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시골이라고 맘 편히 살기가 쉽질 않습니다. 먼저 살던 곳도 청정 골짜기에 석산개발업자가 들어온다고 해서 동네주민들이 관청에 진정하고 반대 현수막을 거는 건 물론, 온 산골짜기를 돌아다니며 희귀동식물 사진을 찍어 개발이 부당하다는 증거자료로 환경부에 제출하는 등 마음고생이 많았었습니다. 지방환경청에 대표단을 구성해 환경영향평가서가 엉터리로 작성됐음을 주지시켜 재심이 되긴 했지만 이사 나온 이후도 여전히 문제가 완결되지 않고 있다는 소식이 들리고 있어 걱정입니다.

자본주의사회에서 자본의 논리는 영리추구입니다. 정보가 부족하고 시민의식이 낮았던 시기에는 자본가들이 권력과 결탁해 마음대로 공해사업까지 벌일 수 있었고 그 후유증은 현재까지도 지속되고 있습니다. 풍광이 아름다운 계곡을 독차지해서 펜션이나 음식점을 차려 돈을 벌어가는 사람은 그나마 자연환경을 덜 훼손시키니 다행일 수도 있습니다. 문제는 오로지 영리 추구만을 위해 자연환경 따위는 염두에도 없는 이들이 호시탐탐 사업장을 세우려고 노리고 있는 곳이 대부분 고령화된 시골마을 근처라는 사실입니다.

이장이 바뀌고 다시 마을의 권력구조가 신임이장을 중심으로 재편됐습니다. 당연히 반장이나 개발위원 같은 이들도 새로운 사람으로 구성됐고 이들에 의해 뭔가 새로운 일들이 벌어질 공산이 커나가던 어느 날 신임반장이 문을 두드리며 마을회관에서 사업설명회가 있다며 참석하라는 전갈을 받았습니다.

사실 이곳으로 이사 올 때 먼저 살던 집이 워낙 구조상 열악했던 터라 다른 어떤 조건보다 집이 깨끗한 것을 최우선으로 삼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니 주변 환경을 살피는 일은 뒷전이고 그저 하얀 벽이 아름다운 전원주택만 보였던 겁니다. 따지고 보면 사람 사는 곳이 다 거기서 거긴데도 뭔가에 홀리면 주변 환경 따위야 눈에 보일 턱이 없었던 거지요. 이러니 여름에 바로 옆 하천이 범람해 대문 앞까지 물이 찰랑거리는 곤경을 겪어야 했고, 마을과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이름만 그럴듯한 건축폐기물처리업체가 벌써 십 수 년 간 영업을 하고 있어 피해를 보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던 겁니다.

대형 덤프트럭이 오가는 길은 항상 먼지로 뒤덮이기 마련입니다. 콘크리트조각이나 아스콘조각 등을 분쇄해 재활용하는 업체에서 배출되는 공해는 생각보다 심각합니다. 분쇄된 자재들을 덮개로 덮어놓았지만 바람이 불거나 비가 내리면 고스란히 하류로 침출물들이 쏟아져 내리고 덮개와 펜스만으로 비산되는 먼지를 막을 도리도 없습니다.

제가 거주하는 아랫마을과 윗마을 사이는 놀이공원을 만들려다 여러 여건이 여의치 않아 방치되고 있는 상당히 넓은 부지가 있습니다. 아마도 가까운 곳이 해맞이로 유명한 관광지니 거기에 기대 사업을 하려던 이가 자금난을 이기지 못하고 사업을 접었을 거라는 게 마을사람들 얘깁니다.

문제는 그 부지에다 이미 기존 건축폐기물업체로부터 받는 고통도 심해 대책을 세워야 될 판에 다시 동종 업을 하겠다며 주민동의를 받기 위해 사업설명회를 하겠다니 기가 막힐 노릇이지요. 저야 사실 마을 일에 대해 아는 바가 거의 없는 상태긴 하지만 아마도 적당히 사업설명회랍시고 형식적으로 개최해 모인 이들에게 밥이나 대접하고 넘어가려고 했었을 텐데, 그게 뜻대로 되지 않은 설명회가 돼 버리고 말았습니다. 평상시에 마을회의에 거의 참석치 않았던 이들은 물론 가까운 바닷가마을 어촌계장을 비롯한 이장들까지 몰려와 강력하게 반대의사를 표명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마을회의는 개발절대불가라는 결론을 내리고 끝이 났습니다.

모든 개발 사업은 누군가의 고통과 아픔 위에 피어나는 독버섯입니다. 시골마을이 아무리 고령화돼가고 있긴 하지만 고무신 한 짝과 막걸리 한 잔으로 권력과 금력을 사던 시절을 꿈꾸고 있다면 어리석은 꿈일 뿐입니다. 개발로 인한 작은 이익을 탐하다 금수강산을 망쳐서야 어디 후손들에게 얼굴을 들 수 있겠습니까. 물론 업자들이 쉽게 물러설 리 없는 지루한 싸움이 지속되겠지만 80대가 넘은 블루베리농장주나 90대인 양계농장주를 비롯한 모두가 자연환경을 지키고 있는 한 젊은이들도 돌아오는 활기찬 마을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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