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가 문재인 대통령의 개헌안을 발표했다. 개헌을 요구하는 국민의 목소리는 그 어느 때보다 높다. 오는 6·13 지방선거에 맞춰 개헌 국민투표를 진행하려는 정부여당과 뒤로 미루려는 일부 야당의 기 싸움이 치열하다. 코앞에 다가온 선거도 그렇지만 향후 권력구조 재편을 두고 정치권의 셈법이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정치권은 여야를 떠나 한껏 달아오른 국민의 개헌 열망을 외면할 수는 없는 일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개헌안에 호응이 크다. 인간의 존엄성, 행복추구권, 평등권 등 ‘사람’의 기본권을 개선하는 한편 노동자의 권리를 강화하고 공무원의 노동3권을 보장하는 내용이 호응의 필두에 섰다. 더불어 생명권과 안전권, 정보기본권 신설이나 사회안전망 구축, 사회적 약자의 권리 강화도 개헌안이 품은 뜻을 헤아리기에 충분하다.

지방분권 개헌안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지방정부 구성에 자주권을 부여하고 자치행정권과 자치입법권을 강화함으로써 명실상부 ‘지방분권국가’를 선언하고 있다. 토지공개념을 명시해 경제민주화를 추진한다는 내용도 국민의 호응이 적잖다. 불평등과 불공정, 빈부격차 심화를 더는 방관하지 않겠다는 의지로 이해된다. 대통령 4년 연임제, 국민소환제, 대법원장 인사권 분산 등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사회전반을 일신할 만한 굵직한 개헌안이 국민과 국회 앞에 던져졌다. 이제 사회적 협의와 합의를 통해 헌법을 고쳐야 할 엄중한 시기가 도래한 것이다.

농업계가 개헌안 중에서 가장 반기는 부분은 농어업의 공익적 기능을 헌법에 명시한다는 점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개헌안에는 식량의 안정적 공급과 생태 보전 등 농어업이 갖는 공익적 기능을 명시하고, 국가는 이를 바탕으로 농어촌, 농어민의 지원 등 필요한 계획을 시행하도록 하는 내용의 규정을 신설한다.

‘법의 힘’은 대단하다. 사회와 사회구성원의 삶의 양태를 지배하기 때문이다. 하물며 모든 법률의 꼭대기에 있는 헌법은 말 그대로 지존이다. 그런 면에서 농업의 공익적 기능을 명시한다는 것은 난마처럼 얽힌 한국농업의 실타래를 풀어갈 실마리가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자아낸다.

올해 4월 3일은 제주4·3 70주기가 되는 날이다. 문득, 딱 십년 전, 2008년 4월초에 쓴 <기자수첩>을 떠올렸다. 대통령의 개헌안 헌법 전문에는 민주화운동 과정에 중요한 의미를 가짐은 물론 법적 제도적 공인이 이뤄진 4·19혁명과 함께 부마항쟁, 5·18민주화운동, 6·10항쟁의 민주이념을 ‘역사적 사건’으로 명시된다. 그래서인지 가슴 아픈 제주역사가 더 애틋하다. 10년 전 기자수첩에는 ‘4월 3일 사슴 데이는 재고해야 한다’라는 제목으로 이렇게 쓰였다.

농촌진흥청 축산과학원과 한국양록협회는 4월 3일을 ‘사슴 데이’로 정했다. 이들 기관과 단체는 몇 년간의 논의를 거쳐 사슴의 날을 정하고 올해 처음으로 사슴고기와 국산녹용 소비촉진행사를 서울 명동 모처에서 벌였다. 수입산이 국내시장을 잠식하는 상황에서 필사의 자구책으로 이해된다.

농업계는 농산물 소비촉진을 위해 축종이나 작물별로 ‘기념일’을 정해 판촉활동에 학술대회까지 벌여왔다. 3월 3일은 3이 겹치는 날이라고 ‘삼겹살 데이’, 9월 9일은 닭이 구구 울어댄다고 ‘닭의 날’, 5월 2일은 발음을 따다 ‘오이 데이’ 또는 ‘오리 데이’라고 부르는 식이다. 이른바 ‘데이 마케팅’(day marketing)이다.

이 같은 ‘데이’니 무슨 ‘날’이니 정하는 것에 대해 발상이 기발하다는 평도 있고 우리 농산물 소비촉진을 위한 충정으로 비치는 것도 사실이다. 실제로 기자는 지난 3월 3일에 “오늘은 삼겹살 먹어야 하는 게 아니냐”고 말하는 이들을 많이 봤다. 기발한 것도 좋고 사람들이 기억하기 쉬운 날을 택하는 것도 전략이다. 아울러 기념일을 정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우리 농산물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며 실질적인 소비촉진을 이끌어낼 수 있다면 금상첨화다.

사슴농장 전화번호에 가장 많은 게 ‘사삼(43)’이라고 한다. 끝자리 번호가 ‘4343’인 경우다. 그래서인지 4월 3일을 ‘사슴 데이’로 정하는 데 이견이 없었다고 한다. 일리 있고 명분도 그럴싸하다. 이삿짐센터 전화번호에 ‘2424’가 많은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날’을 정할 때 신중할 필요가 있다. 4월 3일 ‘사슴 데이’가 그렇다. 이날은 4·3 제주항쟁 추념일이다. 1948년 4월 수많은 제주도민이 희생됐다. 마을마다, 집집마다 한 날에 제사가 있는, 가슴 아픈 역사가 있다. 한때 이들 희생자를 좌익으로 모는 역사왜곡도 있었지만, 반세기가 지나면서 진상조사가 이뤄지고 참여정부에서는 대통령이 몸소 위령제에 참석해 ‘국가를 대표해 사과’하기도 했다. 올해는 60돌을 맞이했다.

‘사슴 데이’를 재고해야 하는 까닭이다. 사슴을 키우는 농가에겐 ‘트집’이 될 수도 있으나 역사의식이 결여됐다는 생각이다. 하필 ‘이날이 그날이냐’며 항변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적어도 ‘이날’을 피해 ‘사슴 데이’를 정하는 노력은 필요하다고 본다. 광주민주화항쟁기념일인 5·18을 ‘오일 팔아주는 날’로 정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후략)

개헌이 이뤄진 것은 아니지만, 헌법에 농업의 공익적 기능을 명시하겠다는 대통령의 의지는 높이 살만하다. 70주기를 맞이한 4·3 제주의 역사도 진상규명과 공인이 이뤄져 대한민국 헌법 전문에 등재하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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