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은 6월 들어 한 방울의 비도 내리지 않으면서 가뭄이 찾아왔습니다. 벌써 이 지역에서 살아온 지도 6년여가 넘었는데도 어김없이 한창 바쁜 농사철에 맞춰 가뭄이 찾아오니 참 기가 막힐 일입니다.


워낙 가뭄이 일상인지라 5월에 넉넉하게 온 비 덕분에 들깨모종을 부어야겠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만 차일피일 미루다  6월 초에 모종밭을 만들어 들깨 씨앗을 붓고 차양막으로 덮어놓았었습니다. 종잡을 수 없는 날씨가 한여름과 초봄 사이를 널뛰기 하니 보통 열흘 정도면 싹이 나올 텐데 어찌된 일인지 보름 가까이 흘렀음에도 싹은 고사하고 잡초조차 보이질 않습니다.


초조한 마음에 매일 차양막을 들쳐보지만 올라오라는 들깨 새싹은 보이지 않고 어두운 곳을 좋아하는 온갖 벌레들만이 놀라서 이리저리 움직이며 땅을 파고 들어가려고 분주하게 움직일 뿐입니다.


고구마나 고추, 토마토, 가지 같이 시장에서 구입한 모종들은 그래도 자리를 잡아 가뭄을 잘 견디고 있지만, 집에서 길러낸 토종고추, 오크라, 바질, 오이 등은 그저 가녀린 줄기에 겨우겨우 매달린 작은 잎으로 힘겹게 버티고 있는 중입니다.


마을관정이 아직은 수량이 풍부한 모양입니다. 관정을 관리하는 이가 작업 중 뭔가 잘못 건드려 잠시 수도공급이 중지된 사건은 있었지만 곧바로 정상 공급되고 현재까지 아무런 문제는 없어 보입니다. 작년처럼 물이 부족해 주위 사람들 눈치 보면서 몰래 물을 길어 날라야 할지도 모를 일이라 조금이라도 수량이 풍부할 때 길어 나르는 게 상책입니다.


이런저런 플라스틱 물통들이 해가 바뀌면서 작은 충격에도 쉽게 갈라져 쓸 만한 게 몇 개 되질 않습니다. 밭에서 일하면서 의자대용으로 쓰던 물통이 햇볕에 삭아서 그런지 엉덩이를 대자마자 바스러져 버리기도 합니다. 이러니 실제 물통 구실을 할 만한 게 서너 개에 불과하니 이것도 문젭니다. 고구마나 옥수수까지 물을 공급하려면 하루에 몇 차례나 왕복해야 할 판이니 그저 잘 견디지 못할 것 같은 어린 오이모종과 강낭콩만을 대상으로 물을 주기 시작했습니다.


집사람이 심혈을 기울여 길러낸 작두콩 모종이나 옥수수모종도 물을 달라는 듯 축 늘어지니 방법이 없습니다. 수레 가득 물통을 싣고 밭으로 나가 주전자와 조리를 이용해 물을 주다보니 옆구리도 결리고 목둘레도 쑤시기 시작합니다. 모종 살리려다 이제 사람이 죽을 판이니 하루걸러 쉬면서 하기로 했습니다.


무료로 옆 밭을 사용하는 이는 얼마나 화학비료를 줬는지 옥수수는 물론, 강낭콩, 고추들도 짙푸르다 못해 거의 검은 색을 띠기까지 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 밭 옥수수는 모종내서 옆집보다 먼저 심었건만 키도 절반만 한 게 아직도 연두색으로 하늘하늘하니 견줘 보니 불쌍해 보이기까지 할 정돕니다. 이러니 화학비료를 줘볼까라는 유혹을 느끼기 십상인 겁니다.


귀찮기는 한 일이지만 계분퇴비를 추비하기로 하고 비닐멀칭을 뚫어 퇴비 넣고 물주는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다고 화학비료 준 것 마냥 키가 쑥쑥 자랄 리도 만무하겠지만 그냥 마음의 위로를 삼기로 했습니다. 키가 작더라도 열매만 제대로 달려준다면야 무슨 문제가 있겠습니까.


들깨모종밭 차양막은 결국 걷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아무리 기다려도 괜히 벌레들만 사육하는 모양새가 돼 버린 것 같아 포트에다 모종을 내보기로 하고, 그마저도 여의치 않으면 시장에서 모종을 구입하는 수밖에 도리가 없을 것 같습니다. 들깨까지 모종을 사다 심어서야 어디 농사꾼이라고 하겠습니까마는 지금으로서는 포트에서 발아되지 않는다면 별다른 묘수가 보이질 않으니 그저 답답할 노릇입니다.


당분간 비가 온다는 예보가 없어 마음이 더 초조해 집니다. 아무리 물통을 하루 몇 차례 날라다 뿌린들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당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저온현상은 계속되고 하늘은 흐리지만 비는 오지 않습니다.
올 농사도 이렇게 재미없이 끝나서야 체면이 말이 아닐 테니 어떻게 해서라도 평년작은 거둬야겠다고 다짐하지만 그것도 알 수 없는 일이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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