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저녁으로는 아직 쌀쌀한 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만들지만 봄이 오는 길목을 막아설 수는 없는 모양입니다. 밭으로 나갈 때 걸친 바람막이 겉옷이 금방 거추장스러워져 나무에 걸쳐 놓습니다. 벌써 보름여 넘게 사투를 벌이고 있는 마른풀뿌리와의 대결도 거의 끝이 보이고 있습니다. 잡초의 제왕은 역시 바랭이입니다. 지난 가을 늦장마로 방치했던 밭은 바랭이들이 제멋대로 퍼져 거의 정글수준이 돼버렸습니다. 빈틈없이 바닥에 붙어 말라버린 바랭이 줄기가 너무 길어 경운기도 트랙터로도 감당이 안 될 정도라니 제가 생각해도 기막힐 노릇입니다.

쇠스랑과 괭이 삽만으로 5백여 평 밭 전체를 파내다보니 허리는 물론 온몸 전체 안 아픈 곳이 없을 정돕니다. 이랬든 저랬든 뒤돌아볼 때 마른 풀이 걷힌 곳은 그나마 밭으로 보이니 그 재미로 다시 괭이삽을 들게 됩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해야지 결심하지만 목표치의 절반도 채우지 못한 채 힘에 겨운 몸은 더 이상 견딜 수 없노라고 삽을 던지게 만듭니다.

마른 풀을 이불삼아 움을 틔우고 있는 망초를 비롯한 온갖 잡초들이 갑작스런 햇볕에 화들짝 놀랍니다. 이놈들을 지금 없애지 못하면 또 몇 배의 삽질을 해야 할 판이니 사정없이 괭이 삽으로 긁어내야만 합니다. 밭 가장자리는 이미 긁어낸 마른 풀 더미로 산이 될 지경이니 철로 둑 아래 빈터가 새로운 풀 더미 산이 되고 말았습니다.

플라스틱 간이의자에 앉아 가쁜 숨을 몰아쉬노라면 이미 끊은 담배 한 모금 생각이 절로 나니 이건 또 무슨 조화인지 모를 일입니다.

오후 햇살이 아지랑이처럼 나른합니다. 할미새 한 마리가 밭으로 날아들었습니다. 쇠스랑과 괭이 삽으로 힘겨운 싸움을 하는 저는 안중에도 없는 양 마른 풀이 걷어지는 제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먹이사냥에 여념이 없습니다. 얼마나 총총거리며 뛰어다니는지 보면 볼수록 신기할 정돕니다. 가깝게 다가가 휴대전화를 꺼내 사진을 찍으려니 갑자기 마치 접영으로 달려 나가는 수영선수마냥 포물선을 그리면서 날아오릅니다. 그렇다고 아주 멀리 날아가지도 않고 곧바로 제 뒤를 다시 따라 다닙니다. 저한테 위해를 가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는 듯 아무리 제가 괭이 삽으로 땅을 파 헤쳐도 근처를 뱅뱅 돌면서 먹이사냥을 하지만, 돌아서 휘파람이라도 불면 쌩하고 멀어지니 그냥 두고 보기만 하는 게 맞을 듯싶습니다.

오랜만에 봄을 재촉하는 비가 내립니다. 한 사나흘 계속되는 궂은 날씨 덕에 집안에서만 뒹굴었더니 몸이 금방 표가 납니다. 다시 잡은 쇠스랑과 괭이 삽질에 더 헉헉거리게 되니 말입니다.

비가 내린 덕분에 밭 흙은 푹신푹신 일하기 좋아졌지만 풀도 그만큼 자라기 좋아졌으니 마음이 급합니다. 부지런히 몸을 놀려보지만 여전히 진도는 지지부진하고 일하는 시간보다 쉬는 시간이 더 많아도 좀처럼 능률이 오르지 않으니 그저 답답할 뿐입니다.

밭으로 날아오는 할미새가 한 마리 더 늘었습니다. 늘 오던 그 할미새와 어떤 관계인지는 모르지만 적당한 거리를 두고 제 뒤를 졸졸 따라다니는 걸 보면 친한 사이인 건 틀림없어 보입니다. 밭을 파헤칠 때 보이는 지렁이나 딱정벌레, 풀씨가 할미새를 유혹하는 먹잇감일 겁니다. 어떻든 가끔씩 지나는 영동선 기차 외는 지나다니는 사람도 없는 밭에서 할미새라도 옆에 없으면 더 일하기 싫어졌을 지도 모를 일입니다.

수선화가 새싹을 돋는가 싶더니 어느새 노란 꽃망울을 터뜨렸습니다. 작년 늦은 장마 탓을 하면 게으름 핀 덕분에 마른 풀밭 사이사이에 냉이가 지천입니다. 삽질하기 힘들면 비닐봉지 옆에 차고 냉이를 캡니다. 사실 냉이 캐기도 수월한 일은 아니지만 더 힘든 건 뒷손질입니다. 일일이 씻어내 손질하기가 오히려 삽질이 편할 지경이니 이래도 저래도 일이 힘든 건 마찬가지니 차라리 삽질이나 하는 게 답입니다.

밭 정리가 거의 끝나가니 할미새도 다른 먹이터를 찾아 떠났는지 보이질 않습니다. 괜히 섭섭한 마음에 헛기침만 해보지만 봄볕에 아지랑이가 피어나듯 그렇게 할미새도 봄과 함께 저와 함께 하다 떠나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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