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럭저럭 이곳으로 이사 온 지도 6개월여가 흘렀습니다. 마을회의도 두 차례나 참석하긴 했지만 아직도 길가에서 만나는 이가 어느 골목에 사는지 모른 채 그냥 어색한 목례로 지나치곤 합니다. 사실 인사 나눴다하더라도 금방 잊어버리는 나이가 됐다는 걸 부정할 수가 없습니다. 아주 단단히 마음먹고 머릿속에 넣지 않는 한 그이의 신상명세를 꿴다는 건 이제 불가능합니다. 이러니 계속 모르고 지내다보면 문제가 생길 수도 있는 지라 뭔가 대책을 세우긴 세워야 할 판입니다.

사람들과 가장 빠르게 친해질 수 있는 방법은 밥을 같이 먹는 일일 겁니다. 하기야 이사 와서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도로 건너편에서 미니 슈퍼를 운영하는 반장(나중에 안 일이지만)이 집들이를 언제 할 거냐고 묻는 바람에 속으로 깜짝 놀라기는 했습니다. 그전에 살던 집주인도 국수를 삶아 이사 온 턱을 냈다면서 은근히 압박을 가하 길래 얼떨결에 떡이라도 돌릴 거라고 말했던 탓에 늘 부담감을 떨쳐 버리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먼저 살던 곳에서 집사람이 봄이면 이곳저곳을 다니면서 채취해놓은 쑥이 냉동고로 한 가득입니다. 면역력을 키우는데 쑥만큼 좋은 것이 없다는 게 집사람 지론이지만, 그걸 가공할 시간이 없어 늘 냉동고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게 문제긴 합니다. 제일 손쉬운 방법이 쑥떡을 만드는 거지만 그것도 현미로 할 건지, 멥쌀로 할 건지에 따라 쌀을 불리는 시간이 다른지라 집사람도 고민만 하다 그냥 넘어가곤 했었습니다.

어쨌든 9월도 벌써 초순이 넘어갈 무렵 늦게라도 배추모종을 사서 풀밭을 정리해 심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강릉농협본점 근처에 종묘상들이 모여 있어 일단 거기로 가 보기로 했습니다. 농협 주차장에 차를 대고 마트에 들렀더니 벌써 햅쌀이 포장돼 판매되고 있었습니다. 떡본 김에 제사지낸다고 10kg 햅쌀 한 포대를 덜컥 구입하고 인근 종묘상에 들러 배추모종 30포기를 3천원에 사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아마 햅쌀 포장단위가 5kg이하 소단위였다면 떡을 할 생각조차 안 했을 텐데, 이게 10kg나 되니 아예 떡을 하기로 결정하고 냉동실 쑥을 꺼내 해동하고 쌀은 커다란 스테인리스다라에 담아 불렸습니다. 떡이든 고춧가루든 늘 다니던 방앗간이 편합니다. 이곳에서 새로운 방앗간을 수소문해 찾아보는 일도 마땅치 않고, 일 년에 한두 번 어쩌다 찾는 방앗간인지라 마침 집사람도 동해에서 해야 할 일도 있어서 저 혼자 떡을 맞추러 단골방앗간으로 향했습니다.

가래떡 만드는 일도 그리 쉬운 일은 아니더군요. 세상에 어디 쉬운 일이 있겠습니까마는 늦은 나이에 장가를 갔다면서 싱글벙글하던 방앗간 주인장도 더운 날씨에 펄펄 끓는 찜통과 마주하니 안경너머로 흐르는 땀을 주체하지 못합니다.

반나절 이상 기다려 박스에 포장된 가래떡을 받아들고 집으로 향했습니다. 9월도 초순을 넘겼건만 더위는 물러날 생각이 없는 모양입니다. 아직도 떡은 따끈하다 못해 뜨겁습니다.

비닐봉투에 몇 가닥씩 나눠 담은 가래떡을 들고 우리 집과 가까운 이웃들에게 인사를 드리기 시작했습니다. 큰길 건너 미니 슈퍼를 하는 반장 댁은 물론 그동안 인사조차 나누지 않았던 우리 집 길 건너 반대편 두 집도 문을 두드려 떡을 나눴습니다. 먹을 거 받고 싫어하는 사람은 없겠지만 동네에 뭘 줘도 대놓고 싫어하는 아주 특이한 이도 있다는 전언에 따라 그 집은 생략키로 했습니다.

개울건너 신임 이장 댁은 펜션 텔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곳에 들어와 정착한 지도 근 20여 년이 됐다는 이장 댁 펜션 텔은 야외 바비큐 장은 물론, 뒤로는 수풀 우거진 산이 있고 앞으로는 개울이 흐르는 전형적인 배산임수 지형입니다. 가까운 곳부터 돌다보니 이장 댁은 제일 늦게 들르게 됐습니다. 마침 이장은 출타중이고 마나님이 반갑게 맞아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눌 수 있었습니다. 쑥 가래떡 한 말로 동네 인사 다하고 많은 정보도 얻었으니 역시 먹을거리가 제일 좋은 인사방법인 것 같습니다. 은근히 부담스러웠던 행사를 치르고 다리 쭉 뻗고 잘 수 있는 오늘은 가래떡 돌린 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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