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촌지도자중앙연합회의 시작은 1947년 4-H 구락부 성인자원지도자로 농촌운동을 펼친 것에서 출발한다. 하지만 우리나라 농업의 역사는 선사시대, 즉 신석기시대부터 이어져 내려왔고, 농경사회에서 왕이 농사를 권장하는 권농(勸農)의식은 고구려시대부터 시작됐다.

또 조선시대의 농사직설 등은 농업을 통한 국가발전에 큰 역할을 하는 농업의 뿌리가 됐다.
1962년에는 농촌진흥법 제정에 따라 농촌진흥청이 발족하면서 본격적인 농업인단체로 활동을 시작했고, 1970년 전국농촌자원지도자, 1973년 전국농촌지도자중앙회, 1976년 새마을영농지도자, 1989년 농촌지도자중앙회 등의 개편을 거쳐 1999년부터 현재의 한국농촌지도자중앙연합회로 활약하고 있다.
70년의 역사만큼 켜켜이 쌓아 온 한국농촌지도자중앙연합회의 유구한 역사를 사진으로 돌아본다.


•흙에 뻗은 뿌리를 지키다 (1940년~1960년대)

선사시대부터 농업을 보호하기 위한 노력들은 지속적으로 전개되었고, 조선시대에 이르러 국가는 ‘정책’을 만들어 농업보호정책을 펼쳤다.
그러나 일제의 수탈로 농촌이 파괴되기 시작하였고, 심훈과 최용신 같은 인물은 농촌계몽운동을 펼쳤다. 1947년에는 한국농촌지도자중앙연합회의 시작인 4-H 구락부 성인자원지도자가 설립돼 농촌운동에 참여했다. 하지만 해방 직후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농촌의 황폐화는 가속화되었다.
이에 정부는 1962년 농촌진흥법을 제정, 공포하였고, 농촌진흥청이 발족하면서 성인자원지도자는 농업보호와 농촌계몽운동 등을 펼쳐나갔다.



•녹색혁명의 깃발을 들다! (1970년대)

1970년대는 농촌지도자의 전국시대가 열렸다. 성인자원지도자는 1972년 2월 14일 전국농촌자원지도자중앙회로 이름을 바꾸고 11개 시도연합회, 172개 시군연합회, 1,478개 읍면연합회 등 116,000명이 회원으로 참여했다. 또 1973년에는 전국농촌지도자중앙회, 1976년에는 새마을영농기술자중앙회로 변화를 겪었다. 이 와중에도 농촌지도자는 쌀 자급자족을 달성하며 ‘녹색혁명’의 길을 개척했다.
이와함께 1970년 5월 13일에는 현재 농업인신문의 전신인 농촌자원지도자 회보가 창간하면서 농업인들의 알권리와 영농기술의 보급에 매진을 했다.


•백색혁명으로 농업발전 이끌어(1980년대)

1980년대에는 ‘백색혁명’이라 불리는 비닐하우스 재배 기술을 비롯해 농업의 신기술 개발에 성공함으로써 한국 농업의 고질적 문제였던 계절성이 극복됐다. 값싼 철골 자재와 비닐이 보급되면서 녹색들판이 하얀들판으로 바뀌었고, 우리 식탁의 먹거리가 풍성해졌다.

당시 새마을영농기술자중앙회는 전국의 영농기술자들에 대한 교육을 통해 영농기술의 보급에 앞장섰다. 하지만 1986년 9월 우루과이의 푼타델에스테에서 개최된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으로 인해 농산물 시장 개방이 시작됐고, 농업은 어려움을 겪기 시작했다. 새마을영농기술자중앙회는 1989년 명칭을 농촌지도자중앙회로 바꾸고 새로운 변화를 모색했다.

•농업 신기술 보급 앞장(1990년대)

1990년대 세계무역기구의 출범과 농산물 자유무역의 확대는 식량안보의 개념을 주입했다. 농촌지도자회 역시 1996년 농촌지도자중앙연합회, 1999년 한국농촌지도자중앙연합회로 잇따라 명칭을 변경하면서 변화에 맞섰다. 1993년 우루과이라운드 협상이 완료되면서 농업인들은 기초식량 수입개방 반대와 같은 집회를 통해 농업계의 목소리를 전했다.
하지만 내적으로는 농업기술이 급격하게 발달했던 시대로 쌀이 아닌 소득작물을 개발하는데 주력했고, 버섯과 채소 등의 재배법이 새롭게 선보였다.



•친환경 고품질 안전 농산물 생산(2000년대)

2000년대에 들어서서 농업 분야는 융복합과 친환경 등을 이룩하기 위해 많은 고민을 하게 된다. 이에 농촌지도자회는 고품질 농산물 생산운동과 토론회 등을 통해 선진농업으로 가는 길을 열어주고 있다. 2005년에는 그린투어리즘 활동을 통해 약 2만명의 도시민들이 농촌을 체험했고, 2006년에는 정책연구소가 설립돼 신기술 보급과 변화하는 농업환경에 대비했다.

또 2007년에는 한·미 FTA가 체결되면서 농촌지도자회도 결사반대를 외치는 집회에 나섰으며, 2008년에는 정부의 농촌진흥청 폐지에 맞서 존치를 이끌어 내는 등 농업계 리더 단체로서의 존재감을 표출했다.

농촌지도자회는 2010년대에 들어서서는 더욱 거세진 농산물 시장개방화에 맞서 밖으로는 한중FTA 반대 집회를 비롯한 다양한 농민집회에서 농업인들의 목소리를 대변했다. 또 안으로는 우리 안전농산물 홍보와 소형 농용 기계 면허 취득, 핵심리더 함양교육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농촌지도자들의 화합과 발전을 도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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