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산조직, 성과위한 도입은 ‘교각살우’


본지는 3회차에 걸쳐 정산조직이 어떻게 처음 논의되기 시작했는지? 어떠한 과정을 거쳐 왔는지? 정부는 왜 정산조직을 도입하려 하는지? 등에 대해 짚어봤다. 또한 가락시장 도매시장법인과 중도매인관계자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과연 도매시장법인과 중도매인은 정산조직 도입에 대해 어떠한 의견을 가지고 있는지? 어떠한 문제로 인해 정산조직 도입을 반대하고 있는지? 정산조직 도입에 대한 문제가 어떤 것인지? 등에 대한 전반적인 여론과 선결과제 등을 제시했다. 마지막으로 본 편에서는 그 동안의 내용을 바탕으로 정산조직의 본질과 정책의 실효성 측면을 짚어보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 “경쟁촉진 위한 정산조직 도입 사례 없어”

현재까지 정부가 의도하고 있는 정산조직의 범위는 명확하다. “우선적으로 도매시장법인과 중도매인간 거래로 한정한다”는 것에는 이견이 없다. 그러나 이 말은 “우선적” 이라는 단어를 포함하고 있다. 이는 도매시장법인과 중도매인간 거래에 대한 정산조직을 먼저 도입할 계획이지만, 향후 출하자 대금정산이나 비상장거래 대금정산조직과의 병합 등 다양한 변수를 배제하고 있지 않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또한 정부는 정산조직 도입 목적으로 ‘실질적인 중도매인 소속제 페지’, ‘자유로운 복수법인 거래 가능’, ‘도매시장법인간 경쟁촉진’을 꼽고 있다. 그렇다면 정산조직 도입이 어떻게 도매시장법인의 경쟁을 촉진시킬지, 궁극적으로는 도매시장 활성화로 연계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검증이 선행되어야 한다.

정산조직에 대한 검토 및 연구에서 빠지지 않는 것이 일본 사례이다. 공영도매시장 자체가 일본의 도매시장 정책을 벤치마킹하고 있기 때문에 일본의 정산조직 사례는 많은 시사점을 주고 있다. 그럼에도 일본에서 정산조직이 어떠한 이유로 탄생하게 되었는가에 대해서는 주목하지 않고 있다.

일본의 도매시장법인은 중도매인과의 거래에서 외상거래 및 신용거래에 따른 위험부담을 감수하지 않는다. 일본 도매시장의 정산조직은 이 때문에 도입된 것이다. 현금거래 원칙인 일본 도매시장에서 중도매인의 대금결제를 유예하고, 상호보증을 통해 외상거래와 신용거래를 가능케 하기 위한 것이 일본의 정산조직이다. 또한 일본의 정산조직은 기본적으로 중도매인에게 먼저 구매대금을 회수하고, 회수된 대금을 도매시장법인에게 지불하는 ‘선회수, 후지불’ 방법을 취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어떤가? 일본의 상황과는 전혀 다르다. 우리나라의 도매시장법인은 외상거래 및 신용거래에 대한 위험부담을 모두 감수하고 있다. 특히 활성화된 신용거래는 중도매인의 거래실적 향상에 절대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일본의 정산조직 도입은 중도매인의 외상거래를 위한 목적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이미 외상거래에 더해 신용거래까지 도매시장법인이 감수하고 있다. 일본의 사례를 감안할 때 정산조직 도입의 필요성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일본 농림수산성의 도매시장 정책을 자문하는 ‘유식자모임’(전문가 자문기구)에 참여하고 있는 후지시마 히로지 동경성영대학(藤島廣二) 교수는 “일본의 정산조직 도입목적은 외상거래에 대한 대금회수의 안전장치였으며, 한국과 같이 경쟁촉진을 목적으로 도입하는 경우는 없다”고 밝혔다.

◆ “상명하복...정산조직 도입은 관치”

정산조직 도입의 변천과정에서 두드러진 점은 정치 및 행정의 개입이다. MB정부에서 시작된 이후 박근혜정권과 문재인정부를 이어오면서 새정부 출범 초기마다 되풀이되고 있다. 특히 지난 정부와의 차별성과 행정의 연속성, 규제개혁과 경쟁촉진 등 참신하고 긍정적인 이미지를 가진 단어들이 중복되면서 정산조직 카드가 각광받고 있다.

그러나 중도매인의 미수금 납입을 위한 정산조직은 기존 도매시장법인의 미수금 관리 방식과 중복된다. 더욱이 정산조직은 기존 도매시장법인의 미수금 관리 방식에 비해 경직된 방식으로 운영될 수밖에 없다.
도매시장법인과 중도매인 모두가 현행 미수금 관리방식의 최대 장점으로 ‘탄력적인 신용거래’를 손 꼽는다. 또한 도매시장법인과 중도매인이 정산조직 도입을 반대하는 가장 큰 이유가 “정산조직 도입으로 신용거래가 축소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특히 정산조직이 기존 수준의 신용거래를 담보하지 못할 경우 중도매인은 도매시장법인과 개별약정을 맺을 수밖에 없다. 정산조직이 도입된 상황에서 도매시장법인과 중도매인의 개별약정은 또 다른 형태의 소속제이다. 또한 도매시장법인의 대금회수 위험성을 더욱 높이는 결과로 이어지기 때문에, 자칫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을 태우는 꼴이 될 수 있다.

정산조직 도입은 이해당사자인 도매시장법인과 중도매인 어느 쪽도 원하는 방향이 아니다. 그럼에도 행정수요가 없는 정책을 정부가 강제하려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정산조직 도입의 궁극적인 목적이 도매시장 활성화라면 무조건적인 ‘상명하복’은 있을 수 없다. 정산조직을 강제하려는 시도는 ‘관치’의 망령이라고 볼 수밖에 없으며, 당장의 성과를 내기 위한 ‘교각살우’가 될 수 있다.

기존 도매시장법인의 미수금 관리 방식은 오랜 시간을 거치면서 다듬어져 왔다. 도매시장으로 반입된 대량의 농산물을 처리할 수 있도록, 탄력적인 신용거래로 중도매인 영업력을 극대화시켜왔다. 그러나 정산조직 도입은 기능의 중복 논란을 피할 수 없다.

더욱이 정부는 그 동안 쉼 없이 유통단계 축소를 주장해 왔다. 그러나 정산조직은 유통단계를 늘려 더욱 번잡하게 만드는 행태이다. 마치, 잘 기능하는 횡단보도 위에 화려한 육교를 설치하는 것과 다르지 않아 보인다. 육교가 아무리 화려하다 한들 기존 횡단보도의 편의성을 넘어설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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