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묘목 한우물로 성공가도 달리는 ‘푸른꽃농원’

먹거리를 생산해야 할 농지에 쓸모없는 묘목을 심었다고 ‘미친놈’ 소리를 숱하게 달고 살았죠. 땅 한평 없어 남의 집 살이까지 했던 제가 유일하게 희망을 품을 수 있었던 것이 바로 묘목이었습니다. 40여년이 흐른 지금 묘목사업은 부와 명예까지 다 쥐게 해줬습니다.”

전남 순천시 학구면에서 40년째 묘목사업 한우물을 파와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는 푸른꽃농원 오길용 대표는 전남도내 뿐만 아니라 전국에서도 손꼽아 주는 ‘묘목 달인’으로 명성이 자자하다.

지난 1970년대 보릿고개 시절, 당장 끼니를 해결해야 하는 긴박한 시절에는 짜투리 땅이라도 있으면 쌀이며 보리, 고구마, 감자 등 어떻게든 먹거리를 생산해야 했다. 이런 시절에 오 대표는 그 귀하디귀한(?) 땅에 철쭉 등 묘목을 심었다. 쌀 한톨이 절실했던 상황을 감안하면 오 대표의 행보는 ‘미친놈’ 소리를 듣기에 딱 좋았다.

그러나 오 대표는 남의 시선 따위는 개의치 않았다. 워낙 가진 것 없던 그가 희망을 품을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 바로 묘목이었기 때문. 귀한 땅에 묘목을 심는다는 소문이 돌면서 땅 임대도 여의치 않게 되면서 농사도 지을 수 없는 산간 오지를 찾아다녀야 했고 그곳에서 삶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팔자도 기구했던지 사흘밤낮을 새도 사연이 넘친다는 오 대표. 수년을 쉼없이 일해 기껏 땅 한마지기를 일구고 송아지 몇 마리를 키우며 기지개 좀 펴나 싶었더니 그해 감당 못할 태풍이 불어 닥쳐 수해로 그가 가진 모든 걸을 잃었다.

보편적으로 사람들은 견딜 수 없는 고난이 닥치면 현실을 회피하고 좌절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오 대표는 고난 앞에 단 한번도 굴복하지 않았다. 처자식과 동생들을 먹여 살리고 학비를 벌기 위해서는 좌절 따위는 사치에 불과했다. 묘목을 다시 심으면 반드시 재기할 수 있다는 희망을 저버리지 않았기에 좌절을 극복할 수 있었다고.
40여년이 지난 현재 오 대표는 역시나 ‘묘목 달인’으로 불릴 정도로 어엿한 기업가의 인상이 물씬 풍긴다. 연간 매출은 10억원을 훌쩍 넘는다.

최근 묘목사업은 봄철에만 집중되던 과거에서 벗어나 연중 안정적인 판매가 이뤄지고 있다. 그래도 역시나 봄철이면 전국 각지에서 묘목 주문전화가 쇄도한다. 지난 과거나 현재 최고 몸값을 자랑하는 것은 단연 ‘철쭉’이라고.

그는 현재 5만평 규모의 묘목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대부분 철쭉이 차지하고 있지만 사철나무, 백일홍, 동백나무, 쥐똥나무 등 가지각색의 묘목을 재배해 전국 각지로 판매하고 있다. 묘목사업의 특징은 대부분 인력으로 작업을 해야 한다는 것. 묘목을 심는 것부터 출하 작업까지  사람 손으로 해야 하기 때문에 항상 20여명 이상이 농장에서 일할 정도로 지역 일자리 창출에도 크게 기여하고 있다.

사실 말이 좋아 묘목사업이지 지난날을 되돌아보면 어처구니없는 상황들이 많았다. 장사꾼들의 농간에 속아 묘목만 보내고 돈 한푼 못받는 경우는 비일비재했고 묘목 시세를 잘 몰라 헐값에 판매되는 경우도 많았다.

런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오 대표는 묘목 시세가 헐값으로 떨어지는 것을 막아낼 수 있을 만큼 위치에 올라설 수 있게 됐고 인근 농가들이 재배한 묘목까지 제값받고 판매해 주는 여유를 갖게 됐다. 오 대표의 성공가도는 인근 농가들에게 전파돼 묘목사업으로 전환해 억대 소득을 누리는 농업인들로 넘친다. 요즘처럼 쌀값이 매년 폭락하는 상황에서 굳이 쌀농사를 고집하기 보다는 철쭉, 연산홍, 사철나무 등 묘목을 심는 것이 높은 부가가치를 올릴 수 있는 길이라고 오 대표는 귀뜸한다.

최근에는 오 대표의 성공스토리가 화제로 떠올라 농업기술센터 등에서 강의 요청이 쇄도하고 있다. 남들보다 가진 것도 없고 많은 배움을 실천하지 못한 전형적인 ‘흙수저’인 그에게 지난 40년간 묘목사업 한우물을 파 성공가도를 달려온 ‘이야기’를 듣고 싶어하는 이들로 넘친다고.

최근 그에게 든든한 지원군이 생겼다. 오 대표 아들이 묘목 사업의 대를 잇겠다고 나선 것. 농촌을 떠나 도시에서 멋들어진 직장생활을 하는 것이 일상인 시대에 그의 아들이 당당히 대를 잇겠다고 나선 것은 묘목사업에 대한 희망과 미래를 엿봤기 때문.

오 대표는 아들에게 기초부터 차근차근 다져나갈 것을 주문하고 자신의 노하우를 전수하고 있다. 급여는 땀 흘린 만큼 맞춰 지급한다. 벌써 4년차에 접어든 아들은 어지간한 업무는 혼자서 처리할 정도로 성장해 그를 위협(?)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젊고 머리 회전이 빠르기 때문에 하나를 가르쳐주면 2~3가지를 파악하는 아들의 성장에 흐뭇하면서도 두렵기도 하다.
이제 갓 60세를 넘긴 그가 벌써 은퇴를 고민하는 것은 온전히 아들의 뛰어난 능력 때문이다. 그래도 대물림 할 수 있는 후계자를 찾았으니 그의 인생은 성공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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