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의 존재가치는 얼마나 될까, 저 하늘에 걸린 먹구름의 가치는 얼마일까, 내 몸에서 두 눈이 차지하는 가치비중은 어느 정도일까, 지구 행성에 존재하는 나무의 총 가치는 얼마일까, 울릉도와 독도, 한라산, 백두산 천지, 북극 오로라, 남극 빙산은? 밀폐 공간에서의 산소, 가문 논에 단비, 굶주린 이의 한 끼니, 갓난이의 모유, 생명, 밥, 하늘, 우주. 등등등 등등 등. 존재의 끝은 없고 그 가치는 무한하다.


모든 사물, 존재하는 모든 것의 가치를 따지는 일은 무모하고 무의미한 짓이다. 객관적이지 못하다.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가치는 상대적이다. 더구나 존재는 고정되지 않고 변한다. 따라서 가치도 변한다. 그래서 값을 매기는 일은 매우 어렵다. 실패할 수도, 성공할 수도 있다. 가치의 경중과 어림짐작만으로도 값어치가 있다.


“살상무기를 사들이는 돈이 해마다 수조 원씩이나 합니다. 소모품은 물론 강철이라도 고장이 나거나 첨단무기에 밀리게 되면 새것을 사야하니 무기구입 예산 감축이 쉽지 않죠. 국가 안보를 위한 예산입니다.”


올 지방선거에 출마한 아무개 후보가 농업전문신문과 농업인단체가 함께 마련한 농정 간담회에서 한 말이다. 그는 ‘식량안보’를 덧붙였다. 나라를 지키고, 나라가 지켜야할 것이 국방뿐 아니라 농업도 같은 궤에 있다고 강조하는 참이다. 그러니 국방예산만큼이나 농업예산을 늘려야 한다고 역설했다. 농가단위 직접지불금제도나 농업인 월급제 등 정부예산 지원 명분으로 ‘안보’는 유력하다. 농업인의 호응이야 말할 나위 없다.


올해 국방예산은 43조1천581억 원이다. 이 가운데 병력과 전력을 유지하고 운영하는 예산이 3분의2 정도를 차지하고, 무기 구입 등 방위력 개선비 비중이 31.3퍼센트다. 북한 핵과 미사일에 대비한 핵심전력 구축비 4조3천억 원을 포함해 방위력 개선비가 13조5천억 원이 넘는다. 과다한 군비 지출은 남북분단과 휴전이라는 기형적인 체제 탓도 있다. 어찌됐든 정부재정 대비 국방예산 비중이 크게 줄었다. 1980년 34.7퍼센트로 국가 전체예산의 3분의1이 넘던 국방비 비중은 꾸준히 줄어 현재 14.3퍼센트를 차지하고 있다.


군사비 지출 총액으로 따지면 우리나라는 세계 10위권이다. 스웨덴 스톡홀름에 있는 국제평화연구소가 최근 발표한 2017년 세계 군사비 지출 동향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394억 달러로 세계10위에 올랐다. 지난해 전 세계 군사비 지출액은 1조7천390억 달러, 우리 돈으로 1천871조 원에 이른다. 미국이 단연 앞선다. 연간 6천100억 달러, 총액의 35퍼센트 비중을 차지한다. 다음으로 중국, 사우디아라비아, 영국, 인도, 일본, 프랑스, 러시아, 독일 순이고 이스라엘이 우리와 비슷한 수준이다.


전쟁과 평화가 야누스의 두 얼굴로 한 몸인 것처럼 군산업과 농업은 한 그루에서 다른 가지로 뻗었다. 성쇠와 우열로 갈릴 뿐이다. 우리나라 농업예산은 국방예산의 3분의1 수준이다. 반면 농업총생산액은 국방예산을 상회한다. 국방예산을 농업예산으로 돌리면 어떨까, 전 세계 군사비 1천871조 원을 ‘평화유지비’로 바꾸면 기아와 빈곤이 없는 세계, 반목과 대립이 무딘 세상에 가깝지 않을까, 헛된 꿈이어도 꾸어볼 만하다. 칼을 녹여 호미를 만들고, 탱크 대신 트랙터가 땅을 밟는 세상.


꿈이라고 치워두기엔 왠지 억울하다. 농업과 농촌의 가치는 어마어마하다. 나라를 지키듯 농업과 농촌을 지켜야 하는 까닭이다. 트랙터 한 대의 가치는 장갑차 한 대에 못잖다. 저울질이 어폐가 있으나, 농업인 한 명의 가치는 군인 열 명에 버금한다. 국방과 식량안보는 한 손, 다른 손가락일 뿐이다. 환경보전 기능은 얼마나 큰가, 문화나 사회적 기능은 또 어떤가. 농업의 다원적 기능, 공익적 가치는 상상이상이다.


농업의 다원적 기능에 대한 연구는 국내외에서 광범위하게 진행하고 있다. 아울러 다원적 기능, 공익 가치의 법제화도 병행하는 추세다. 세계무역기구(WTO)와 국제연합 식량농업기구(FAO),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같은 국제기구는 물론 지역별, 국가별 논의와 법제화가 활발하다. 헌법에 경자유전의 원칙과 함께 농업과 농촌의 다원적 기능, 공익적 가치를 명시함으로써 그에 걸맞은 지원책을 제도화하려는 최근의 움직임도 같은 맥락이다.


다원적 기능의 가치를 정량적으로 평가하려는 시도는 적잖았다. 전국 농경지가 팔당댐 16개 크기의 물 저장 기능과 지리산 171개의 이산화탄소 흡수 기능을 함으로써 281조 원의 공익가치를 지녔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농업총생산액이라는 보이는 지표 45조 원을 빼고도 엄청난 가치를 지닌 것이다. 가뭄피해를 줄이고 온실가스 25퍼센트를 감축하는 것은 물론 홍수조절, 생태계 보전, 도시화 완화, 전통문화 계승 등 다원적 기능이 존재하지만 그 가치를 계측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일까, 도시민의 70퍼센트가 농업과 농촌의 공익적 가치를 높게 평가하고, 도시민의 절반 이상이 농업의 지속을 위해 추가 세금부담에 찬성한다면서도 농업에 대한 지원을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로 폄훼하는 분위기가 돌출하기 십상이다. 농업용 면세유나 농가 직불금제와 농업의 다원적 가치를 연결하지 못하는 한 이러한 오해는 풀리지 않을 듯하다. 가치 측정과 함께 대국민 홍보가 필요한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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