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규제·공동책임이 의무자조금의 핵심

▲ 김응철 충남대학교 자조금연구센터 부센터장.
수산 의무자조금이 대체 뭐야? 자조금은 왜 필요한데? 거출은 어떻게, 얼마나 하지? 돈 거둬 뭐하나? 실효성이 있을까? 과수 의무자조금 도입이 코앞에 다가왔다. 그간 임의자조금을 운용해오던 사과, 배, 감귤, 키위 품목단체가 2018년 의무자조금 시행을 의결했으며 포도, 복숭아, 단감도 조만간 의무자조금 도입을 확정할 듯하다. 기존 임의자조금에 대한 정부지원도 올해로 끝난다. 지난 10월말에는 농수산자조금법 개정안이 공포돼 내년 5월부터 시행된다. 농업인신문사, 과수농협연합회 공공기획으로 과수 의무자조금제도를 다룬다.

농수산자조금법 개정, 내년 5월 시행

농수산자조금의 조성 및 운용에 관한 법률. 일명 농수산자조금법은 지난 2013년 2월부터 시행돼 농수산업 의무자조금 도입의 근거가 됐다. 그러나 자조금위원회의 법적 권한과 책임 등이 명확하지 않은 데다 품목단체들이 해당 농가 전체를 아우를 역량이 부족한 탓으로 의무자조금 도입은 지지부진했다.

지난 2000년 이후 임의자조금을 운용해오던 20여 단체 중에서 올해 기준으로 의무자조금이 도입된 농수산물은 인삼, 파프리카, 백합, 친환경농산물에 불과했다. 의무자조금단체의 자율적 수급관리 등 법적 근거가 미흡하기 때문에 이를 보완하는 차원에서 농수산자조금법 개정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결국 지난 2월 이양수 의원 대표발의로 농수산자조금법 개정안이 상정됐으며 올해 9월 28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개정법이 10월 31일 공포됨에 따라 6개월이 지난 2018년 5월부터 시행된다. 일각에서는 개정법 시행 전 의무자조금 설치가 유리하다는 판단 아래 도입을 서두르고 있다.

바뀐 농수산자조금법의 뼈대는 △정보와 통계자료 제공 △거출금 납부자 우선 지원 등이다. 의무자조금을 설치하려는 단체에 해당 품목의 농수산업자 정보와 통계자료 등을 제공할 수 있는 근거가 생긴 것이다. 아울러 납부자 우선 지원책이나 수급조절 기능 등 자조금위원회의 일정한 법적 권한도 명시됐다.

자조금단체는 현재의 가입 농가뿐 아니라 해당 품목 전체농가의 정보와 각종 통계자료를 정부기관으로부터 받아 활용할 수 있게 됐다. 이로써 의무거출 고지가 용이해지고 ‘무임승차’가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납부자에게 정책의 전부 또는 일부를 우선 지원할 수 있도록 한 것도 자조금제도 운용에 박차로 작용할 듯하다. 향후 의무자조금 미가입자나 거출금 미납자의 경우 각종 정부지원 사업에서 배제될 것이란 전망이다.

▲ 의무자조금사업 예시

자조금은 생산자의 자율규제 중 하나

“사람이 있어요. 독화살을 맞았습니다. 당장 뭐부터 해야 할까요? 어느 방향에서 날아왔는지, 누가 쐈는지 등등 따지고 분석할 일이 아니죠. 사람을 구하는 일이 시급한 일입니다. 화살을 처리하고, 독을 제거하고, 해독하며 치료해야겠죠.”

충남대학교 자조금연구센터 김응철 부센터장은 우리 농업에서 가장 시급한 문제로 ‘가격’을 꼽았다. 농산물 가격의 불안정성을 ‘독화살’에 비유했다. 그는 농업생산액이 46조 원일 경우 농산물가격이 절반으로 떨어지게 되면 생산액도 절반이 되고 23조 원이 단번에 허공에 날아가 버리는 셈이라고 했다.

미국 연방정부의 농업정책 목표가 중소농가 보호라고도 했다. 그에 따르면 미 연방정부는 중소농가 보호를 위해 개별농가에 보조금을 주지 않고 의무자조금단체에 돈을 줘 스스로 자구책을 쓰도록 한다. 이 의무자조금을 통해 주요 유통주체들이 가격을 공개하고 낮은 가격으로는 팔지 않게 하는 것, 즉 농산물의 적정가격 유지책이 중소농가 보호라는 정책목표에 맞물려 있다고 강조했다.

▲ 의무자조금 관련 자원사업

농수산 자조금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그는 ‘공유지의 비극’과 ‘공동체의 자율규제’를 설명했다.
공유지의 비극은 생물학자 개럿 하딘이 1968년 <사이언스>에 발표한 논문에서 제시됐다. 주인이 따로 없는 공동 초지에 농부들이 더 많은 이득을 위해 경쟁적으로 양을 방목하면서 공유지는 곧 황폐화돼 아무도 양을 치지 못하게 됨을 경고하는 개념이다. 영국 산업혁명 당시 실제 일어난 일을 보편적인 사회현상으로 주목했다.

공유지의 비극은 초지 분할과 울타리 치기로 해결이 가능하다. 이는 곧 공동체 구성원들의 합의, 자율적인 규제 혹은 자치제도를 의미한다. 농업선진국의 공통점은 생산부터 유통까지 전 과정에 걸쳐 ‘자율규제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다는 점이다.

농수산업자간 자율규제, 자치제도는 다양한 형태로 실현된다. 공동학습, 출하정보 공유, 경작신고, 출하신고, 경작시기 조절, 재배매뉴얼 준수, 영농일지 기록과 제출, 생산유통 이력관리, 수확일 협의확정, 공동생산, 공공구매, 공동물류, 공동출하, 공동정산, 브랜드 통합, 출하일과 출하처 지정, 출하예약제 운영, 시장출하기준 지정, 자조금 거출, 단일유통조직 지정, 출하규격 지정, 등외품 처리방법 지정, 산지폐기, 생산과 출하 조정, 휴식년 지정, 생산유통 면허제, 생산자 책임 최저가격제 등등.

농수산 자조금은 공동체 혹은 집단의 자율규제 가운데 한 방식이다. 공동학습부터 최저가격제도까지 다양한 자율규제책은 지역 작목반 규모에서 실현될 뿐 더 큰 공동체 단위에서는 쉽지 않은 형편이다. 그나마 주산지 단위로 출하 조정이나 산지폐기 등 자율규제가 간헐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농산물 가격안정이 가장 중요합니다. 의무자조금은 생산자끼리 자율적인 규제를 통해 공동이익을 도모하는 방식입니다. 소수가 반대해도 다수가 찬성하면 이행할 수 있어야 적정가격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최근 사과가격 폭락처럼 가격이 떨어진 뒤 정부와 농업인이 서로 탓하면 뭐합니까? 결국 공동이익을 추구하듯 공동책임의식을 지녀야 합니다.”

김응철 부센터장은 세계무역기구 보조금감축협약에 따라 정부의 직접 지원이 줄어들 수밖에 없는 등 농산업분야 의무자조금 도입은 필연에 가깝다고 했다. 아울러 공동이익을 도모하는 공동체의 자율규제, 특히 농산물 가격안정을 위한 공동의 노력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저작권자 © 농업인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