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나라의 재상이자 문필가로 당송팔대가의 한 사람이었던 왕안석은 ‘부국강병(富國强兵)’을 기치로 ‘신법(新法)’을 강력하게 추진했다. 이로 인해 시급한 재정난을 해소하는데 어느 정도 성공했으나 반대파와 백성들을 설득하는데는 실패했다. 백성들의 세금과 군사 부담이 늘면서 불만이 팽배해져 송나라가 큰 혼란에 휩싸였으며 결국 신법은 철회됐다. 이는 소통하지 못한 정부 정책이 얼마나 큰 위험을 야기하는지를 일깨워 주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정부가 구랍 27일 내놓은 ‘식품안전 개선 종합대책’으로 계란 생산농가는 물론 유통인들이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 정부가 세계 최초로 ‘산란일자 표기’를 강행한 탓이다. 농가들은 그동안 대규모 집회, 1인 시위도 불사하며 산란일자 표기를 분명하게 반대했다. 계란은 생산시기 보다는 신선하게 보관하고 유통하는 과정이 더욱 중요하다. 때문에 전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산란일자 표기를 강제하는 국가는 없다.

정부는 소비자들의 요구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반면 농가들은 계란산업을 이해하지 못한 철부지들이 수학공식처럼 단순하게 ‘신선한 계란=산란일자’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반발한다. 더욱 큰 문제는 이 정책이 시행되면 제날짜에 판매하지 못해 폐기처분해야 할 계란이 기하학적으로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농가들의 피해가 불을 보듯 뻔한 상황이다.

농가들은 정부의 이번 대책이 성급했다고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단순히 계란에 산란일자를 표기하는 것이 소비자들이 요구하는 안전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발상이 ‘어리숙하다’는 것이다. 농가들은 정부가 살충제 계란 여파로 여론의 뭇매를 맞고 그 책임을 전적으로 농가에 전가시키기 위해 무리수를 두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정부 정책의 성패는 국민들과의 소통이 좌우한다. 무엇보다 국민의 의식수준이 높아지고 이해관계가 복잡해지면서 소통 없이는 정책효과를 거두기가 어렵게 됐다. 과연 정부가 ‘산란일자 표기’ 정책을 시행함에 있어 이해당사자를 지속적으로 설득하고 참여를 이끌어내는 과정에 충실했는지 따져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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