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 수확 후 귀갓길에 참변, 할머니 8명 사망

지난 1일 8명의 사망자를 낸 전남 영암군 버스 사고가 농촌 고령화, 일손 부족 등 농촌 사회의 어두운 면을 그대로 드러낸 예고된 참사라는 지적이다.
농번기가 되면 농가들은 일손이 부족해 할머니의 손이라도 빌려야 하는 상황이고, 상대적으로 벌이가 적은 할머니들은 알음알음 밭일을 소개받아 수수료까지 주고 일을 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 빈곤한 농촌 고령농업인들…

농촌의 고령화, 소외, 빈곤 등의 문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농촌지역은 2010년에 이미 65세 이상의 노인 인구 비율이 20%를 넘어 초고령 사회로 진입했다. 또 지난 2015년 농림어업총조사를 살펴보면 농림어가의 고령인구 비율이 37.8%로 전체 인구 13.2% 보다 2.9배가 더 높게 나타났다. 또 70세 이상이며 홀로 사는 경우가 18.5%, 연소득 2,000만원 이하가 79.1%였다. 여기에다 24.7%는 거의 소득이 없는 120만원 이하였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농촌에서는 고령의 노인들이 힘들지만 돈벌이를 위해 무리를 지어 일을 나가는 것이 일반적인 상황으로 여겨지고 있다.

유족들에 따르면 이번 사고로 사망한 할머니들 역시 평소 버스 운전사의 알선으로 밭일을 하러 다녔으며, 일손이 필요한 농장주가 운전사에게 연락하면 운전사는 모집책 역할을 하는 할머니를 통해 인력을 모집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할머니들은 통상 밭주인에게 일당 7만5,000원을 받으면 운전사에게 중개 수수료, 차비 등 명목으로 1만5,000원을 떼어줬다고 유족은 설명했다.

이철갑 전남농업안전보건센터장은 “농촌에서는 농번기에 고령노인들이나 외국인 노동자들이 계절성으로 농작업 현장에 나가지만 이에 대한 실태조사는 아직 부족한 상황”이라면서 “어떤 경로를 통하고, 현장에서는 어떤 대우를 받고 있는지 등에 대한 조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 “영농철에는 할머니 손도 귀해”

영농철이나 수확철이 되면 농촌에서는 매년 인력난이 벌어진다. 웃돈을 주고도 사람을 쓰는 것은 물론, 이웃 시군까지 원정을 가서 사람을 구해야 한다. 농장 규모가 크면 외국인 노동자를 연중 고용하지만 소농들은 이마저도 어렵다.

일부 지자체와 농식품부, 농협 등에서는 농촌인력중개센터를 통해 인력 수급하고 있고, 농작업 상해보험 가입과 교통비, 숙박비 등이 지원하고 있다. 하지만 고령의 노인들에게 서류를 통한 신청이나 근로 계약 체결 등의 과정이 어렵게 느껴지면서 대부분 무등록 중개인을 통해 일용 노동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번 사고 역시 운전자가 무허가 영업을 한 것으로 밝혀졌는데 사고 버스는 개인 소유 차량으로 요금을 받고 인력을 운송하는 사업용이 아닌 자가용으로 등록돼 있다. 현행법상 자가용으로 등록된 미니버스를 운행하며 운임을 받았다면 불법 영업에 해당한다. 하지만 운전자가 별도 보험금을 내고 유상운송 위험을 담보하는 특별계약을 맺어 보험금 지급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전라북도의 한 농업인은 “시골에서 바쁠때는 일손이 없이 할머니의 손이라도 빌려서 써야 한다”면서 “연세가 들면서 일 능력은 떨어지고, 인건비는 올라가지만 그래도 쓰는 것은 할머니들 없이 농사를 이어가기가 힘들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 농촌 노인인력, 제도적으로 보호해야

농촌이 고령화 되면서 농촌 노인들이 논밭에서 하는 일이 많아지고 있지만 이들의 노동환경이나 복지에 대한 관심은 부족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아울러 이동부터 시작해 노동 환경까지 종합적인 점검과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특히 인력중개는 상당수가 무등록 업체를 통해 알음알음으로 이뤄지고 있고, 이동 역시 승차인원 초과는 물론 시간을 맞추기 과속, 신호위반까지 하면서 일정을 진행하기 때문에 사고가 나도 제대로 된 보상을 받기가 힘들다는 의견이다.

실제로 도로교통공단 등에 따르면 농촌지역의 교통사고 치사율은 도시보다 5.4배가 높고, 중앙선 침범과 차대차 사고의 비중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전남의 한 지자체 관계자는 “농사일을 오가는 노인들이 탄 트럭이나 승합차 사고가 있을 때마다 교통안전 등 문제가 언급되기는 했지만, 노인 근로와 관련한 논의는 부족했던 게 사실”이라며 “운송 안전부터 시작해 노동 환경까지 전반적인 점검과 개선이 필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또 경기도의 한 농업인은 “노인들이 돈 벌려고 버스에 올랐다가 여러명이 사망했다는 뉴스를 보고 언젠가 나한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지자체나 정부에서 제도적으로 농촌 노인인력을 보호하고 처우를 개선하는 방안을 마련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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