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촌을 결심하고 강원도 산골짜기로 살림을 옮긴 해가 2012년, 평창 동계올림픽이 2018년에 열린다는 얘기는 그저 머나먼 미래로만 여겼었습니다. 하기야 살아생전 하계올림픽과 동계올림픽을 둘 다 눈앞에서 바라본다는 두근거림을 가졌더라면 손꼽아 세월을 헤아렸을지도 모를 일이긴 하지만 그저 나와는 관계없는 먼 일이었으니 그럴 수밖에요.

그랬거나 말거나 세월은 어김없이 흘러 2018년 2월9일이 되었고 정치판에서 벌어지는 일과는 상관없이 TV를 통해 중계되는 화려한 개막식은 장관이었습니다.

세월을 뒤돌아보면 1988년 하계올림픽이 열리는 동안 한 번도 경기장에 가 본 기억이 없었던 건 먹고 살기 위한 생존경쟁이 치열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저 집안에서 TV켜고 길게 늘어져 경기를 즐기는 게 더 편해서였습니다.

이미 30년이 흐른 지금 뭔가 생각나는 게 있을 턱이 없지만 그래도 우리나라 경기가 벌어지면 이마에 핏대를 세울 정도로 흥분해 손뼉을 치고 발을 굴렀던 젊음이 있었던 건 틀림없었던 것 같습니다. 이제 국가가 인정하는 노인대열에 들어선 지도 벌써 몇 년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경기장을 찾아 즐기지 못하는 건 88년 보다 더 크고 더 진보된 기술로 구현되는 TV 탓도 탓이지만, 지나가 버린 젊음마저도 안타까워 못하는 그저 모든 게 시들해져 버린 귀찮음이 더 큰 탓일지도 모릅니다.

올림픽개최도시에 살고 있으니 아무 때나 마음 내키면 경기장을 찾을 수 있을 거라고는 하지만 그게 또 그렇게 쉬운 일도 아닙니다. 일단 차량 2부제가 실시되니 하루건너 한 번씩은 장을 보러 시내에 나가는 일조차 어렵습니다. 더욱이 올 겨울은 유난히 매서운 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으니 핑계 김에 집안을 벗어나기가 더 귀찮아 지는 겁니다.

설날 연휴가 올림픽기간에 걸쳐 있었음이 관중동원에 신의 한 수가 된 건지 아닌 건지는 나중에 밝혀질 일이지만 그 덕에 둘째아이가 연휴 첫날 KTX 편으로 집으로 왔습니다. 마중을 위해 역을 나가니 올림픽이 맞긴 맞는 모양입니다. 수많은 외국인들이 역 대합실을 가득 메우고 택시 승강장에는 쉴 새 없이 승객을 태우고 떠나는 긴 줄이 대합실만큼이나 번잡스럽습니다. 모든 부모들이 그렇듯이 제 귀찮음도 자식이 원하면 무용지물이 됩니다. 늦은 저녁시간에 해변에 설치됐다는 조형물을 보기 위해 외출을 해야 했으니까 말입니다.

불빛은 낮 시간과는 또 다른 아름다움을 보여줍니다. 해변입구에 세워진 오륜마크에서 뿜어내는 흰 빛이 가슴을 설레게 하는지 사람들이 그 앞을 떠나지 못하고 카메라셔터를 눌러댑니다. 해변 상점들은 대박을 꿈꾸며 대낮같이 불을 밝히고, 주변에 들어선 고급호텔의 베란다 불빛은 파도소리에 춤추듯 현란합니다.

어쨌든 올림픽기간은 한정돼 있으니 하다못해 경기장이라도 구경해보자고 집을 나섰습니다. 좀 늦은 시간이긴 했지만 시 외곽에 지정된 주차장에 도착해보니 그야말로 인산인해가 따로 없습니다. 무리지어 움직이는 사람들을 따라 셔틀버스에 올라탔습니다. 올림픽파크는 빙상경기가 열리는 경기장과 주변 상업적 전시관은 물론, 각종 조형물들로 꾸며진 공간입니다.

주말이라 그랬을 거라 생각되지만 입장권을 구입하려는 사람들로 넓은 광장이 발 디딜 틈이 없을 지경이었습니다. 아마도 평상시 같았으면 칼바람 부는 추위 속에서 몇 시간씩이나 기다리라 했으면 뭔 사달이 나도 났을 테지만 정말 신기하게도 모든 이들이 묵묵히 또는 즐거워하면 2천 원짜리 입장권을 구입해 보안검색대를 지나 파크에 들어갑니다.

모든 게 줄서기와 기다림의 연속입니다. 현금도 소용없이 오직 비자카드만 통용되는 식당은 인종전시장이 따로 없어 보입니다. 단무지 몇 조각과 황태가 헤엄친 해장국을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을 지불하고 빈자리를 찾아 허기를 때우고 나니 밤이 깊어갑니다.

컬링이라는 생소한 경기에 매료된 사람들이 로봇청소기와 대걸레를 이용해 집안에서 벌인 패러디경기가 유튜브에서 커다란 웃음을 선사하듯 그래도 가족이 경기장 구경이라도 마쳤으니 두고두고 후회는 없을 것 같습니다.
저작권자 © 농업인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