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이월은 반추의 계절인가, 대개 올해를 되돌아보기 마련이다. 분야별로 올해의 인물을 선정하거나 시상하기도 한다. 해마다 각 분야를 빛낸 인물을 뽑고 상을 주는데, 관전만으로도 즐겁다. 덕분에 호사가들은 연말이면 그 어느 때보다 호들갑이다. 시상식이라도 있으면 누가 뽑힐 거야, 쟤는 아닌데, 저이는 받을만하지, 주최 측의 농간이야 등등 각종 음모론까지 나오니 한 발 물러나 관전하면 참 재미있다.

프로야구계는 최근 포지션별 황금장갑을 비롯해 올해의 선수상을 수여하며 올 시즌을 마감하고 스토브리그에 접어들었다. 청룡영화제나 대종상 등 영화계의 잔치도 이맘때에 열린다. 연말까지 치열한 경합을 벌일 방송분야 시상식은 십이월 내내 진행형이다. 연예대상, 가요대상, 연기대상 등 안방극장을 누비는 이들의 결산서가 되기 십상이다.

언론사들의 뉴스 선정도 한창이다. 예컨대 ‘농업인신문사 선정 2017년 농업계 10대 뉴스’ 같은 식이다. 스포츠신문은 체육계 주요뉴스를 선정하고, 연예계도 시상식과는 별도로 올해 주요뉴스를 뽑아 소개한다. ‘세기의 결혼식’은 단골이다. 정치 사회 경제 문화는 물론 각계각층, 지역별 올해의 인물 선정도 보편적이다. 교수신문의 ‘올해의 사자성어’도 흥미롭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이 매년 십이월에 선정해 발표하는 ‘올해의 인물’은 세간의 화제가 되고는 한다. 1927년 대서양 횡단 비행을 한 찰스 린드버그가 첫 인물로 선정됐다. <타임>지는 해마다 ‘영향력’을 잣대로 지금까지 아흔 번을 선정했다. 올해의 인물 중에 미국인, 정치인, 대통령이 압도적으로 많다. 생존인물뿐 아니라 단체 같은 비특정 인물, 컴퓨터, 위험한 지구 등도 ‘올해의 인물’에 뽑혔었다.

<타임>지가 지난 6일 발표한 올해의 인물은 ‘침묵을 깬 사람들(the silence breakers)’이다. 영화배우 애슐리 주드, 팝스타 테일러 스위프트, 전 우버 엔지니어 수전 파울러, 기업 로비스트 아다마 이우, 가명의 일반인 이사벨 파스쿨, 이렇게 다섯이 표지를 장식했다. 이들은 모두 침묵을 깨고 성폭력 피해 사실을 폭로하는 ‘미투’ 캠페인에 동참했다. 지난 2002년 월트컴, 엔론, 연방수사국(FBI) 비리를 폭로한 ‘내부고발자들(the whistle blowers)’ 선정과 비슷하다.

최종 선정까지 각축을 벌인 이는 도널드 트럼프다. 그는 미국 대통령에 당선한 지난해에 ‘올해의 인물’에 선정됐다. 올해는 침묵을 깬 사람들에게 석패(?)해 2위에 머물렀다. 연속 이태 뽑힌 이는 지금까지 미국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유일하다.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 격일까, 올해의 인물 발표 닷새 뒤에 여성들이 ‘미투’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침묵을 깨고, 트럼프에게 성폭력 피해를 당했다고 폭로했다.

침묵을 깬 사람들. 미투 캠페인. 굳이 풀어 말하자면 ‘나도’ 당했음을 용기 있게 드러내는 운동이다. 미투 캠페인이 한동안 큰 흐름이 될 것이란 예상이다. 당장 미국 대통령 트럼프의 앞날도 안개 자욱한 형국이다. ‘미투’에 연루된 유력 정치인들의 사퇴, 출마포기, 낙마 사례도 적잖다. 최근에는 앨라배마 주 상원의원 보궐선거에서 트럼프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던 로이 무어가 패배하는 이변이 일어났다. 그는 미성년자 성추행 혐의로 곤욕을 치렀다.

우리나라는 어떨까?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미투’든 내부고발이든, 하나둘 터져 나오지 않을까? 한때 세간에 떠돌던 ‘엑스파일’이 재조명되지 말란 법은 없다. 그것이 섹스 스캔들이든 성폭력 폭로든 사회적 파장은 매우 클 것이다. 이미 정치자금법 위반, 뇌물수수 등으로 적잖은 정치인들이 법정에 서고 있음을 고려하면 내부고발과 미투의 ‘결합 확장성’마저 예상된다.

우리나라 한 취업포털기업에서 설문조사를 거쳐 올해의 인물을 선정해 발표했다. 호감인물로는 문재인 대통령, 손석희 JTBC 뉴스부문사장, 이국종 아주대병원 교수, 올해 작고한 함영준 오뚜기 회장 등이 뽑혔다. 정치법조분야는 문재인 대통령에 이어 촛불민심, 이정미 전 헌법재판관이 2, 3위에 올랐다. 비호감 인물도 선정했는데 박근혜 전 대통령이 1위를 차지했다.

올해의 인물 면면을 떠올리며 다사다난했던 올해를 되돌아본다. 십이월 달력에 20일이 수요일인데 왜 빨강글자인지, 뭔 공휴일인지 더듬어 생각하다 맞다, 대통령선거일이었지 하고는 피식 웃는다. 지난해 달력을 제작할 시점에는 십이월 대선이 예정됐지만 그 사이 대통령이 탄핵되고 파면되었다. 이제는 십이월 대선이 아니라 오월에 치르는 ‘장미 대선’이 되었다.

올해의 인물이든 올해의 작품이든 하나의 상징이 되어 우리 기억이 되고 역사가 된다. 린드버그가 1927년에 비행기로 대서양을 건넜다는 것도, 1989년 소비에트연방 해체의 중심에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있었다는 사실도, 2003년 올해의 인물로 선정된 미국 병사들이 대대적인 이라크 침공으로 사담 후세인을 붙잡았다는 것도 기억해낸다. ‘침묵을 깬 사람들’도 우리 기억저장소에 각인돼 2017년을 대표할 것이다.

한 해를 되돌아보는 일은 개인적으로도 꼭 필요하다. 다사다난했다고, 다 잊자고, 이제 보내주자고 세밑이면 우리는 의식을 치르듯 삶을 되짚어본다. 잘잘못을 따질 일은 아니다. 더 나은 나, 더 좋은 삶을 위해 자신을 성찰하는 엄숙함이 세밑에 제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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