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상개시 위한 국내절차 ‘초스피드’‘대응책 부재’속에 공청회 개최

▲ 한국농축산연합회와 축산관련단체협의회는 지난 1일 청와대 앞에서 한·미fta 폐기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한미FTA폐기’ 발언에 놀라 개정협상 하겠다고 돌변한 정부가, 이번에는 대책도 논의되지 않은 가운데 느닷없이 공청회 개최를 공식 밝혔다. 공청회는 개정협상 개시를 위한 국내절차의 첫단계로, 보통 각 산업분야별로 경제적 타당성을 검토하고 상대국의 전략을 따져본 뒤 열어야 하는데, 모두 생략된 것이다. 이에 농업계는 한미FTA폐기를 주장하며 전면전을 선포하고 나섰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최근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오는 10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 308호에서 공청회를 개최한다고 일정을 공고했다. 정부 대표단은 공청회를 열고 통상조약 체결 계획을 수립한 뒤 국회 보고를 마쳐야 협상에 임할 수 있도록 ‘통상조약의체결절차및이행에관한법률’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10월초 미국에서 열린 한미FTA 개정 2차공동위원회 특별회기를 마치고 돌아와 20여일만에 공청회 개최를 공고한 것이다.

공청회 왜 서두르나

지난달 4일 미국 워싱턴 무역대표부(USTR)에서 열린 한미FTA 공동위원회 제2차 특별회기가 끝나자, ‘FTA 개정 필요성에 사실상 합의를 봤다’는 180도 돌변한 정부의 입장 발표가 나왔다. 이전까지 정부는 개정협상 여부는 한미FTA가 발효되면서 양국간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평가분석이 우선돼야 한다는 입장을 피력해왔다. 이를 미국측에 알렸고, 미국의 답변을 기다리던 차였다.

제1차 특별회기가 끝난뒤 미국은 한반도의 안보와 연계된 각종 협박과 전시에 준하는 선전포고 발언까지 서슴지 않았다. 또한 세탁기에 대한 세이프가드를 제기하며 무역장벽을 노골적으로 표현했고, 급기야 트럼프 대통령은 FTA 협정 폐기를 언급했다. 결국 상호호혜성을 강조하며 수세적으로 움직이던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이 ‘끌려간 합의’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정부의 백기 투항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곧바로 공청회 개최를 밝히며 개정협상 개시를 위한 국내절차에 착수했다.   

통상 공청회 등 국내절차는 해당협상에 대한 경제적 타당성이 검토되고, 이에 대한 대책논의를 충분히 거친 뒤에 일정을 짜게 된다는 게 통상전문가들의 전언이다. 또한 협상 상대국의 전략과 예상되는 각종 시나리오를 따진 뒤 국민적 합의를 이끌기 위해 시간을 버는 기회이기도 하다는 분석이다. 정부는 이를 생략하고 개정협상을 위해 국내절차를 서두르고 있는 것이다. 통상전문가들은 정부가 기회까지 저버리고 쫓기듯 공청회를 서두르는 이유를, 트럼프 방한 일정에서 찾고 있다. 한 통상전문가는 “7일 방한하는 미 대통령의 환심을 사기 위한 일종의 ‘액션’으로 봐야 한다”면서 “트럼프대통령이 폐기를 위한 편지까지 작성했다는 정보가 퍼지면서 실제적인 ‘폐기위협’이라고 판단한 정부가, 이를 봉쇄하려고 준비한 것으로 풀이된다”고 말했다. 

미 농업계는 왜 폐기를 반대하나

이렇듯 한미FTA 개정에 부정적이었던 우리 정부는 미국측의 ‘폐기’ 언급이 실제적 위협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에 ‘끌려가는 협상’에 임하게 됐다는 분석이다. 미국내에서도 트럼프대통령의 폐기발언이후 이를 반대하거나 실제 폐기를 우려하는 산업분야에서 반대 성명 등이 우후죽순 발표된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미 농업분야 단체들의 반대의견이 줄을 이었다. 농업계의 주문을 받은 미 연방의원들은 한미FTA 폐기는 미국의 중대한 과오가 될 것임을 지적했다.

이에 따르면 연방의원들은, △한국은 미국산 치즈의 두 번째 큰 수입국이며, 한미FTA 폐기 시 미국 낙농업계는 타 경쟁국들에게 밀려 약 2억 달러 가치의 시장을 잃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 △한미FTA 발효후 감자와 체리의 한국 수출량이 크게 증가한 점도 강조했다. △돼지고기의 경우 한미FTA 발효후 한국의 미국산 돼지고기 수입이 두배 가까이 증가했으며, 만약 한미FTA를 폐기하게 되면 한국시장을 EU, 칠레 등 다른 국가에게 넘겨주게 된다고 폐기를 반대했다.

