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호와 빈축
서호와 빈축
  • 백종수 편집국장
  • 승인 2018.03.09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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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시 화서동과 서둔동 접경지에 호수가 있는데 흔히 ‘서호’라고 부른다. 서호는 조선 후기에 둑을 쌓아 만든 인공저수지이다. 정확한 명칭은 축만제(祝萬堤). 천년만년 만석의 생산을 빈다는 뜻이다. 정조 23년, 1799년에 수원 화성 건립시기에 함께 축조된 축만제는 화성 서쪽에 있어 서호라는 별칭을 얻었다. 동네이름인 화서동, 서둔동 모두 화성을 기준으로 서쪽에 있다.

정조 당시 최대 규모로 조성된 축만제는 왕실 재산이라고 할 수 있는 내탕금 3만 냥을 들여 축조한 네 개의 호수 중 하나다. 정조는 화성 동서남북에 만석거, 만년제, 축만제 등을 지었다. 축만제에는 도감관, 농감 등을 둬 관수와 제방 관리를 맡기고, 관개 혜택을 받는 몽리구역에서는 도조를 거둬들였으니 곧 나라의 ‘둔전’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곳에 일제강점기에 권업모범장이 설치됐으며, 뒤이어 서울대학교 농과대학, 농촌진흥청이 설치돼 한국농업의 ‘메카’가 되었다 할 것이다. 지금이야 서울대 농과대학이 서울 관악캠퍼스로 가고 농촌진흥청이 전주혁신도시로 이전하며 ‘서호공원’으로 탈바꿈했지만 유서 깊은 농민회관과 한국농촌지도자중앙연합회가 여전히 명맥을 잇고 있다.

축만제는 지난 2005년에 경기도 기념물 제200호로 지정됐으며, 2016년 11월에는 태국 치앙마이에서 열린 국제관개배수위원회를 통해 ‘세계 관개시설 유산’에 선정됐다. 세계 관계시설유산은 국제관개배수위원회가 역사적, 사회적, 기술적으로 가치가 있는 관개시설물을 지정해 보호하는 제도로 2012년에 시작됐다. 우리나라의 경우 축만제와 함께 전북 김제 벽골제가 처음 국제유산에 등재됐고, 지난해 10월에 수원 만석거와 당진 합덕제가 추가로 등재됐다.

서호 둘레는 2킬로미터 정도가 되는데 아침부터 저녁까지 꽤 많은 시민이 운동 삼아 호수 둘레를 걷고 달린다. 풍광도, 공기도 좋은 곳이기에 시민들로부터 사랑을 듬뿍 받는 공원으로 손색이 없다. 호수 한가운데에 있는 작은 섬엔 철새들이 둥지를 틀고 있고, 부리에 나뭇가지를 물고 수면을 미끄러지듯 나는 새들과 먹이를 찾아 자맥질에 바쁜 오리들이 철따라 호수를 형형색색 수놓기도 한다. 전주로 거처를 옮긴 농촌진흥청 직원들은 아침, 점심, 저녁으로 삼삼오오 여유롭게 서호 둘레를 돌던 기억이 삼삼할 만하다.

축만제 남쪽에는 190년 가까이 된 항미정(杭眉亭)이 있는데 이곳에서 바라보는 서호낙조는 수원팔경 중 하나로 꼽힌다. 조선 마지막 황제인 순종이 수원 남쪽 화산에 있는 융릉건릉을 참배하고 돌아갈 때 잠시 쉬워간 정자로도 유명하다. 한여름 서호를 돌던 이들이 잠시 쉴 곳이 마땅찮은데 항미정은 쉼터로 안성맞춤이기도 하다. 니은 자 형태의 납도리집 구조인 항미정은 ‘항주의 미목’이라는 소동파의 시에서 따왔다고 한다.

서호 둘레를 돌면서 서호를 체감하지 못하다가도 항미정에 잠시라도 머물면 그제야 서호의 숨결이 불어옴을 느낀다. 항주, 서호, 서시, 미목. 바다 같이 드넓은 호수, 호수를 둘러싼 산과 호수 곳곳에 그윽하게 자리 잡은 섬들, 계절마다 색다르게 아름다운 경치. 절경만큼이나 중국의 서호는 절묘한 이야기를 품고 있다. 특히 월나라 미인 서시는 서호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인물이다. 항주의 미목은 바로 서호이자 서시인 까닭이다. ‘서호와 서시를 비교한다면, 옅은 화장이나 짙은 화장 모두 아름답다.’ 소동파가 서호의 아름다움을 서시에 빗댄 구절이다.

왕소군, 초선, 양귀비와 함께 중국 4대 미인으로 꼽히는 서시는 춘추시대 말기 인물로 넷 중 가장 오래된 인물이다. 미인박명이란 말이 있듯이 미인의 일생은 순탄하지 못한 경우가 많다. 미색을 타고난 서시도 자의반타의반으로 역사 속에 뛰어든다. 오나라 왕 부차에게 패해 3년간 부차의 시중을 들다 귀국한 월왕 구천은 복수의 칼을 갈았고, 범려 등 측근들이 미인계를 권하자 서시를 선발해 부차에게 보낸다. 결국 오나라가 망했으며 서시는 ‘빨래하던 여인이 오나라를 멸망케 했다’는 말로 역사에 기록됐다.

빈축(嚬蹙)이라는 말도 서시에서 비롯했다. 못마땅하여 눈을 찡그리는 것이 빈, 몸을 움츠리거나 얼굴을 쭈그리는 것이 축이다. 서시(西施)는 위장병으로 고통스러울 때마다 가슴을 누르며 눈살을 찌푸리곤 했는데 그 모습마저 아름다웠다고 한다. 그러자 인근 마을 동시(東施)라는 여인이 서시를 따라한답시고 두 손으로 가슴을 누르고 눈살을 잔뜩 찌푸린 채 마을을 돌아다녔다. 이를 본 마을 사람들이 놀라 달아나거나 숨었다. 빈축의 유래다. 동시효빈, 서시빈목, 효빈 등이 같은 뜻으로 쓰인다.

이야기는 사실 여부를 떠나 교훈을 담았다. 서시는 타고난 미색이며, 자신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하고 막무가내로 따라하는 행태를 비꼬고 있다. 사실 《장자》 〈천운편〉에 수록된 이 이야기는 공자의 제자인 안연에게 노나라의 악사장인 사금이 한 말이라고 한다. 장자는 서시를 끌어들여, 외형에 사로잡혀 본질을 망각하는 공자의 상고주의를 비난한 것이다.

수원 축만제 남쪽 항미정 앞에는 안내판이 둘이다. 하나는 축만제와 항미정을 알리는 표지이고 다른 하나는 빈축의 유래를 소개하고 있다. ‘빈축’ 앞에 서서 스스로 돌아본다. 나를 알고, 내 존재가치를 스스로 정립하고 높여가야 하지 않을까? 아, 서호에는 황새가 있다. 내가 뱁새인지는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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