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소송으로 새해 맞는 가락시장 상장예외 ‘논란’

수입당근 취소 판결 ‘모르쇠’… 바나나 상장예외 지정

상장예외중도매인, 수입바나나 도매유통 창구화 ‘우려’



울행정법원은 수입당근을 상장예외품목으로 지정한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의 청과부류 거래방법 지정
처분에 대해 “상장거래 원칙을 훼손해가면서 자의적으로 상장예외품목을 지정하는 것은 재량권의 한계를 넘어서는 것이다”라며 취소 판결(2017구합66398.2017.12.11)을 내렸다.

 그러나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는 이에 불복. 항소할 것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더욱이 최근에는 바나나의 상장예외품목 지정을 결정했다.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의 바나나 상장예외품목 지정에 대해 도매시장법인은 또 한번 행정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수입과일의 대명사인 바나나. 연간 4만8,000여 톤에 달하는 가락시장 취급 물량 등을 감안할 때 바나나의 상장예외품목 지정은 도매시장 과일유통에 상당한 파급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바나나의 상장예외품목 지정 과정과 유통현황 등을 ‘농수산물 유통 및 가격안정에 관한 법률’(농안법) 및 서울행정법원의 판결문에 비춰본다.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 “도매시장법인, 구체적 방안 및 개선결과 제시 못해”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는 2016년 9월 제3차 시장관리운영위원회를 통해 바나나의 상장예외품목 지정 안건을 상정했다. 안건 상정 이유는 (사)전국과실중도매인조합연합회 서울지회의 요청에 따른 것이었다.

해당 안건은 2016년 제4차, 제5차 시장관리운영위원회를 거치면서 합의안 도출에 실패. 2017년 제2차 시장관리운영위원회에서 조건부 상장예외품목 지정을 결정했다. 조건부는 “2017년 12월까지 도매시장법인의 거래실태 성과 평가 후 조건 미 충족시 2018년 1월 1일부터 상장예외품목으로 지정한다”는 내용이다.

2017년 9월 청과부류 소위원회를 통해 도매시장법인 바나나 거래실태 평가 기준이 마련됐고, 평가 방법과 평가단이 확정됐다. 이후 거래내역 조사와 수입업체 면담, 중도매인 설문조사 등이 진행됐다.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는 2017년 제4차 시장관리운영위원회(2017.12.19.)를 통해 ‘도매시장법인 바나나 거래실태 조사 및 평가결과 보고서’(이하 바나나보고서)를 제출했다.

바나나보고서는 “현재의 정가·수의매매 형태, 공급방식, 가격협상 능력, 리콜·하자 처리 등에 대한 도매시장법인의 역할을 종합하여 판단해 볼 때, 상장거래에 의하여 중도매인이 바나나를 매입하는 것은 현저히 곤란하므로 바나나를 상장예외품목으로 지정하는 것이 바람직함” 이라는 최종 평가결과를 내놨다.

새로운 프레임 ‘바나나보고서’… 소위원회 앞세워 논란 회피

바나나 상장예외품목 지정 과정은 세 가지 특이점을 보인다. 첫 번째, 중도매인에 의한 상장예외품목 지정 요청이다. 상장예외품목 지정 논란과 행정소송으로 비화된 품목(수입당근, 포장쪽파) 모두에서 드러난 공통점이다. 출하자의 요구가 아니라 해당 품목을 취급하는 중도매인 요구. “상장거래로 해당 품목을 구입하기가 현저히 곤란하다”는 주장이 모두 받아들여졌다는 점이다.

두 번째, 농안법 시행규칙 제27조(상장되지 아니한 농수산물의 거래허가)의 각호(△부류기준 연간 반입물량 누적비율 하이 3% 미만 △취급 중도매인이 소수인 품목 △상장거래로 해당 품목을 매입하는 것이 현저히 곤란하다고 개설자가 인정하는 품목)에 해당할 경우 시장관리운영위원회 심의를 거쳐 상장예외품목으로 지정할 수 있다. 이 가운데 개설자의 재량권이 부여되는 ‘현저성’ 판단에 대한 논란이다.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는 “개설자가 농안법의 목적, 해당 농산물의 유통 특징, 해당 농산물의 생산과 소비 구조 등의 여러 요소를 고려한 전문적인 개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서울행정법원은 “적어도 개설자의 1차적 판단이 사실적 근거를 토대로 하여 이에 대한 합리적 평가를 거쳐 이루어졌음이 전제되어야 할 것이고, 이러한 사실적 근거가 미비되어 있거나 이에 대한 평가가 합리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은 채로 상장예외품목 지정이 된 경우에는 재량권 행사의 범위를 벗어나서 처분 사유에 해당하지 않아 위법하다고 보아야 할 것”이라고 판시했다.

세 번째, 바나나보고서라는 새로운 프레임이다.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는 시장관리운영위원회의 바나나보고서 최종 평가결과에 따라 바나나 상장예외품목 지정을 결정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상장예외품목 지정 조건은 법률(농안법 시행규칙 제27조)에 명시되어 있다. 개설자는 해당 품목이 법률이 정한 조건에 부합할 경우 시장관리운영위원회 심의를 거쳐 허가할 뿐이다.

바나나보고서가 바나나 상장예외품목 지정의 근거가 될 수는 없다. 또한 바나나보고서의 평가결과도 논란이다. 바나나보고서의 평가 항목은 ①정가·수의매매 거래방법 준수여부 ②수입업체와 협상을 통한 경쟁력 있는 가격 및 조건으로 중도매인에게 상품을 공급할 수 있는 시스템 구축 여부 ③출하대금에 대한 결제 형태 및 기간의 적절성 ④수입업체의 독과점 공급(대리점식 운영) 해소 여부이다.