연방의원들은 “한미FTA가 5년밖에 되지 않은 협정이며 아직 완전히 이행됐다고 볼 수 없기 때문에 섣불리 그 성과를 판단하기 이르고, 향후 미국기업들에게 한국 내 시장 진출을 확대시켜 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적시했다.        

말뿐인 ‘농업사수’

9월27일 워싱턴을 방문했던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은 기자간담회를 가진 자리에서 “FTA 폐기 위협을 효과적으로 봉쇄할 방안을 모색하면서 개정협상에 대비하겠다”고 말했다. ‘효과적인 봉쇄’의 의미는 한미FTA 체결 당시의 스타일대로 경제외교에 임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농민단체 한 관계자는 “한미FTA가 자주외교, 실리외교가 아닌 굴욕적인 외교로 분석되고 있고, 이때의 주역이 김현종 본부장이란 점을 상기하면 또 다시 농업희생을 담보로 한 불투명한 협상을 진행하겠다는 뜻으로 읽힌다”고 언급했다.

김 본부장은 지난달 31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종합국감에서, 국민의당 손금주 의원이 “트럼프 대통령이 방한 시 미국산 쌀 쿼터 확대 요구 등을 할 것이라는 농축산업계 우려가 있는데, 쌀이나 농산물에 대한 재협상을 할 것이냐”고 묻자, “쌀은 지난번에도 안했기 때문에 이번에도 안한다. 쌀은 손대는 순간 이건 끝이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에 대한 대응책에 대해선 함구했다.

30일 농해수위 국감에서는 더불어민주당 박완주 의원의 “지난 2014년 쌀은 한미FTA 양허 제외라는 정부 입장에 변화가 있느냐”는 질문에, 김영록 농식품부 장관은 “일정부분 미국측의 요구가 있을 것으로 보이지만 농업부문에서는 더 이상 한미FTA 양보할 부분은 없다”고 답했다. 김동연 경제부총리 또한 30일 국감에서 “한미FTA는 무역측면에서만 볼 게 아니라, 우리 경제의 대외신인도나 거시경제에 미치는 효과를 같이 봐야 한다. 다만 한미FTA를 통해 피해 본 산업에 대해선 적절한 방법을 찾겠다”고 말했다.

일단 정부 주요 책임자들은 ‘농업보호’를 약속했다. 그러나 트럼프의 협박에 개정협상으로 돌변했던 것으로 감안하면, 전혀 신뢰할 수 없다는 게 농업계의 반응이다.

농업계, “한미FTA 폐기해라”

지난 1일 청와대앞 분수대와 국회의사당앞에선 농민단체 연합체인 한국농축산연합회와 축산관련단체협의회가 기자회견을 갖고, 한미FTA폐기를 주장했다. 농축산업이 일방적으로 피해를 입고, 관련 종사자들은 사지로 내몰리고 있는 한미FTA는 폐기돼야 마땅하다고 외쳤다.

축단협에 따르면 2016년 농림수산분야 대미 무역수지는 58억5천700만달러 적자를 기록했다. 농축산물은 FTA 발효전 5년 평균 대비 지난해 수출은 3억6천600만달러 증가했으나 수입은 13억3천200만달러 증가하면서 무역수지는 약 10억만달러 악화됐다.

이날 농민단체들은 “미국은 자국 산업보호를 근거로 한미FTA 재협상을 요구하고 있듯이, 우리 정부도 농축산물의 시장 보호를 위해 한미FTA폐기해야 한다”면서 “농축산업이 요구해온 무역이득 공유제, 피해보전 직불제 현실화, 수입 축산물 검역강화 등이 반려되고 있는 현실이 불안하다”고 언급했다.

이날 농민단체들은 미국이 주도해 나갈 FTA개정협상에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미국산 쌀에 대한 TRQ(저율할당관세) 별도 배정 △쇠고기·돼지고기·낙농제품 등의 관세 조기 철폐, △동식물 검사·검역 절차(SPS) 대폭 축소, △미국에만 일방적으로 유리한 분쟁조정절차 신설, △농업·농촌관련 투자자-국가 소송(ISD) 관련 조항 개악 등이 협정으로 귀결되지 않을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한농연 또한 6일 기자회견을 갖고, “농업분야의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재협상이 국내 농업에 미치는 영향이 막대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정부는 국익 최우선 보호라는 통상협상의 원칙대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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