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격·정밀·대량농업 목표 둔 화성 노진영농 이세영 대표

 



이름 : 이세영(1981년생)
주소 : 경기도 화성시 장안면 발읍재길 37-5
농장 : 노진영농조합법인 (수도작, 자경 30헥타르 임차 20헥타르)
전화 : 010-3342-0713



노진영농법인 이세영 대표는 늘 밝은 미소로 사람을 대한다. 긍정의 에너지, 활력이 넘친다. 화성 장안의 너른 들에서 50헥타르, 15만 평의 벼농사를 짓는다. 그럼에도 ‘배가 고픈’ 그는 나이 50줄에 50만 평 농사짓기가 자신의 이정표란다. 지금 여기, 일이 즐겁고 삶에 만족한다. 그는 농업인이 존중받는 사회를 몸소 만들겠다는 당찬 의지도 지녔다.

주경야독, 끊임없이 배우고 도전하는 삶

▲ 벼 베기가 한창인 화성 장안면 들녘.
푸른 모가 뒤덮었던 들판은 여름내 햇빛과 물을 머금더니 농부의 마음과 함께 황금빛 가을에 접어들었다. 화성 장안면 노진일대는 여러 대 콤바인이 지우개처럼 들판의 금색을 지워가고 있었다. 이윽고 길모퉁이에서 콤바인을 실은 트럭이 떠나자 훤칠한 청년이 모자를 흔들었다. 이세영(만36세) 노진영농법인 대표다. 새벽부터 어두운 밤까지 추수에 바빴을 그는 전혀 지친 내색이 없다. 달뜬 듯 경쾌한 어조, 빙그레 웃는 표정, 밝은 에너지가 넘쳤다.

“농수산대학 3학년 마지막 학기입니다. 배움에 대한 갈증으로 부모님께 부탁드렸죠, 농사일이 바쁘고 고생스러우시겠지만 해량해달라고. 한편으론 얼마나 배우겠나 했는데 정말 기대이상, 150프로이상을 배웁니다. 동급생들이 열다섯 살 어린데, 그 친구들에게 15년 후 내 나이가 됐을 때 한국농업이 기대된다고, 농수산대학을 나온 이들이 농업을 이끌어갈 것이라고 얘기하곤 합니다. 앞으로 농사짓겠다면 반드시 농수산대학에 가라고도 합니다.”

이 대표는 대학에서 미디어산업을 전공했다. 졸업 후 정보통신기술 관련업체에서 4년 남짓 일했다. 삼성전자 협력사였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전공공부도, 직장생활도 원하는 만큼 해보고 홀연히 떠났다. 적극적이고 사교성 좋은 성격이지만 대학시절 남들 다하는 엠티나 학과행사에 참여하지는 못했다. 주말이면 부모님을 도와 들판에서 일하기 일쑤였던 까닭이다. 부모님께서 힘들다며 농사규모를 줄이려고 할 때마다 극구 말렸다. 본인이 이어받아 열심히 할 테니 줄이지 말라고, 벼농사가 좋다고, 하고 싶다고. 그러니 그는 도시에서의 직장생활을 계획만큼, 그 맛을 알 만큼 해보고 본연의 길로 회귀한 것이다.

매듭을 꽉 죄지 않고 뉴질랜드로 향한 것은 우연이 아닌 듯했다. 직장에 미련이 남은 것은 아니지만 휴직하고 1년 연수계획으로 오클랜드에 갔다. 외국생활은 반년에 그쳤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혼자 가서 셋이 돼 귀국했다. 그곳에서 인생의 반려자를 만났고, 귀국당시 아이가 막 들어선 상태였다. 덕분에 결혼을 서둘렀고, 직장을 아예 관두고 농업인이 되었으며, 곧이어 ‘젊은 아버지’가 됐다. 올해로 결혼 10년차, 두 딸 비주(9세)와 주나(3세)는 조부모와 자연의 넉넉한 품에서 마냥 사랑스레 자라고 있다.

청년들 의기투합, 햇살영농 협동조합 추진

▲ 콤바인 배출오거를 통해 수확한 벼를 톤백에 옮겨 담는 광경.
아, 아이들 이름에 받침이 없죠. 아내가 일본인입니다.” 그의 배려가 묻어있다. 묻기 전에 친절하게 설명해주는 것도 그렇고, 발음이 쉽지 않은 일본인 아내를 위한 작명도 그렇다.

