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질’ 논란 편승, 육계 계열화사업 산으로 간다

‘육계 계열화사업’은 말도 많고 탈도 많아 늘 논란의 대상이다. 대한민국 닭고기산업을 단기간 성장시켰다는 칭찬 이면에는 농가들을 혹독하게 짜냈다는 비난이 공존하고 있다. 계열화사업이 도입된지 20년이 훌쩍 지난 30년을 바라보는 시점이 왔음에도 여전히 상반된 주장이 판을 치는 것을 보면 계열화사업의 역할이 매우 크다는 것은 틀림없다.

본지는 창간 47주년을 맞아 2회에 걸쳐 육계 계열화사업을 재조명 해보고자 한다. 계열화사업의 본질은 무엇인지, 그간의 성과는 물론 계열주체들의 주장과 농가들의 제기하는 불만이 무엇인지 등 전반에 걸쳐 짚어보고자 한다.



■ 닭고기산업 급속 성장 이끌어

육계 계열화사업은 농축산물 개방화 물결이 거세지던 지난 1984년 축산법 개정을 통해 계열화사업 법적 근거가 마련되고 1990년 초 육계사육단지 조성사업과 계열업체 육성사업이 실시된다. 1997년 닭고기 시장 개방을 계기로 본격적으로 육계 계열화 사업이 시작됐다.

계열화사업의 근본적인 목적은 크게 ‘농가들의 안정적인 소득 보장’, ‘닭고기의 원활한 수급조절’ 등을 꼽을 수 있다. 본격적으로 계열화사업이 추진되면서 정부도 개별 지원 정책보다는 계열주체들의 지원과 육성으로 집중된다. 이로 인한 계열주체들의 탄생이 줄을 잇고 닭고기 시장도 급속하게 성장하게 된다.

정부의 관심과 지원 속에 탄생한 닭고기 가공업체가 하림, 마니커, 체리부로 등이 대표적이다. 농가들은 지난 과거부터 현재까지 줄곧 정부의 집중 지원을 받고 농가들을 과도하게 쥐어짠 계열주체들은 눈부신 성장을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 대목은 시시비비를 가려봐야 한다. 겉으로 보기에는 계열화주체들이 ‘날로 먹는 사업’을 펼친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실상과는 차이가 크다.

계열주체별로 유통시장 점유를 두고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이 과정에서 낙오된 기업은 ‘부도’ 등 퇴출과정을 겪어야 한다. 체리부로는 두 차례의 부도위기에 내몰리는 등 심각한 경영위기를 겪기도 했다. 농가들의 주장처럼 계열주체들이 가만 앉아서 기업을 일궜다는 주장은 전혀 현실적이지도 논리적이지도 못한 것이다.

요즘은 닭고기 프랜차이즈 기업을 중심으로 닭고기 소비시장이 급속도록 변화하면서 계열주체들도 유통시장 흐름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발버둥을 치고 있다. 더욱이 지난 2003년 첫 발생한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는 상시적인 발생할 소지가 높아 닭고기산업의 불확실성 속에서도 기업을 꾸리기 위한 경영전략을 마련하느라 고심이 크다.

■ 닭고기산업 발전·농가소득 향상

계열화사업이란 가축의 사육과 축산물의 생산ㆍ도축ㆍ가공ㆍ유통 기능의 전부 또는 일부를 통합 경영하는 사업을 일컫는다. 계열주체는 사육계약을 체결한 농가에 가축, 사료 등 사육자재를 공급하고 출하 때 사육수수료를 지급한다. 사육과 유통 과정을 분리해 사업자는 생산비를 절감하고 농가는 안정적으로 소득을 유지하자는 취지다.

국내에서 한우, 양돈, 낙농 분야도 계열화사업이 진행 중이지만 육계분야 만큼 활성화 돼 있지는 않다. 현재 육계분야는 하림, 마니커, 체리부로, 참프레 등 민간계열 20여곳과 농협 목우촌 등이 전체 닭고기 생산량의 90% 이상을 공급하고 있다.

이미 육계분야는 계열화가 90% 이상 진척됐다는 의미다. 타 축종과 비교해 사육일령이 짧은 탓에 가격 등락폭이 늘 컸던 육계분야에서 안정적으로 닭을 사육할 수 있는 계열화사업은 농가들의 입맛에 제격일 수밖에 없었다. 이 때문에 육계분야는 농가들의 적극적인 참여 속에 단기간 계열화사업이 활기를 띄게 된 것이다.

무엇보다 육계분야의 계열화사업 활기는 계열주체들의 역할이 컸다. 계열주체들은 제반 여건이 열악해 닭고기산업이 허덕이는 현재와 불확실한 미래에서도 닭고기산업의 선진화를 위해 위험을 감수하고 계열화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언제든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는 위험성이 산재해 있었음에도 열악한 닭고기산업의 도약을 위해 계열주체들은 모험을 기꺼이 감수했던 것이다.

