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정의하기란 참 어렵다. 공간도 마찬가지다. 시공은 상대적이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은 시공을 아우른 천체물리학이다. 볼 수 있고 상상할 수 있는 만큼이 우주이며 시간이다. 어렵다. 씨줄날줄 촘촘히 짜던 직녀에게 칠월칠석은 도드라진 시공이다. 견우와 만나는 찰나에 씨줄도 날줄도 스러진다. 그렇게 허무는 영원하다.


절대적이거나 실체가 있는 것이라면 녀석은 분명 태어났을 것이고 죽을 것이다. 시작과 끝이라는 개념조차 허상이기 쉽다. 인간이 만든 물리적 단위이고 규칙일 뿐이다. 세월이 유수와 같다고 하든가, 흐르는 물을 구간별로 잘라내 ‘시간’이라고 한들 곧 사라진다. 없다. 시간은 없는 것이다. 아무 ‘것’도 아니다. 움켜쥔 시간은 손금을 타고 온다, 간다, 있다, 없다.


아득바득. 아등바등. 아직 죽지 않은 사람은 시간을 기어코 얽어맨다. 처음 어리고 여린 시간을 어설프게 얽어매고, 시푸르게 빛나는 청춘의 약속들을 얽어매고, 우락부락한 근육과 희끗희끗 야위는 황혼녘을 얽어매고, 모든 생명이 다다르는 곳 영면의 자연으로 매듭짓는다. 시간을 얽어매고 공간을 수놓아 ‘실체의 시간’을 남긴다. 그리하여 인간은 위대하다.


시간은 참 쉽다. 현실 언저리에서 서성이는 현대인에게 시간은 쉽다. 한 시간 육십 분, 하루 스물네 시간, 일 년 열두 달, 세슘 원자시계나 스트로보스코프가 시간을 정하고 시간을 알린다. 공간마다 다른 시간을 동시에 지구촌 전역에 표시한다. 시계가 시공을 지배하는가, 인간이 만든 시계가 계측하는 시간에 따라 인간의 생활은 똑딱똑딱 하루를 돌고 계절을 순환한다.


여름방학이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생활계획표 그리기였다. 일일계획표, 하루살이를 어떻게 할지 스스로 미리 규칙을 정하는 일이다. 둥근 시계모양으로 이십사 시간을 케이크 자르듯 쪼갰다. 기상, 세수, 아침식사, 공부하기, 휴식, 독서, 점심식사, 휴식, 도서관, 방학과제, 친구와 놀기, 저녁식사, 텔레비전 시청, 세면, 잠자리. ‘꿈나라’ 조각 케이크가 가장 컸다. 그리고 가장 잘 지킨 프로그램도 ‘꿈나라’였으리라. 요즘 아이들은 ‘학원’이 서너 조각 차지하고, 변고가 없는 한 철저히 지키는 방학계획일 테니 불쌍타, 씁쓸하다.


방학에만 계획표를 그리던 어린이는 점차 시간을 얽어맬 줄 알게 되면서 연말연초 혹은 새로운 생활에 직면할 때마다 시간표를 짜기 시작한다. 그리고 거기엔 ‘생활’은 물론 ‘삶’도, 여행도, 꿈도, 방황도 담는다. 어느 순간 계획표, 시간표에는 저마다의 가치관이 반영되고 각자의 목표가 명기된다. 시간은 금이다, 속물스러워 낯간지러운 격언도, 삼당사락이든가, 세 시간 자면 합격하고 네 시간 자면 떨어진다는 서슬 퍼런 협박도 서슴지 않았다.


그러다가 시간표를 짜는 일에 싫증을 느끼고는 ‘되는대로 사는’ 인생의 길로 접어드는 경우도 있다. 아니면, 시간을 얽어매지 못하고 되려 팍팍한 현실에 얽매여 시계추처럼 시간을 보내는 이도 있다. 그도 아니면, 목표했던 산에 올라 다음 목적지를 찾지 못하거나 혹은 더는 겨눌 것이 없어 시간의 사막을 배회하기도 한다. 그러다가 우리는 내 계획표와 함께 우리 시간표를 짜게 된다. 따로 오는 시간은 없다. 나와 우리는 동시에 존재한다.


친근한 벗이 있고, 그보다 더 친근해야 할 동반자를 만나고, 그 따스함으로 영근 행복과 후세가 생기고, 함께 즐거워 할 식구와 가족, 몸 담아 하루의 절반 가까이를 같이하는 동료와 조직, 사회와 나라, 인류와 인류애가 시간표에 들락날락한다. 계획표는 그렇게 자라고 어른이 되는 것이 아닐까, 시간표는 그렇듯 노련하게 시간을 얽어매는 것이 아닐까.


‘우리 시간표’는 그래서 중요하다. 함께 계획하고 함께 행동하며 지켜야 할 계획표이기 때문이다. 우주의 탄생으로부터 지금까지의 시간을 이십사 시로 보면 인류문명의 존속시간은 0.03초에 불과하다고 한다. 인류의 역사는 하루 8만6천400초 중 1초도, 0.1초도 아닌 눈 깜짝할 순간에 불과한 셈이다. 우리 시간표 중 하나다. 석유나 석탄 같은 화석에너지의 고갈도 시간표로 보면 끔찍하다. 지구 나이가 45억 살이 넘는 것에 견주면 45억년 이상을 땅속에 묻혔던 석유를 인류는 불과 200년 만에 모조리 뽑아 쓸 태세다.


이밖에 우리 시간표에는 물, 식량, 빙하, 기후 같이 거대한 이슈가 즐비하다. 얼핏 내 생활이나 인생 계획표와는 동떨어진 듯 착각을 불러일으킬 만하다. 비교적 안온한 처지에 있는 이들에게 먼 나라 얘기일 것이다. 돈이 다 해결할 것이라고 믿는 이도 있고, 과학기술이 위기의 시간을 해소할 것이라 맹신하는 자도 있다. 나아가, 우리 시간표로 인정하지 않고 ‘당신들의 시간표’로 떠넘기는 이들도 적잖다.


시간표를 짜는 마음. 한 번이라도 시간표를 짜본 사람이라면 그 마음을 헤아려 봄직하다. 자기계발과 역량강화를 위해, 이상과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시간을 금은보화처럼 귀히 여기는 태도, 행복한 미래를 꿈꾸며 스스로 잡도리하는 일이 시간표를 짜는 마음에서 비롯했다. 대출이자를 갚아나갈 계획을 가계부에 꼼꼼하게 기록하며 역경과 고난의 시간표를 짜는 마음도 떠올려본다.


그리고 우리 농업과 농촌의 시간표, 농정 계획표, 미래농업의 로드맵을 새로 짤 때가 되자 않았나 싶다. 조만간 농식품부장관 지명과 인사청문회가 있을 터, 농정수장이 농업인과 함께 '우리 시간표'를 짰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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