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인들이 불안에 떨고 있다. 대형태풍이 접근한다는 소식도, 값싼 외국 농산물이 밀려온다는 뉴스도 아니다. 불안감을 조장하는 것은 바로 제도다. 농약허용물질목록관리제도, 일명 피엘에스(PLS)다. 가렴주구도 혹세무민도 아니지만 가렴주구와 혹세무민에 버금한다. 준비도 제대로 되지 않은 데다 규제나 벌칙만 가혹하다. 농업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를 혼란에 빠뜨리고 있다. 그러니 피엘에스 시행은 가렴주구와 혹세무민의 행태와 다르지 않다.


정부는 그간 잠자코 있다가 올해 들어 돌연 피엘에스에 열을 올리고 있다. 2019년 1월 1일 전면 시행이라는 ‘발등의 불’에 화들짝 놀란 모양이다. 피엘에스에 관한 홍보와 교육이 부쩍 늘었다. 세월아 네월아 마냥 허송세월이더니 기자간담회를 열어서는 ‘알게 모르게’ 준비해왔다고 강변한다. 열심히 준비해왔지만 중과부적이라고, 전면 시행하기에는 제도적 기반이 빈약하다고 인정하질 않는다. 시행 유보, 제도 유예를 요구하는 농업인단체의 목소리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국내에서 사용등록이 됐거나 잔류허용기준이 설정된 농약 외에는 사용을 금지하는 제도가 피엘에스다. 제도 도입의 명분은 대내로는 식품의 농약 오남용 방지책이고, 대외적으로는 안전성이 확보되지 않은 수입식품의 미등록 농약에 대한 관리를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현재는 견과류나 열대과일에 적용하고 있으며 내년 1월부터 모든 농산물에 적용한다는 계획이다. 특히 허용물질로 등록되지 않은 농약이 검출되거나 잔류허용기준치를 넘겨 ‘부적합’ 판정을 받을 경우 출하 연기, 용도 전환, 폐기처분, 과태료 처분 등의 벌칙이 부과된다.


물론 수입농산물과 국내 농식품의 안전성을 확보함으로써 국민건강을 지키고 생태환경을 보전한다는 면에서 이론이나 토를 달 여지는 없어 보인다. 그러나 제도 도입을 코앞에 둔 시점에서 많은 이들이 우려를 표하고 있다. 설익은 감은 떫어서 먹지를 못한다. 익을 때를 기다리고 잘 가꾸면 본연의 감을 수확할 수 있을 터에 무작정 일을 벌여놓고 보는 행태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일각에서는 현실을 무시한 이러한 탁상행정을 ‘적폐’로 규정할 정도다.


농촌진흥청은 2019년 2월까지 최소 1천670개 농약등록을 목표로 최근까지 770여 시험을 진행중이라고 한다. 남은 기간에 추진상황과 대책을 지속적으로 점검한다는 계획이다. 실무부처에서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서두르고 있지만 바퀴 하나 돌린다고 전면시행의 수레가 움직일 리 만무하다. 유보가 답이다. 준비를 마친 후에 시행하는 것이 해법이다.

저작권자 © 농업인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