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이 보름 앞으로 다가왔다. 올해는 10월 4일이 추석인데 임시공휴일까지 치면 열흘이 공식휴일이 된다. 중간에 명절이 끼어있기는 하나 내리 열흘을 출근하지 않아도 되는 직장인들은 해외휴가계획을 세우거나 가족여행을 준비하기도 한다. 제사를 지내지 않거나 묘제를 지낼 산소가 따로 없는 경우 굳이 황금연휴를 마다고 추석을 쇠려는 이는 드물다. 장례 풍습이 다양하게 바뀌면서 토장을 고집하지 않게 된 것이 제례와 명절문화까지 영향을 끼쳤다 할 것이다.

조선시대 성리학이 번성한 이래 유교 전통에 따라 주검을 땅에 묻는 토장이 주요 장례형식이었다면 요즘은 시체를 불에 태워 장사지내는 화장이 늘고 있다. 화장한 유골을 강이나 바다에 흩뿌리기도 하고 함에 담아 안치해두기도 한다. 선산이 없거나 땅뙈기 없는 이들은 따로 묘지를 마련하지 않고 납골당에 유골을 모시게 된 것이다. 그러니 사철 지내는 시제나 봄가을에 지내는 묘제를 따져가며 일일이 엄수하려는 이가 드물 수밖에 없다.

벌초도 그렇다. 조상 묘의 풀을 베고 깨끗하게 정리하는 풍속이 ‘벌초’다. 벌초는 대개 한 해에 두 번, 봄과 가을에 한 번씩 한다. 무덤에 불조심하고 때맞춰 풀을 베어 떼를 잘 가꾼다는 뜻의 금화벌초를 줄인 ‘금초’도 많이 쓰인다. 이런 까닭으로 봄 벌초를 금초라 부르고, 가을 벌초를 포함할 경우 관례적으로 벌초라는 말을 써야 한다는 이들도 있다. 허물어지거나 오래된 무덤에 떼를 입혀 잘 다듬는 사초도 있다. 사초는 대개 이장과 함께 윤달에 하고는 한다.

봄철 한식에 벌초와 성묘를 한 번에 하는 경우가 많고 가을 벌초는 추석을 앞둔 음력 칠월 하순경에 치른다. 예전에는 24절기 기준으로 처서와 백로 사이에 벌초를 했다. 처서가 지나면 찬바람 부는 가을이 오고 잡초가 더는 자라지 않는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요즘은 대부분 음력 7월 15일 백중 무렵부터 음력 8월 15일 추석 전까지 벌초를 한다. 그러나 사실 음력 7월을 넘기지 않는 것이 상례다. 음력 7월 벌초를 강조한 말도 있다. “음력 팔월에 벌초하는 놈은 내 아들이 아니다.”

과거에는 조상 묘의 상태가 좋지 않으면 불효라는 손가락질을 당했다. 벌초와 무덤 상태로 후손들의 정성을 가늠한 것이다. 후손이 돌보지 않아 방치된 묘소를 ‘골총’이라 하는데 언제부턴가 골총이 하나둘 늘어나고 있는 듯하다. 한식과 추석에 산소를 찾아 제를 지내는 성묘 의식을 따르지 않는 이들이 늘면서 차츰 골총이 돼버리는 것이다. 벌초대행업체가 생기면서 골총이 눈에 띄게 늘어나지는 않는다는 것이 그나마 위인거리일까, 한편으론 후손의 정성과 알량한 돈이 등가에 놓인다는 것은 참으로 씁쓸한 일이다.

씨족공동체가 존재하던 시대만 해도 벌초는 마을의 큰 행사였다. 낫과 가위와 갈퀴 등속을 나눠 들고 순서대로 선산을 오가며 벌초를 했다. 시대가 바뀌면서 예초기가 한몫을 단단히 한다지만 그래도 어른과 청년, 아이들까지 제몫을 다했더랬다. 아낙들은 음식을 준비하고, 참과 주안을 부족하지 않게 이고 들어 산소가 있는 중턱까지 나르는가 하면 벌초가 끝난 후에는 다 같이 흡족한 표정으로 서로를 격려했다.

토목개발이 횡행하고 공업화와 도시화가 가속하면서 마을공동체는 해체되기 시작했다. 아름다운 풍속이 밤 보따리 싸고 도망하듯 소리 없이 마을을 떠난 것이다. 이십일 세기에 들어서면서 선산을 지키는 한두 집이 남았을 뿐 상부상조의 전통은 점차 흐지부지되고 공동벌초 의례는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극히 일부이긴 하나 집성촌을 이루는 곳은 여전히 직계가족뿐 아니라 일가친척이 모두 모여 벌초를 진행한다. 그러나 이마저도 핵가족화와 이웃사이 단절로 위태위태한 듯하다.

안타까운 일은 마을공동이든 일가친척간이든 벌초를 여럿이 함께 할 수 없게 되면서 농촌이 도시처럼 삭막해진다는 것이다. 예초기를 짊어지고 산으로 향하던 이와 마주쳐도 데면데면한 채 제대로 인사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특히 농촌을 지키며 살아온 농업인들은 벌초할 시기가 되면 불쾌한 일을 겪기도 한다. 주변에 골총이 있으면 그냥 두지 못하고 벌초하는 김에 같이 해주고는 하는데 어느 날 가보면 인사도 없이 다녀가는 경우가 그렇다. 안면을 튼 후 작은 사례를 받고 벌초를 대행해줬는데 고맙다는 인사에 앞서 불만을 토로하는 경우도 있다 하니 세태를 원망하지 않을 수 없겠다.

한 때, 잘 자라지 않는 잔디에 대해 생각해봤다. 잔디는 무덤뿐 아니라 축구경기장, 골프장 등 의외로 쓰임새가 많다. 문제는 관리다. 벌초는 한 해에 두 번 한다지만 스포츠용이나 정원용 등의 잔디는 자주 깎아줘야 한다. 잔디가 일정한 크기에서 더는 자라지 않는다면 막대한 비용과 일손을 아낄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그것은 나만의 생각이 아니었다. 실제로 농촌진흥청에서 생장을 억제하는 기술을 이용해 잘 자라지 않는 잔디를 개발했더랬다.

획기적이었다. 잘만 하면 수조 원 규모의 세계 잔디시장을 석권할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그 잔디는 유전자변형기술을 접목했다. 식용작물은 아니나 유전자변형작물은 연구용에 그치고 상업적 이용은 불가능한 상황에 직면했다. 유전자변형작물 개발을 두둔하거나 비난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다. 다만, 추석을 앞두고 벌초와 제례, 전통과 풍속, 농촌과 농업인을 떠올려보는 참이다. 단상은 가끔 화두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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