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무지 날씨가 어떻게 변할지 알 도리가 없습니다. 하루는 한여름인양 30도를 웃돌다가 그 다음날에는 10도 이하로 떨어지며 찬바람까지 불어대 보관했던 겨울점퍼를 다시 꺼내 입어야 될 정도니 밭에 심어놓은 작물들이 어디 제대로 자랄 수 있겠습니까.


종묘상에서 사온 모종들도 노지에서 찬바람을 맞으며 겨우겨우 버티고 있지만 조만간 뭔 일이 생기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이러니 집에서 힘겹게 길러낸 모종들이야 두 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열 몇 개 싹을 틔운 오크라와 고추모종을 심어놓았지만 매일매일 들여다봐도 성장하는 것 같진 않고 조금씩 죽어가고 있는지 꼬부라지고 있으니 말입니다.


전국이 변덕스런 날씨 탓에 고생하고 있지만, 특히 이곳 영동지방은 동풍이 불기 시작하면 바람도 거세지고 기온도 마치 초가을처럼 쌀쌀해지니 더 힘들어 집니다.


농사는 하늘이 도와줘야 온전히 지을 수 있는데 이처럼 날씨가 도와주지 않으면 제대로 수확하기가 어렵습니다. 바람이 심할 때는 초당 10미터가 넘으니 겨우겨우 자라고 있는 옥수수 대나 고추모종이 꺾어지거나 뽑혀나가기도 합니다. 올해는 그나마 4월부터 5월까지 때맞춰 비가 내려줘 바람에 의한 메마름 현상은 없어 덜 고생하고 있습니다만 그렇다고 별일 없이 지나간다고 보장할 수 없는 일인지라 걱정을 달고 삽니다.


기온차가 이렇게 크다보니 사람이나 작물이나 정신 차리기가 어디 쉽겠습니까. 비닐로 멀칭한 옥수수나 고추는 뿌리가 보온이 되니 그런대로 괜찮지만 멀칭 없이 노지에 심은 비트나 완두콩은 차가운 바람에 몸을 바들바들 떨어대니 보기에도 짠합니다. 그저 부디 잘 버텨 날이 따뜻해져 무럭무럭 자라길 바랄 수밖에 도리가 없습니다.


해가 길어지는 밭에서 일할 시간도 늘어납니다. 차가운 날씨에 작물 성장은 더디지만 그놈의 잡초는 괭이 삽으로 긁어내도 돌아보면 다시 융단처럼 올라오니 잡초는 확실히 하늘이 관리하는 게 틀림없습니다. 새벽 5시만 되도 하늘이 훤하니 과자 한 조각과 커피 한 잔으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진드기, 모기 같은 해충에게 물리지 않으려면 긴팔 웃옷을 입어야만 되지만 새벽공기가 쌀쌀한지라 긴팔 웃옷을 입었다고 더위를 느낄 수가 없을 정도니 5월 말이라고 말하기도 민망할 정돕니다.


변덕스런 날씨로 그나마 덕 보는 건 날벌레들이 적어 물릴 걱정을 덜 수 있다는 겁니다. 대체로 이때쯤이면 모기 등쌀에 얼굴이나 손등 어딘가는 벌겋게 부풀어 오를 정도로 물리는 일이 많았었으니 불행 중 다행인 셈이지요. 그래서 세상일이란 게 행복과 불행은 동행하고 있다는 생각을 안 할 수가 없습니다.


엊그제 온전히 사람 힘만으로 사용하는 쟁기(이곳에선 보구레라고 부릅니다)로 갈아엎은 밭에 또다시 바랭이들이 바닥을 빼곡히 덮으며 올라오고 있습니다. 며칠간 쉴 새 없이 불었던 바람 탓에 땅바닥은 단단해지고 보구레로 밀기도 힘겹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태평농법이 답이라고 우기고 싶지만 그랬다간 온 밭이 바랭이로 뒤덮여 감당하기 어려울 게 뻔하니 깊은 한숨과 함께 보구레를 잡은 팔에 힘을 줍니다.


물까치들이 그렇게 좋아하는 서양앵두가 올해는 전멸입니다. 4월 말과 5월 초에 거의 영하 가까이 떨어진 기온 탓에 냉해를 입었는지 새순들이 새카맣게 타들어가더니 열매가 거의 맺히지 못하고, 몇 개 달린 열매마저 힘없이 바닥으로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이맘때 한주먹 훑어 입에 털어 넣으면 새콤달콤한 맛이 그만이었는데 올해는 물까치나 저나 서양앵두 맛보기는 틀린 거지요.


밭 가장자리로 쌓아놓았던 작년 바랭이 잔재들 사이로 얼굴을 내민 쑥은 어느새 쑥대밭을 만들고 말았습니다. 5월 단오 전까지만 먹을 수 있다는 말에 베어내지 못한 결과입니다. 그래도 쑥이야 이런저런 요리재료라도 되니까 베어내지 않더라도 마냥 보기 싫은 건 아닙니다. 어차피 메타스퀘어나 가래나무, 엄나무 등으로 둘러싸인 밭 가장자리야 뭘 심을 수도 없는 노릇이니 쑥이라도 번져 바랭이를 잡을 수 있다면 그것도 좋은 일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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