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지 1년이 됐다. 5월 10일, 출범 한 돌을 맞이해 정부에 대한 대내외의 평가가 쏟아졌다. 정치권의 평가는 으레 공방이 치열하다. 여야의 관점이 판이한 까닭이다. 팔은 안으로 굽히기 쉬우니 여권의 공치사는 그렇다 해도 야당의 칼날은 벼리지 않은 듯 날카롭지 못하다. 하나하나 도마에 올려 서슬 퍼런 칼로 난도질을 해야 할 판에 도마에 올리지도 않고 뭉텅이로 썩었다고 힐난하니 이를 지켜보는 국민은 찹찹할 따름이다.

정치권의 한 인사는 문재인 정부를 평가하며 ‘외치는 천지개벽, 내치는 천애고독’이라고 일갈하기도 했다. 최근 남북정상회담을 비롯해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 등 주변국과의 관계에서도 역사적 진전이 이뤄지며 그 어느 때보다 평화와 화해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다는 점을 높이 산 것이다. 반면 야당의 원내대표가 단식을 벌이며 국회 등원을 거부하는 등 입법부나 사법부에서 벌어지는 갈등과 대치를 해소하지 못하는 등 내치의 아쉬움을 꼬집은 말이다.

어찌됐든 문재인 정부 1년에 대한 고찰과 평가는 제대로 이뤄져야 한다. 관점과 신념은 다를지언정 평가대상의 잘못은 엄정하게 나무라고 잘한 일에 관해서는 박수를 보내야 하지 않겠는가. 약속한 것은 잘 지켰는지, 지키지 못했다면 왜 그랬는지, 언약을 저버린 것인지 불가항력으로 어길 수밖에 없었는지 조목조목 따져보고, 꾸중하고, 칭찬하고, 고치자고 다짐하는 일은 국민과 정부 모두의 책무다.

각 부처별 1년 평가와 관련해 청와대가 “자화자찬은 말라”고 단속했다는 전언이다. 성과 평가서를 작성하면서 부풀리지 말고 사실 위주로 기술하라는 말이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야당의 반발을 의식한 조치라고 해석한다. 그러나 야당의 비판을 떠나 왜곡된 평가는 우리의 오늘과 내일을 위해 결코 좋지 않다. ‘주제파악’의 중요성은 두 말할 필요 없다. 현실을 직시하고 장단을 파악해야 더 나은 앞날을 기약할 수 있지 않겠는가.

자화자찬은 말 그대로 제가 그린 그림에 스스로 찬(讚)을 붙이는 짓이다. 찬은 그림에 써 넣는 시나 글인데, 대개 스승이나 선배, 동문 같이 가깝고도 객관적 입장에 설 수 있는 사람이 써줄 일이다. 그 찬을 제가 써 넣는다니 부끄러움을 모르는 자의 소행이 바로 자화자찬인 것이다. 그럼에도 자화자찬은 거의 모든 정부에서 이뤄졌다. 그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치적을 내세우고 실책은 숨기고자 하는 정치권력의 속셈은 변하지 않는다.

홍보와 관련해 그럴싸한 ‘격언’이 있다. 정부기관이나 기업체 홍보담당자들이 흔히 쓰는 말이기도 하다. 피할 것은 피하고 알릴 것은 알리는 일이 피아르(PR)라는 식의 ‘뼈 있는 말장난’과 격이 같다.

보통 홍보를 중시하는 기관장들은 담당자들을 독려하는 말로 써먹었다. “이룬 것이 많은데 널리 알리지 못하면 ‘바보’요 이룬 것 없이 알리기만 하는 홍보는 ‘버블’이다.” 바보와 버블, 발음이 비슷한 데에 착상한 말인데 둘 다 경계해야 한다는 뜻이다. 가만히 있으면 아무도 모르거니와 거품은 금방금방 터지고 꺼지기 마련이다.

농림축산식품부도 5월 8일에 ‘문재인 정부 1년, 주요 농정 추진 상황’이라는 제하의 성과 평가서를 발표했다. 예년 같았으면 ‘농정 추진 성과’라고 했을 법한데 청와대의 잡도리 때문인지 ‘농정 추진 상황’이라고 순화한 듯하다. 전문에서도 주요 실적과 상황을 점검한다고 했으니 자화자찬하지 말라는 지시에 ‘급 고심’ 한 흔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내용은 역시 자화자찬이다. 첫머리에 ‘20년 전 수준에 머물던 쌀값이 회복되어, 쌀 농가의 소득안정에 도움이 되었다’는 대목에서 자평의 맹점, 자화자찬의 한계를 보고야 말았다. 말미에 덧붙인 ‘앞으로도’는 꽤 거슬린다. 잘못한 부분, 반성할 점, 뜯어고쳐야 할 일을 객관적이고도 투명하게, 과감하게 실토하길 바랐는데 지금처럼 앞으로도 더 노력하겠다는 것이니 하나마나한 끝맺음이다.

농업인들은 위로와 희망의 메시지를 바라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선거과정에서 전 정부의 농정을 두고 ‘3무정책’이라며 무관심, 무대책, 무책임을 질책하지 않았는가. 20년 전 수준에 머물던 쌀값이 이제야 10년 전 수준으로 돌아왔으니 아직도 부족합니다, 각고의 노력을 다해 농업인이 원하는 만큼의 쌀값이 되도록 이러저러한 정책을 펼 것입니다, 그러니 힘겹더라도 조금만 더 참고 견뎌주길 바랍니다. 이런 위로가 그 어떤 성과보다도 호소력 짙지 않을까. 바보와 버블 사이에는 진실과 진심이 숨었다.
그래서인지 농촌지도자들의 바보 같은 홍보는 더욱 묵직하게 다가온다. 묵묵하게 일하고 버티며 농업과 농촌을 지켜온 이들, 사사로움에 얽매지 않고 우애와 봉사의 정신으로 지역사회에 기여하는 이들이 농촌지도자들이다.

못자리에 실패한 농가를 위해 공동육묘로 예비 모를 준비해두는 그들, 시군단위나 읍면단위로 공동답을 경작해 그 수익금으로 불우이웃을 돕거나 청소년에게 장학금을 주는 그들, 어버이날이면 손자가 달아준 카네이션을 떼고 노인요양소를 찾아 ‘효 봉사활동’을 벌이는 그들, 농촌 환경을 지키고 안전사고를 없애기 위해 관내 곳곳을 누비며 폐비닐과 빈 농약병을 수거하는 그들, 그 수익금을 지역사회에 기탁하는 그들, 오로지 농촌지도자라는 명예를 드높이며 일생을 농업과 농촌에 바치고 이웃을 돌보는 그들은 이룬 바를 널리 알리지 못하는 바보임에 틀림없다. 진실과 진심은 버블보다 바보에 가깝다, 바보와 같다.
저작권자 © 농업인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