계열화사업이 접목되고 이 제도가 안정화되면서 농가들은 시세나 판로 걱정없이 오로지 닭 사육에만 전념할 수 있게 되면서 농가 소득이 크게 향상됐다. 계열주체들도 계열화사업이 안정기에 들어서면서 한숨을 쉴 수 있게 됐다. 분명한 것은 닭고기산업의 눈부신 성장과 농가들의 소득향상 성과는 농가들도 충분히 공감하고 있다. 

■ 과거 소리쳤던 농가불만…대화로 해결

다만 농가들은 계열화사업 추진 과정에서 드러난 문제점을 개선하는데 계열주체들이 적극적이지 않다는 것에 불만을 제기하고 있다. 과거처럼 계열화사업을 통해 ‘종속관계’, ‘소작농’으로 전락했다는 농가들의 주장은 크게 줄고 계열화사업 전체를 부정하는 주장도 크게 감소했다. 농가들은 계열화사업 자체를 부정하는 과거와 달리 계열화사업 과정에서 드러난 사안별 불만에 집중하고 있는 추세다. 기본사육수수료 인상, 상차반 식대비, 전기세 인하분 농가지원 금액 등 사안별 불만과 개선 요구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특히 지난 2013년 ‘축산계열화사업법’이 시행되면서 계열주체별 농가협의회가 조직되고 대화채널이 가동되기 시작했다. 농가협의회는 중요 사안에 대해 계열주체와 머리를 맞대고 대화와 토론을 통해 합리적인 해결점을 모색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물론 계열화사업 태동기에 농가들은 억울함을 토로할 일이 많았다. 대표적인 사례가 H사의 사육계약서 제23조를 꼽을 수 있다. 이 조항을 삭제하는 과정에서 농가들은 엄청난 희생을 치러야 했다. 이 조항은 사육계약서 변경을 사측에서 공문 한 장 발송으로 가능해져 어떤 농가는 하루아침에 계약이 파기되고 또 어떤 농가는 막대한 변상을 물어내야 했다. 지금이야 상상도 못할 일이지만 실존했던 일이다.

당시 계열주체들은 마치 짜고 치는 고스톱처럼 어찌된 영문인지 계열화사업에 불만을 갖고 사고(?)를 친 농가들을 한결같이 외면했다. 결국 굶어죽던지, 직업을 바꾸던지, 아님 비굴하지만 사측에 무릎 꿇고 용서(?)를 구해야 했다.

근본적인 원인은 계열주체들은 ‘갑’이라는 우월적 지위에 사로잡혀 농가들을 대화상대로 인식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농가들이 아무리 ‘아프다’고 소리쳐도 들어주는 이가 없으니 농가들의 목만 아플 수밖에 없었다.



■ 닭고기 무한경쟁 시대…막무가내 흔들기 안돼

이런 아픈 과거를 겪으면서 계열화사업은 차츰 성숙기에 돌입했다. 계열주체들도 일방통행식 경영으로는 더 이상 성과를 내기 어렵다는 것을 직시했고 농가들도 계열주체와 상생의식 없이는 변화할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외부에서 바라본 계열화사업은 여전히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계열주체들이 온갖 불법행위를 일삼으며 기업을 일군 거처럼 호도하고 있다. 국내 굴지의 가공업체인 H사 회장은 두 차례나 국정감사에 불려 나갈 정도로 혹독한 시련을 겪어야 했다.

새 정권이 들어선 이번에도 계열주체들은 여지없이 시련을 맞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장관 취임과 함께 축산계열화 사업자의 ‘갑질’에 대한 규제 강화에 나섰다. 본사의 횡포와 오너의 일탈에 가맹점주들만 피해를 입는 프랜차이즈업계를 반면교사 삼아 농가들을 좀 더 확실하게 보호하겠다는 명목에서다.
지난 2013년 시행된 ‘축산계열화 사업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안’도 오는 9월 입법 예고된 상태다.

계열주체들의 불만은 커질 수밖에 없다. 계열주체들을 규제하기 위해 지난 2013년 ‘축산계열화사업법’을 시행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압박하는 것은 올바른 기업규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계열화사업법을 위반한 사례에 대해 철퇴를 내리는 것이 옳은 처사임에도 드러난 사안도 없는데 싸잡아서 철퇴부터 치겠다는 주장은 받아들이기 힘들기 때문이다.

닭고기 시장은 안팎의 위기로 급속한 변화를 겪고 있다. 거세지는 개방화 물결과 함께 다양한 가공상품 출시, 1~2인가구 소비시장 확대, 닭고기 프랜차이즈 확대 등 유통시장이 요동치고 있다.

계열주체들은 안으로는 품질강화를 위한 노력과 함께 밖으로는 수입닭고기와의 경쟁과 함께 유통시장 선점을 위해 사력을 다하고 있다. 더욱이 후발주자인 사조화인코리아, 이지바이오, 참프레 등이 막강한 자본력을 앞세워 닭고기산업에 뛰어들면서 계열주체들은 사느냐 죽느냐를 두고 피말리는 전쟁터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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