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농업계를 발칵 뒤집는 소식이 타전됐다. 바이엘(Bayer AG)이 몬산토(Monsanto)를 인수했다. 일개 기업이 다른 기업 하나 사들이거나 ‘인수합병’하는 일이야 비일비재하나 이번 인수합병 건은 사뭇 다르다. 독일의 다국적 기업이 미국의 다국적 기업을 인수한 일대 사건이다. 덩치도 크다. 인수대금이 무려 630억 달러, 우리나라 돈으로 67조 원이 넘는다. 독일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인수합병이다.


바이엘의 몬산토 인수합병은 이태 전에 본격 시작됐다. 세계적 제약사그룹인 바이엘은 물밑 협상을 통해 2016년 9월, 몬산토를 부채 90억 달러를 포함해 총 660억 달러에 인수하겠다고 공표했다. 정밀화학, 제약분야 세계적 기업이 종자, 농화학분야 다국적 기업을 겨냥한 것이다. 경쟁기업들과 환경단체의 우려가 컸다. 거대 독점 농기업의 출현이 달가울 리 없다. 게다가 두 회사는 ‘악명’ 높은 기업이다.


바이엘은 아스피린으로 유명하다. 대개 바이엘은 몰라도 아스피린은 알고 있을 정도다. 1863년에 염료회사로 출발했으니 150년이 넘은 기업이다. 1899년 아스피린을 출시하며 전문제약기업으로 발돋움했고, 이후 두 차례 세계대전을 겪으며 쇄락의 길을 걷기도 하고 흥성의 나날을 보내기도 했다. 바이엘의 악명은 세계전쟁에 엮여 있다. 백 년 전 제1차 대전에서 독일군에게 생화학 무기를 제공했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는 나치에게 홀로코스트에 쓸 독가스를 팔아 막대한 이득을 취했다. 인권단체가 ‘악마의 기업’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몬산토도 환경단체, 인권단체들로부터 ‘악마의 기업’으로 꼽힌다. 몬산토의 주력인 제초제와 유전자변형작물(GMO)이 인간과 환경을 위협하기 때문이다. 1901년 당시 독일에서만 생산되던 합성감미료 사카린을 미국에서 제조하기 위해 설립된 몬산토는 사카린을 코카콜라에 납품하면서 단박에 유력기업이 됐고, 역시 전쟁을 거치며 성장했다. 제2차 대전이후 농화학분야로 손을 뻗친 몬산토는 1980년대 유전자조작 연구를 통해 1990년대부터 유전자변형 제품을 본격 출시했다. 제초제 ‘라운드 업’과 GMO는 몬산토의 정체를 명확히 보여준다. 개인적으로는 간혹 ‘몬산토’를 ‘몬스터’로 착각하기도 한다.


이렇듯 악명이 자자한 두 기업이 한 몸이 됐다. 공룡이거나 괴물이다. 유럽연합이 지난 3월, 바이엘이 74억 달러의 자산을 바스프(BASF SE)에 매각하는 조건으로 몬산토와의 인수합병을 승인했다. 바이엘은 5월말 미국정부와도 농업부문 90억 달러 매각에 합의했다. 유럽연합과 미국은 각각 반독점 규제 장치를 조건으로 바이엘의 몬산토 인수합병을 승인한 것이다. 식용유, 종자, 종자가공, 농약 시장 등에서 바이엘과 몬산토 지분을 포괄해 ‘중복소유’하지 못하게 하는 셈이다.


그리고 마침내 6월 7일 바이엘이 몬산토 인수를 마무리했다. 전액 현금으로 지급했다는 전언이다. 인수합병 전문가들에 따르면 몬산토 매각금액은 시장가치에 견줘 20퍼센트 이상의 경영권 프리미엄이 붙은 가격이다. 바이엘이 몬산토를 ‘비싸게’ 사들인 이유는 뭘까? 잠재가치를 알고, 시너지(결합 확장성)를 확신했을 것이다. ‘종자산업’이 미래 성장산업, 기업의 ‘먹을거리’라는 인식이 깔려있을 법하다.


몬산토는 지난 20년간 GMO를 개발, 판매하며 성장했다. 세계 종자시장의 40퍼센트 이상을 점유했다. GM 종자 시장점유율은 90퍼센트에 달했다. 종자는 한 번 개발하면 수십 년 시장지배가 가능할 정도로 독점적 성격이 짙다. 종자 산업은 판매액 대비 기본 순수익이 20퍼센트를 훌쩍 넘기는 ‘알짜배기’다. 그런데 어찌 해서 몬산토는 부채가 눈덩이처럼 불었을까? 유전자조작의 역설이자 역습이 아닐까?


몬산토가 ‘칼자루’라고 여겼던 GMO는 시간이 지나면서 ‘칼날’로 드러났다. 칼날에 헝겊을 싸매 손에 쥐고 있었을 뿐 이제 베일 일만 남았던 것이다. GMO 개발엔 막대한 투자비가 든다. 몬산토는 세계 각지에 100여 개 연구소를 운영했다. 연구개발 예산이 연간 15억 달러를 상회했다. 전체매출액의 10% 이상이다. 제초제를 개발해 팔고, 그 제초제에 죽지 않는 유전자변형작물 종자를 개발해 팔고, 다시 새로운 제초제와 제초제 저항성 작물을 개발하는 ‘악순환’에 빠졌다. 비용은 계속 투입되는 반면 판매수익은 늘지 않으니 부채가 쌓였다. 결국 GMO는 ‘사라진 제국’의 아킬레스건이었다.


바이엘이 단숨에 세계 종자시장 선두로 나선 날은 공교롭게도 망종(芒種) 즈음이다. 24절기 중 아홉 번째다. 올해는 유월 육일 현충일이었다. 망종을 그대로 풀이하면 ‘까끄라기 씨앗’이다. 그러니 예로부터 망종은 벼나 보리처럼 수염이 있는 까끄라기 곡식의 종자를 뿌리는 적기로 여겼다. 보리를 베고 볏모는 심는 때가 망종이다. 지금이야 남쪽 이모작이 아니면 대개 망종 전에 이미 모내기를 끝내기 십상이다. 다른 때도 종자의 중요성을 부르짖지만 망종이면 새삼 깨닫게 된다. 게다가 세계 종자시장의 대격변이 이뤄졌으니 어찌 어물쩍 지나치겠는가.


저 20년 전 뼈아픈 일들을 불러낼 필요는 없다. 국제구제금융 시절 국내 종묘기업들은 하나둘 외국계 글로벌 기업에 팔렸다. 세미니스, 몬산토, 노바티스, 사카다종묘 등. 그나마 토종기업인 A사를 필두로 중소업체들이 천신만고 끝에 살아남고, 정부가 ‘골든 시드 프로젝트’를 추진하며 종자주권을 강조하고 있어 다행이다. 그러나 국가의 미래로 종자 산업을 육성한다며 투입하는 예산은 일개 다국적 기업 연구개발비의 10분의1도 안 되는 현실을 떠올리면 다시 막막해진다. 씨앗의 미래. 농업과 생명, 국가의 미래와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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