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과 달걀의 수난시대다. 지난 연말연시 조류인플루엔자 사태로 우리는 때 아닌 ‘달걀 전쟁’을 치렀다. 구매물량을 제한한 한정 판매부터 사상초유의 신선계란 수입까지. 정부의 어처구니없는 짓에 놀라며 많은 이들이 그 근시안과 부작용을 탓했으나 생달걀은 수입이 되고 말았다.

 고공행진의 계란가격을 잡는다고 했으나 별 효과도 없이 국내 계란시장만 혼란스럽게 만든, 국내 양계농가에 쓰라린 상처만 남긴, 단지 조류인플루엔자 차단방역 실패의 책임을 모면하기 위해 관료들이 벌인 희대의 사기극이었다.

이른바 ‘살충제 계란’의 공포가 엄습했다. 시중에 유통하는 달걀에서 피프로닐, 비펜트린 등 살충제 성분이 기준치를 초과해 검출됐다. 피프로닐은 진드기나 벼룩 등을 잡는 백색분말 형태의 살충제 성분으로, 식용목적의 닭, 소, 돼지 등에는 사용이 금지돼 있다.

과다하게 섭취할 경우 구토, 두통, 경련 증상이 생기고 내분비기관인 갑상샘이 손상될 수 있다. 겨울에는 발병률이 적지만 덥고 습한 여름에는 대개 농가가 닭에 기생하는 진드기 같은 기생충을 박멸하기 위해 살충제를 쓰는데, 허용되지 않은 살충제를 과하게 쓴 탓으로 보인다.

살충제 계란으로 유럽 각국이 혼란을 겪을 때만 해도 강 건너 불구경하던 정부였다. 소비자의 불안이 증폭하는데 뒷짐 지고 안심하라던 식품의약품안전처 장관이 허리 굽혀 사과하기까지는 닷새가 채 지나지 않았다. 저 먼 북유럽 나비의 날갯짓이 며칠 만에 태풍으로 몰아쳐온 것이다.

정부는 부랴부랴 대형유통체인을 포함한 판매점에서의 계란 판매를 일시 중단케 하고 산란계 농장 전수조사에 나섰다. 17일 현재 전국 32곳 농장의 달걀에 대해 부적합 판정을 내리고 유통금지 조처했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살충제 검출 조사대상 산란계 농장은 모두 1천239곳인데, 17일 오전까지 876곳에 대해 조사를 벌였고 그 중 66곳에서 살충제가 검출됐다. 부적합 판정을 받은 32곳은 살충제 성분이 기준치를 초과해 검출된 곳이다.

이번 살충제 달걀의 공포는 조류독감 때 겪은 불안과는 견주기 어려울 정도의 메가톤급 공포다. 당시가 일시적인 공급부족으로 인한 가격상승과 소비위축이었다면 지금은 달걀 자체에 대한 불신과 공포로 인해 소비절벽에 부닥칠 판이다. 그러잖아도 네 살 어린이 사례로 촉발한 ‘햄버거 병’이 전 세계에 ‘먹을거리 공포’를 조장하고 있는데 식품원료로 줄곧 쓰는 달걀마저 안심할 수 없는 지경이니 그 불안감이 오죽하겠는가. 게다가 각급 단위 학교의 개학과 맞물려 학부모들의 불안감은 증폭될 수밖에 없다.

국민 한 사람이 하루에 달걀 한 개 가까이 소비하는 나라만큼은 아니어도 우리는 일인당 사흘에 두 개꼴로 달걀을 소비한다. 지난 2분기 1일 평균 식용계란 생산량은 3천498만 개에 달했다. 올해 조류인플루엔자 발병 여파로 생산량이 줄어든 것이 이 정도다.

지난해까지 최근 3년의 경우 하루 평균 4천만 개 넘게 생산됐다. 그만큼 소비된 것으로 봐도 무방하다. 가정에서 직접 소비하는 양도 그렇지만 제과, 제빵, 외식업체, 식당, 군대와 학교 급식 등에서 직간접으로 소비하는 계란의 양이 적지 않을 터다.

사실 닭 진드기 제거를 위해 살충제를 쓰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특히 ‘알 낳는 기계’로 전락한 ‘계사 공장’ 암탉의 경우 좁은 철제우리에서 옴짝달싹하지 못한 채 일생을 보낸다. 보통 부화 20주령이 되면 일주일에 예닐곱 개의 알을 낳기 시작해 대략 80주령까지 알을 낳다가 폐계가 되어서야 우리를 벗어나는 것이다.

가로세로 한 뼘씩만 한 공간에서 먹고 자고 싸고 낳고를 반복하는 존재에게 생명이니 복지니 하는 말들은 먼 세상일이기 십상이다. 질병이 생기고 진드기가 피를 빨아먹어도 어쩌지 못하는 닭이라니, 오로지 알을 얻기 위하여 암탉을 연명케 하는 비정함이라니.

여론도 그렇다만, 농가 탓만 할 수는 없는 일이다. 농가의 게으름이, 부도덕함과 물욕이 더 독한 살충제, 더 많은 살충제를 썼다면 이는 지탄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대개 농가는 수의사와 계열회사가 권하는 살충제를 쓰고, 그렇게 어쩔 수 없이 사용하면서도 그 위해성을 알기에 자괴감에 빠져들었을 터이다.

창이 없는 계사, 공장 닭장에서 쉼 없이 계란을 뽑아내야 하는 현실을 외면한 채 살충제 사용지침이나 기준 하나 제대로 마련하지 않은 정부와 관리당국의 책임도 적잖다. 또한 딱 1년 전 모 언론에서 살충제 오염 가능성을 제기하며 집중 보도했음에도 유야무야 덮어버린 관료와 계란유통업계, 생산자협회도 깊이 반성해야 한다.

이래저래 심란한 때 나주의 지인이 전화를 해왔다.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다 가업을 잇기 위해 2003년에 귀향해 15년간 닭 농장을 꾸려온 이다. 그는 친환경 인증, 위해요소집중관리라는 해썹 인증에 이어 5년 전에 동물복지축산농장 인증을 받았다.

남들이 직립식 케이지로 바꾸며 닭을 배로 늘릴 때 그는 반대로 절반으로 줄여 방사했다고 한다. 풀어놨으나 제대로 걷지도, 박차고 홰에 날아오르지도 못하는가 하면 알도 아무데나 낳아버리는 통에 애를 먹었다. 그렇게 우여곡절을 거쳐 이제는 면역력 높고 건강한 닭을 키울 수 있게 됐다고. 조류인플루엔자도, 진드기도, 다른 어떤 질병도 거뜬히 이겨내는 닭을 키우며 그만큼 건강한 달걀을 내놓고 있다. 요즘 기자들 전화 받느냐고 정신없습니다. 유럽 쪽 정통한 이들도 케이지 사육의 한계를 말합니다.
사육환경, 사육방식을 바꾸지 않으면 답이 없다는 것이죠. 그의 말을 수긍하면서도 한국 양계산업 혹은 축산업의 무거운 현실이 어른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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