부인 타카미 아이 씨는 그와 동갑내기. 더 흥미로운 처가의 이력이 덧붙었다. 그의 장인어른도 일본에서 화훼농사를 하신단다. 육종분야 연구원 출신인 장인어른은 한국에 시클라멘을 소개하고 재배기술을 전수해준 장본인. 은퇴 후 육종도 하고 직접 꽃도 키우고 계신다. 얼마 전에는 손수 개발한 벼 품종을 주셨는데 밥맛이 일품이라고, 자신이 주로 재배하고 있는 고시히카리나 참드림 품종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고 귀띔했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는 시와 노랫말에 빗대어 “벼가 꽃보다 좋다”고 했다. 장인어른에게 잘 배워 꽃을 재배해봄직도 한데 벼농사가 더 좋다는 뜻이다. 흔히 뭔가에 꽂히면 끝장을 보는 집요함이랄까, 그는 쌀에 꽂혀 자신의 현재와 미래를 송두리째 걸고 벼농사에 전념하는 듯했다. 게다가 농사짓기가 그렇게 즐겁고 편할 수가 없단다. 회사 다닐 때는 정신적으로 스트레스가 심했는데, 논에서는 육체가 고될지라도 한 번도 힘들다 생각해본 적이 없다고. 이 대표는 자경 30헥타르, 임차 20헥타르 면적을 합쳐 50헥타르, 15만 평의 벼농사를 짓고 있다. 이른바 ‘영업’이라고 하는 대행농사나 곡초까지 치면 일거리는 더 많다.

▲ 들녘에서 부모님과 함께. 부지런함으로 대농을 일구신 부모님을 자랑스러워한다.
“젊은 이공삼공 친구들이 뜻을 모아서 협동조합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저도 영농조합을 4년째 운영하고 있는데 사실상 가족단위로 하다보니까 한계가 많습니다. 수익을 낼만한 도정이나 가공, 판매유통 시설은 엄두내지 못하고, 농사규모를 늘리려 해도 당장 농기계 구입 부담이 클 수밖에 없죠. 생산단가와 리스크는 최소화하고 수익창출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여럿이 힘을 합치고 서로 협력하는 것이 필연이다, 이런 생각에 공감한 청년들이지요. 처한 현실도 비슷하고요.”




“후회 말자, 기회 잡기 위해 더 노력하자”

▲ 맏딸 비주가 외할아버지와 함께 예초기를 다루고 있다.
살영농 협동조합은 설립이 코앞이다. 의기투합, 일사천리가 젊은이답다. 같은 처지의 청년농업인들이 머리를 맞대니 성공가능성이 높은 아이템 발굴도 속속 이뤄지고 있다. 지금까지 발기인으로 확정된 이는 여덟 명. 이들의 농사규모를 합치면 50여만 평에 이르고 대행농사면적을 더해 70만 평이 넘는다. 면면도 발군이다. 농수산대학 출신 두 명, 연암축산대학 두 명을 포함해 모두 전문지식을 갖춘 인물들인데다 농업에 대한 열정이 남다르다. 인터넷 보안프로그램 쪽에서 알아주는 전문가인데 억대연봉을 포기하고 귀농한 이도 있다.

이세영 대표는 햇살 협동조합을 추진하면서 꿈을 부풀리고 있다. 열 명 안팎의 조합원으로 시작하지만 향후 서른 정도까지는 규모를 늘린다는 생각이다. 물론 집단과 개인이 상존하는 체제에서 출자나 이익분배 같은 민감한 사안들은 조율이 필요하다. 국내 쌀 시장 조사는 물론이고 처가의 도움을 받아 일본 시장도 조사했다. 도정시설부터 가공시설, 유통판매점까지 차근차근 마련해가며 사업 확장을 꾀할 계획이다. 복안도 있다. 핵가족화에서 더 나아가 혼밥, 혼술이 유행하는 요즘 일인세대를 공략할 소포장 전략부터 최고의 쌀을 원료로 한 떡과 술도 구상단계에 있다.

현실은 녹록찮다. 쌀값은 큰 폭 떨어져 스무 해 전 쌀값이 됐다. 공무원 5급의 월급은 20년 전 120만 원에서 올해 420만 원으로 3.5배가 됐는데 쌀값은 제자리라니 농업인의 상대적 박탈감은 절대적이다. 근년에 쌀값이 줄잡아 20퍼센트 이상 떨어진 반면 생산비는 꾸준히 올랐다는 사실까지 고려하면 쌀 재배농가의 수익성 악화는 상상을 초월한다. 규모가 작지 않은 쌀 전업농가 사이에서는 ‘반 토막’이라는 말이 심심찮게 나돌고 있는 형편이다. 그럼에도 이세영 대표는 희망의 끈을 동여매고 있다. 현실아, 한판 붙어보자, 달려들 태세다.

“후회하지 말자, 기회를 잡기 위해서는 더 많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 제 좌우명이랄까, 지론입니다. 무언가 선택을 하는 시기가 오잖아요, 그때 해보지도 않고 나중에 후회하지 말자는 거예요. 도전해보고, 완주해보고 되돌아봐도 늦지 않다고 봅니다. 규모를 착실히 늘려 50줄에 50만 평 농사짓는 것이 제 인생의 이정표입니다. 미국 기업농처럼 원격으로 관리하며 짓는 농사, 농업인이 존중받고 여유롭게 즐길 수 있는 시대를 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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