바나나보고서는 평가항목 ①번과 ②번에 대해 ‘부적합’. ③번 ‘적합’. ④번 ‘해당사업 없음’. 이라고 평가했다. 논란이 되는 부분은 ‘부적합’ 평가된 ①번과 ②번 항목이다. 사실상 도매시장법인의 정가·수의매매로는 중도매인에게 경쟁력 있는 가격에 상품을 공급할 수 없다는 평가다. 이를 거꾸로 풀면 바나나가 상장예외품목으로 지정되면 상장예외중도매인 스스로가 수입업체와의 협상을 통해 경쟁력 있는 가격에 바나나를 구입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과연 그럴까.

 “바나나, 상장예외품목 지정에 앞서 거래질서 관리가 우선”

바나나보고서는 “바나나는 3대 주요 출하업체가 시장 전체의 공급을 주도하는 과점시장으로서 이들 업체가 공급량과 거래가격을 주도하고 있기 때문에 도매시장법인의 상장거래를 통해 합리적인 가격이 형성되거나 가격발견이 이루어지기 어려운 구조”라고 평가하고 있다.

그러면서 “정가·수의매매 거래 시 상품주문, 접수 및 하자처리 등을 도매시장법인이 아닌 중도매인이 출하업체와 직접하는 경우가 대부분으로 이런 거래방식은 형식적인 정가·수의매매 거래형태로 기록상장의 소지가 있다”고 주장했다. 풀어보면. 바나나는 출하자(수입업체)가 거래물량과 가격을 주도하는 품목이다. 따라서 출하자 주도의 정가거래가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문제는 있다. 바나나보고서는 “상품주문, 접수 및 하자처리 등을 도매시장법인이 아닌 중도매인이 출하업체와 직접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주장했다. 기록상장과 중도매인 직접집하 가능성이 지적된 것이다.

출하업체가 가격과 물량을 주도하는 것은 위법이 아니다. 그러나 기록상장과 중도매인직접집하는 불법이다. 특히 대부분의 바나나 거래에서 기록상장과 중도매인직접집하와 같은 불법사항이 의심된다면 거래방식의 문제가 아니다.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는 바나나보고서의 평가결과를 수용하기에 앞서 바나나 거래에 대한 철저한 거래질서 관리를 선행해야 한다.

또한 도매시장법인의 교섭력 발휘 문제다. 도매시장법인이 중도매인에 비해 규모화되어 있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규모화된 도매시장법인이 출하업체와 거래교섭에 나서는 것이 도매시장의 효율성이며, 유통의 생리이다. 그럼에도 바나나 상장예외품목 지정을 주장하는 것은 소규모 중도매인을 출하업체에 종속된 도매유통 판매망으로 양산시킬 수 있다는 우려를 지울 수 없다.

바나나보고서에 따르면 현행 바나나 상장거래에 대한 중도매인 만족도는 ‘58.1%’(매우만족 6.5%, 대체로 만족 51.6%)로 조사됐다. 또한 출하업체들은 특정 중도매인에게 물량을 우선 공급하는 경향은 있지만, 전반적으로 도매시장 내 중도매인 거래처 확대를 우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바나나 거래 늘면, 국내산 과일가격 하락”

가락시장에서 바나나는 최근 5년간 평균 5만 톤 가까운 취급물량을 기록하는 주요 품목이다. 더욱이 포도와 체리 등 계절적 특수를 가진 수입과일과 달리 연중 수입과 소비가 지속되는 품목이다. 이 때문에 바나나는 국내 과일산업에 큰 영향을 주고 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과일 수입 확대에 따른 소비행태 변화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바나나는 4계절 내내 국내산 과일과 소비경합을 펼치고 있다. 특히 △봄-수박 △여름-포도 △가을-사과 △겨울-배, 단감이 주요 경합 품목으로 꼽힌다. 바나나 물량이 10% 늘어날 경우 ‘수박’(-0.65%), ‘포도’(-0.63%), ‘사과’(-0.78%), ‘배’(-0.46%), ‘단감’(-1.04%) 가격이 하락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지금까지 바나나 관련 통계와 분석이 명확할 수 있는 이유는 관세청의 수입물량과 도매시장의 거래가격 등이 투명하게 공개되기 때문에 가능했다. 바나나는 2016년 기준 36만4,550톤이 수입됐다. 이 가운데 가락시장에서 거래된 물량은 4만8,070톤. 거래금액은 881억8,700만원이다.

가락시장의 바나나 거래물량과 거래금액 등 자세한 거래실적이 투명하게 공개될 수 있는 이유는 상장거래 품목이기 때문이다. 상장거래품목은 반입과 거래 즉시 모든 데이터가 실시간으로 공개된다. 출하물량과 가격, 각각의 거래에서 수수료가 얼마인지까지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상장예외품목은 수수료가 얼마인지? 얼마의 마진이 붙었는지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바나나가 상장예외품목으로 지정될 경우에 대한 우려는 수입당근 판결문의 한 구절로 대신한다.

서울행정법원은 “상당한 물량이 시장에서 거래되고 이를 거래할 중도매인들이 상당수 존재함에도 비상장거래(상장예외)를 할 경우 가격정보가 공개되지 않아 가격결정구조가 불투명하게 된다”면서 “중도매인들이 가격형성에 직접 관여함으로 인한 가격왜곡의 가능성이 있으며 이를 기회로 출하자를 상대로 불공정한 경쟁을 할 우려가 있고, 세금 및 수수료 탈루 등을 목적으로 비상장거래를 하는 등 거래질서가 문란해 질 수 있으며, 출하자에 대한 대금정산이 불안정해질 수 있는 등 여러 문제점이 예상될 수 있는데도 수입당근을 상장예외품목으로 지정할 만한 뚜렷한 근거나 공익상의 필요성을 찾아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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