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만세. 벌써 40년이 흘렀다. 일요일 아침이면 흑백텔레비전 앞에 삼대가 둘러앉아 함께 보던 프로그램으로 기억한다. 장수 노인과 그 가족들이 출연해 노래를 부르고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형식의, 이른바 시청자 참여 오락프로인 장수만세는 라디오로 시작해 텔레비전까지 인기를 끌었다. 동양방송사(TBC)에서 1973년부터 1980년까지, 한국방송공사(KBS)가 바통을 이어받아 1983년까지 방영했으니 장수만세는 프로그램 이름대로 장수한 셈이다.

되짚어보면, 백발이 성성한 노인을 주인공으로 대개 그 3세, 4세손까지 스무 여남은 명의 대가족이 출연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상대적으로 조혼에 가깝던 당시에는 일흔이 넘으면 이미 증손까지 본 연륜이었다. 그렇듯 건강하게 장수한 이들은 다복해보였다. 집안사정이야 서로 다르겠으나 출연한 노인과 그 가족은 화목한 분위기로 시청자들의 부러움을 사기에 충분했다. 나도 저리 곱게 늙어야지, 나중에 크면 부모님 건강하게 잘 모셔야지, 가정을 꾸리면 아이들 잘 키워야지 하며 세대가 다르듯 시청소감도 서로 달랐을 법하다. 무병장수는 새해 덕담이기도, 일상의 바람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제는 ‘노인문제’라고들 한다. 예전에도 노인문제는 있었겠으나 격세지감이 격하다. 인간만이 그러겠는가, 무병장수를 바람은 동물적 본능에 가깝다. 늙고 병들어 오래 살지 못하는 것이 문제인데 인간사회만이 오래 사는 일을 문제 삼는다. 왜 그럴까 생각해보면, 인간이고 인간사회이기 때문이라고, 자문자답이 우문현답이다. 늙음을 화두 삼는 일은 잘 먹고 잘 살기 위한 고민이요 노후 안전장치를 마련하기 위한 방책인 것이다. 노인층이 사회 주류를 형성하면서 노인문제가 사회문제로 대두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사실 노인문제라고는 하지만 고령화문제라고 하는 것이 더 적확하다. 고령화는 단순하게 ‘늙는 과정’이기도 한데, 학술적으로는 총인구 중에 65세 이상 고령자의 인구비율이 늘어나는 현상을 말한다. 국제연합(UN)이 제시한 바에 따르면 전체인구 중 65세 이상 노인의 비율이 4퍼센트 미만이면 ‘연소인구사회’라 부르고 7퍼센트 미만이면 ‘성숙인구사회’라고 한다. 그 다음에 우리에게 익숙한 고령화사회, 고령사회, 초고령사회에 차례로 진입한다. 노인인구 비율이 7퍼센트 이상이면 고령화사회, 14퍼센트 이상이면 고령사회, 20퍼센트 이상이면 초고령사회가 된다.

우리나라는 어디까지 왔을까? 통계청에 따르면 1965년 우리나라 65세 이상 인구는 1965년 88만 명에서 2005년 432만 명으로 5배가 됐다. 최신 조사결과는 2017년 2월말 현재 706만 명이다. 폭증이다. 반면 14세 이하 유소년은 같은 시기 1천258만 명에서 922만 명, 688만 명으로 줄었다. 노인인구가 유소년인구를 앞지른 것이다. 세계 각국을 살펴봐도 한국의 노인인구 급증과 출산율 저하는 유례가 없다. 나이 60줄은 어딜 가도 노인이 아닌 중장년쯤으로 소개한다. 그만큼 기대수명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통계청의 장래인구추계는 흥미롭다. 고령화 속도가 남다르다. 통계청은 1997년에 장래인구를 예측하면서 한국은 2022년에 고령사회, 2032년에 초고령사회에 진입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불과 3년 후인 2000년 추계로는 고령사회, 초고령사회가 각각 2019년, 2026년에 도래할 것으로 봤다. 그런데 결과는 예측보다 더 빠르게 나타나고 있다. 2017년 2월말 현재 고령인구 비율이 13.7퍼센트였으니 이미 14퍼센트를 돌파해 고령사회에 진입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일찌감치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농촌, 농가인구 통계를 빼놓을 수 없는 일이다. 1995년부터 2015년까지 20년간의 농가인구추이는 한국사회의 선험자라고 할 수 있다. 농가인구 485만 명 중에 65세 이상이 78만4천여 명. 농가의 노인인구비율은 1995년 16.2퍼센트로 이미 고령사회에 진입했다. 5년 뒤인 2000년에 21.7퍼센트, 초고령사회가 됐다. 이후 농가인구는 2005년 343만여 명, 2010년 306만여 명, 2015년 257만 명으로 줄어든 반면 65세 이상 고령인구는 10년 내내 99만 명 수준을 유지해왔다. 그러니 고령인구비율이 2015년 38.4퍼센트에 달했다. 농가인구의 절반이 이른바 ‘노인’이 될 시대도 멀지 않다.

호모 헌드레드(Homo Hundred)가 등장했다. 인류의 조상을 호모 사피엔스라고 부르는 것에 비견해, 평균적으로 백 살에 가깝게 사는 인간 혹은 그런 시대를 뜻하는 말이다. 국제연합이 2009년에 작성한 ‘세계인구고령화’라는 보고서에 처음 올랐다. 국제연합은 국민 평균수명 80세 이상인 나라가 2000년 6개국에서 2020년 31개국으로 급증할 것으로 예측했다. 전 세계적으로 백 살이 넘는 인구는 2013년 34만3천여 명으로 파악됐는데 2050년이면 그 열 배에 가까운 320만 명이 될 것으로 예측하기도 했다. 우리나라 백 살 이상 인구는 2012년에 2천386명이었다. 2030년에 1만 명, 2040년이면 2만 명에 이를 것이라는 예측이다.

“사람들은 훨씬 더 오래 일할 것이고, 90세에도 자기계발을 멈추지 말아야 할 것이다.” 최근 전 세계에 ‘호모 사피엔스 증후군’을 불러온 유발 하라리의 문제의식이 제대로 담긴 말이다. 인구 고령화와 더불어 ‘수명 양극화’가 사회문제로 떠올랐다. 소득불균형에 따른 빈부격차만큼이나 심각하다. 이미 초고령사회에서 부랑하고 있는 농촌지역에서 해답을 찾지 못하면 한국사회는 ‘인구 수렁’에 빠질지 모를 일이다. 호모 헌드레드 시대에 알맞은 농정을 마련해야 할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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