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린 밭과 인접한 모텔 사이에는 매실과 자두, 그리고 서양앵두 등 과실수들은 물론 엄나무 같은 가시가 많은 나무, 메타스퀘어 같은 키 큰 나무들이 경계선을 이루고 있습니다.

집에서 밭까지 도보로 3분 정도 거리지만 마을과 돌아서 있어 밭에서 일하는 이가 없을 때는 인적이 없어 밭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 지 알 수 없을 때가 많습니다. 기차가 지나는 높은 둑길 아래로 폭 3미터 비포장도로가 둑길과 나란히 이어져 있고, 그 왼쪽으로 밭도 나란히 펼쳐져 있습니다.

평일에 지나는 기차와 휴일에 지나는 기차는 운행간격 차이가 많습니다. 평일에는 1시간에 한 대꼴로 지나지만 휴일에는 평일보다는 대략 40% 정도 운행횟수가 느는 것 같다고 느낍니다. 밭일을 하다보면 허리도 아프고 어깨도 걸릴 때가 많은데 기차소리는 잠시 쉬라는 신호가 됩니다. 열차에 타고 있는 이들이야 머리 허연 노인네가 밭일하는 모습을 스쳐 지나치겠지만, 일하는 노인네는 매우 집중해서 일하지 않는 한 고개를 들어 열차를 바라보기 마련입니다. 허리도 펴고 팔도 휘휘 돌려보면서 달리는 열차가 시야를 벗어날 때까지 잠시 일손을 놓는 겁니다.

올해처럼 가뭄이 극심하면 과실수에서 수확을 기대하기가 어렵습니다. 먼저 살던 곳은 집과 밭이 붙어 있었던 터라 수도꼭지를 수동식 스프링클러에 연결하면 밭에 물을 공급할 수 있어 그나마 매실을 조금이나마 건질 수 있었는데 지금 밭은 그저 하늘만 바라보다보니 아무 것도 건질 게 없었습니다.

매실이야 독성이 강해 새들이 건드릴 생각조차 안 합니다만, 서양앵두는 사정이 다릅니다. 이 나무는 워낙 잘 자라고 이 가뭄에도 많은 열매를 맺어 입을 즐겁게 해줍니다. 문제는 이 앵두를 사람만 좋아하는 게 아니라는데 있습니다. 흙먼지 날리는 밭에서 일하다가도 나무그늘에서 한줌 앵두를 훑어 입속에 털어 넣고 씨를 뱉어내는 재미가 꽤나 쏠쏠합니다.

그런데 그 즐거움조차 낯선 새들로 인해 몇 번 즐기지도 못한 채 끝나버리고 말았으니 기가 막힐 노릇입니다. 내일쯤 잘 익을 것 같다고 아끼고 따먹지 않은 앵두열매가 오늘 가보면 사라지고 마니 도대체 이런 짓을 하는 놈이 누굴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청회색 몸통에 긴 꼬리를 가진 새들이 수 십 마리씩 떼를 지어 앵두나무에서 파티를 여는 현장을 잡은 것은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습니다. 먼저 살던 곳에서는 전혀 보지 못했던 종류의 새여서 정체가 궁금하긴 했지만 뭐 어쩌겠습니까. 열매주인이 새라면 그저 몇 차례 앵두 맛이라도 봤으니 그걸로 만족하기로 했습니다. 사실 서양앵두나무는 키가 커 높은 가지에 달린 열매는 새들 차지가 되는 게 당연한 일이기도 하니까요.

그러나 이 처음 보는 새들이 워낙 떼거리를 지어 덤비고 먹어치우니 단 며칠 만에 열매는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없어져 괜한 서운함은 감출 길이 없더군요. 어쨌든 그럭저럭 시간이 지나고 앵두에 대한 기억이 사라져 갈 즈음, 우연히 TV를 보던 중 정체가 궁금하던 그 새가 출연하는 게 아니겠습니까. 아무 생각 없이 길을 지나는 사람들을 공격하는 새가 있다는 ‘세상에 이런 일이’라는 프로그램에 나오는 새는 분명 우리 밭 앵두를 죄다 포획한 그 새가 분명했습니다.

전문가는 우리나라에 흔하게 볼 수 있는 물까치라는 텃새고, 둥지를 지키려는 본능으로 둥지 가까이 움직이는 사람들을 공격했을 거라고 말하면서 이 종류의 특성이 무리를 지어 활동하는 거라는 겁니다.
사실 앵두를 몽땅 실례한 새가 물까치든, 참새든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흔한 텃새를 못 알아본 저의 무지에다 물까치의 속성상 무리지어 떼거리로 움직이면서 먹이활동을 하는 본능을 알지 못했으니 그나마 몇 차례 앵두 맛이라도 본 게 행운이라면 행운이었을 겁니다.

수시로 지나가는 기차의 굉음이 마을사람들에게 익숙해진 일상이듯 야생동물들에게도 일상의 평범한 현상에 불과한지도 모릅니다. 내년 앵두가 익을 무렵 올해처럼 물까치가 다시 떼를 지어 날아오고, 제발 가뭄은 끝이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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