 있어 그 끈질긴 생명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문제는 도라지 새싹과 거의 구별을 할 수 없는 풀이 있다는 겁니다. 처음에는 그게 전부 도라지 새싹인줄 알고 야 정말 경운기로 갈아엎어도 이렇게 살아나니 이게 정말 웬 떡인가 싶었습니다. 한 달쯤 지나고 나서야 이게 다른 모양으로 자라는 걸 알게 돼 정말 어처구니가 없더군요. 진짜 도라지 사이사이에 이 가짜 도라지들이 자리 잡고 있으니 이걸 일일이 뽑아내는 일이 얼마나 짜증스러운지 그만 밭을 확 밀어버리고 싶을 지경이었습니다. 진짜와 가짜를 솎아내다 보면 어느 게 진짜고 어느 게 가짠지 헷갈려 진짜 도라지를 뽑아버리는 일도 생기니 이래저래 자신의 어리석음을 탓할 밖에 다른 도리가 없습니다.


부추 심은 곳에 자라는 바랭이는 제가 부추인양 위로 자라 베어 먹을 때 잘 보고 솎아내야지 그렇지 않음 바랭이 잎을 부추로 알고 먹기 십상입니다. 바랭이야 옆으로 번지는 게 제 속성이건만 환경에 적응해 위로도 솟구치니 정말 풀들의 생존전략은 오묘하기까지 합니다.


5월 잦은 비로 노지에 심은 작물들이 그런대로 자라고는 있지만 워낙 날씨 변화가 롤러코스트를 타는 것 같아 냉해를 입기도 하니 어떤 때는 바람 세게 부는 날 밭에 나가보면 안타깝기까지 할 정돕니다.


인터넷과 전통장에서 어렵게 구해 심은 감자밭은 워낙 잡초가 무성했던 곳이어서 그런지 괭이 삽이나 싹쓸이 호미로 이랑 주위와 고랑에 올라오는 잡초를 3일 간격으로 긁어내도 도로아미타불 입니다. 언제 긁어냈느냐 싶게 지면을 가득 채우고 올라오는 잡초에게 두 손 두 발 들어야 될 판이지만 올해는 끝까지 이놈들과 정면대결을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또 올봄처럼 개고생을 해야 되니 말입니다.


사람이 기르는 작물과 비슷한 모양으로 생존하든, 끊임없이 새싹을 돋아내는 무한반복 작전이든 사람이 이 풀들을 완전히 없앤다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그저 어찌할 도리가 없을 때까지 열심히 어린 잡초를 긁어내는 게 현재로서는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입니다. 오늘도 싹쓸이 호미자루를 단단히 잡고 전투에 임하고자 밭으로 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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