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대포에 스러져 삼백열이레 사경을 헤매다 숨진 백남기 농민. 그가 우리 곁을 떠나고 어느새 삼백예순날이 저물었다. 각계각층이 백남기 1주기를 엄수했다. 가톨릭농민회 등 농업인단체는 서울도심에서 대규모 추모행사를 여는 한편 농정개혁과 대통령직속 농어업특별위원회 설치를 촉구했다. 사회시민단체들은 공권력이나 헌법정신 등을 주제로 국회토론회를 개최하고 재발방지대책을 요구하기도 했다. 아울러 사법당국의 엄정한 수사와 조사, 책임자 처벌 등을 청원했다.

‘백남기 사건’과 관련해 가장 큰 변화는 정부의 태도에서 일어났다. 지난 2015년 11월 14일 사건발생 당시 경찰청장이었던 강신명은 2016년 8월말 청장에서 물러날 때까지 줄곧 “정당한 공무집행과정에서 발생한 사고”라며 사과를 거부했다. 후임 이철성 경찰청장도 마찬가지였다. 대통령은 물론 경찰지휘부 어느 누구도 사과는커녕 오히려 시위대의 불법성만 문제 삼으며 본질을 호도해왔다. 결국 정권이 바뀐 올해 유월에야 경찰청장이 머리 숙여 사과했다. 경찰개혁위원회 발족식 자리에서였다. 당시 청장 강신명은 사과하지 않고 있다.

정부 변화의 꼭짓점에 이낙연 국무총리의 사과 연설이 있다. 이 총리는 19일 ‘정부를 대표해’ 백남기 농민과 유가족에게 사과했다. “백남기 농민은 쌀값 폭락 등 생활을 위협하는 농업과 농정의 왜곡에 항의하는 수많은 농민의 시위에 앞장서 참여했다가 공권력의 난폭한 사용으로 목숨을 잃었다.” 이 한 마디는 이 땅 농업인의 고단한 삶과 정의로움을 꿰뚫어보고 있다. 그리고 이를 무지막지하게 짓밟은, ‘공포의 권력으로 변질한 공권력’을 질타하고 있다.

이 총리는 사과와 함께 반성과 쇄신을 다짐했다. “정부는 지난날의 잘못들을 처절히 반성하고, 다시는 이러한 과오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공권력의 사용에 관한 제도와 문화를 쇄신하겠다.” 아울러 검찰에게는 철저한 사건수사와 엄정한 사법응징, 경찰에게는 자체조사를 통한 백서와 재발방지책을 주문했다.

우리는 총리의 사과연설에서 ‘진정성’을 발견한다. ‘고단하지만 깨끗했던 삶’을 ‘가장 안타깝게 마감’했다고 백남기 농민을 노래했다. 어려운 농업현실과 그릇된 농정도 시인했다. 나아가 백남기 농민의 뜻을 받들어 하나하나 관철하는 정부가 되길 바란다. 농업문제를 주요국정과제로 삼고, 선거공약인 대통령직속의 농어업특별위원회를 설치하는 일이 그 첫걸음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저작권자 © 농업인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