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온 동네에서 두 번째 마을회의에 참석했습니다. 워낙 날이 뜨거워 새벽녘과 해가 질 무렵에만 밭에 나가게 됩니다. 그날도 집사람과 함께 저녁 무렵 밭에 나가 오이라도 딸 게 있나 살피고 있는데 밭주인 아주머니가 헐떡거리며 다가와 마을회의가 있으니 회관으로 빨리 가자며 재촉해 일단 저만이라도 가겠다고 따라 나섰습니다.

한집 건너 마을회관이 있지만 지난 번 마을회의 때 들어가 보고는 다시 갈 일이 없어 지나치곤 했는데 이번에 보니 안이 상당히 넓더군요. 하기야 지난번에야 어디 제대로 훑어볼 여유나 있었겠습니까, 그냥 앉아있다 나온 셈이니 뭐가 어디 있는지 보질 못했으니까요.

지난번 회의도 얼떨결에 참석했었는데 이번에도 미리 회의가 열린다는 정보도 없이 땀에 절은 모습으로 어설픈 웃음 흘리며 머리를 조아리면서 회의장에 들어가니 꽤 많은 이들이 모여 일제히 저를 쳐다보니 참 어색하더군요.

회의를 개최한 이는 마을노인회 회장이고, 회의주제는 신임 이장선출과 마을정관을 개정하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그나마 어색한 자리를 피할 수 있었던 거는 밭주인과 옆자리에 앉을 수 있어 안부인사라도 나눌 수 있어 다른 이들의 시선을 피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마을 원로 한분이 마을회관운영에 대한 정관을 이러이러한 방향으로 개정하고자 한다면서 읽어 내려가니 대낮부터 술추렴을 했는지 얼굴이 불콰해진 한 주민이 언성을 높이면서 삿대질을 하고, 이를 비난하는 할머니들이 소리를 지르고 회의장은 아수라장이 될 판이었습니다. 저야 아직 뭐가 뭔지 파악도 하지 못한 상태에서 한마디 할 수도 없는 처지라 그저 바라만 볼 밖에요.

마을일 이란 게 따지고 보면 누군가는 이 일로 인해 이익을 취할 수 있는 구조를 가지고 있어 그걸 반대하는 이들과 첨예하게 대립되는 모양입니다. 마을회관운영에 관한 정관을 개정하는 일도 전임이장이 사적으로 세를 놓을 수 없는 회관 2층에 마을 부녀회장이 세를 살도록 해주고 실제 세를 받는지 안 받는지조차 알 수 없는 상황이 불거졌기 때문이랍니다.

사람이 모여살고 있는 사회는 작든 크든 문제를 안고 있기 마련입니다. 윗마을과 아랫마을 합해 대략 40여 호 되는 마을주민들은 대부분 고령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입니다. 홀로 사는 할머니들은 할머니대로, 또 홀아비로 사는 할아버지들은 할아버지들대로 시간을 보내고 살아가는 방법이 부부가 함께 사는 이들과는 다를 수밖에 없을 겁니다. 할머니들이야 누군가의 집에 모여 수다를 떨거나 뉘 집 험담이라도 하면서 깔깔거리는 게 낙일 수 있을 거고, 할아버지들은 그저 소주잔 기울이면서 이 골목 저 골목 일들을 안주삼아 나름대로 재단하고 판단하면서 낄낄거리다가 흥분하기도 할 겁니다.

전형적인 농촌마을도 아니고, 그렇다고 도회지도 아닌 어정쩡한 마을에서 이권이 개입되는 일이 발생하면 시끄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하루라는 긴 시간을 어쩌지 못하는 심심한 늙은이들이 많을수록 마을 일을 일사불란하게 처리하는 건 어려운 일입니다.

이장도 노인회장도, 부녀회장도 전부 나름의 이권이 있으니 전부 탐을 내지만 그렇다고 아무나 할 수 없으니 분열과 패거리가 만들어집니다. 이장이 되겠다고 현 노인회장이 노인회장직을 사퇴하고 주민들 서명을 받으러 다니는 건 분명 노인회장보다는 이장으로서 누릴 이권이 더 크기 때문일 겁니다.

두 갈래 골목길로 이어지는 마을에서 그나마 첫 골목 첫 집이라 덜 시끄럽긴 합니다만 워낙 지붕들이 어깨동무를 하고 있는지라 모든 게 조심스럽습니다. 괜한 구설수에 휘말리지 않으려면 그저 조용하게 엎어져 있는 게 상책일지도 모릅니다.

불가근불가원, 너무 가깝게 지내려고 하지도 말고 그렇다고 너무 혼자만 지내지도 않으려면 그저 눈에 띄는 이들과 인사나 열심히 하는 게 지금으로서는 최선책이라는 생각입니다.

뭔가 이권을 얻기 위해 삼삼오오 패거리를 만들고 그로 인해 서로 인사조차 나누지 않는다니 인간사 다 그러려니 하지만 깊은 산속에서 살 걸 괜히 마을 한가운데로 내려온 게 아닌가 후회가 되기도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그냥 살아갈 밖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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