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 통상교섭본부장으로 김현종 씨가 유력하다는 언론보도가 있다. 문 대통령이 주재한 25일 국무회의는 중소기업청을 격상해 중소벤처기업부를 신설하는 한편 산업통상자원부에 차관급인 통상교섭본부를 설치하는 내용의 새 정부조직법을 의결했다. 이 언론은 정부 관계자의 말을 인용, 김 씨가 ‘트럼프 대통령이 한미 자유무역협정 개정 협상을 요구하는 상황에서 국익 우선의 통상 협상을 지휘할 수 있는 전문가’로 거론된다고 했다.

할! 김현종이라니, 오보이길 바랐다. 실망스러움을 넘어 화가 치밀었다. 통상교섭 전문가가 그리 부족한가, 숱한 인물 중에서 하필 그자인가, 실망감은 문재인 정부에 대한 반감이요 치미는 화는 김 씨에 대한 공분이다. 문득 ‘살인의 추억’이니 ‘범죄의 재구성’이니 하는 영화제목을 떠올리며 텔레비전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를 스쳐 광복직후 반민특위와 최근의 적폐청산까지 상전벽해의 역사를 상상으로 내달렸다. 반역의 봉인을 해제한 것인가, 그는 청산할 폐족이지 등용의 대상이 아니다.

김현종 씨는 노무현 정부에서 통상교섭본부장을 지냈다. 참여정부 첫해인 2003년 5월부터다. 그 이전에는 정부 공직자가 아니라 민간인 신분이었다. 그는 초등학교 시절 이태 정도 한국에 있었을 뿐 대부분 미국에서 살았다. 미국 대학과 로스쿨에서 학위를 받고 변호사로 대형로펌에 근무했다. 입국해 단기 장교로 군복무를 마친 후 한국에 살았다. 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 대학 조교수, 외교부 고문변호사 위촉을 거쳐 외교통상 중책을 맡았다. 세계무역기구 관련 자문변호사 시절 노무현 대통령 당선인에게 세계통상현안을 브리핑하면서 공직에 입문했다. 민간인 등용 1호로도 알려졌다.

그는 2007년 8월 국제연합(UN) 대사로 가기 전까지 4년여 간 참여정부 통상정책의 핵심으로 일했다. 신자유주의 신봉자이기도 하다. 자유무역협정(FTA) 전도사로도 통한다. 통상교섭본부장으로서 미국, 캐나다, 멕시코, 인도, 싱가포르, 남미공동시장(MERCOSUR),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 유럽자유무역연합(EFTA), 페르시아만연안제국회의(GCC) 등 세계 각국, 시장기구들과 자유무역협정 협상을 진행했다. 미국, 싱가포르, 아세안, 유럽연합 등과는 협정을 체결했다. 유엔대사 이후 2009년 삼성전자에 입사해 2011년에 퇴직했다. 지난해 2월에는 20대 총선을 앞두고 더불어민주당에 입당해 인천시 계양 갑 선거구 출마를 선언하며 입길에 올랐다.

삼성전자 글로벌 법무담당. 바로 이 대목이다. 그는 정경유착의 상징처럼 돼버린 ‘관피아’의 길에 들어선 것이다. 민간 변호사에서 정부 요직으로, 정부 관료에서 민간기업 임원으로, 이번에 통상교섭본부장이 된다면 다시 민간인 신분에서 정부 관료로 바뀌게 된다. 이른바 회전문 인사에서도 보기 드문 ‘회전’이다. 한편으로 김 씨의 처세와 능력이 탁월하다 싶기도 하다. 그의 능력이 어디에, 어떻게 쓰이는지 낱낱이 다 알 수는 없다. 그러나 정경유착이나 회전문 인사라는 비난을 감수하면서까지 그의 능력이 필요한 것인지 납득이 어렵다.

김 씨가 과연 국익을 우선에 둘 지도 의문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비롯해 우리나라가 체결한 자유무역협정의 수혜자는 반도체, 휴대전화, 자동차 등 몇몇 비교우위 기업들이다. 그 중에서도 최대 수혜자가 삼성전자라는 사실을 부정할 이가 없을 것이다. 자유무역협정을 이끌던 이가 그 수혜 기업의 임원으로 갔으니 시선이 고울 리 없다. 그가 다시 통상교섭 수장으로 온다니 역시 시선이 고울 리 만무하다.

미공개 비밀정보를 수집해 폭로하는 <위키리크스>를 통해 밝혀진 김 씨의 행적은 충격적이다. 그의 행위는 국익은 고사하고 매국에 다름없다. 한미 자유무역협정 협상이 한창이던 2006년 7월 25일 주한미국대사의 외교전문에는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은 7월 24일 오후 알렉산더 버시바우 주한미국대사에게 전화를 걸어 ‘한국정부의 약제비 적정화 방안 발표에 대해 미국정부에 미리 알리고, 공식적으로 발표하기 전에 미국이 의미 있는 코멘트를 할 시간을 주며 자유무역협정의 의약품 작업반에서 협상할 수 있도록 한다는 등의 내용이 관철되도록 죽도록 싸웠다’고 말했다”는 내용이 있다.

요약하자면, 김 씨는 통상교섭본부장의 본분을 망각하고 미국과 미국의 초국적 제약회사를 위해 청와대를 포함한 한국정부에 맞서 죽도록 싸웠고, 보안개념도 없이 미국대사에게 자랑삼아 무용담을 늘어놓은 것이다. 항간에 떠돌던 ‘미국 장학생’이란 소문이 사실로 드러난 일화다. 그런 그를 ‘통상협상 지휘자’로 영입하겠다니 ‘할’ 할밖에.

농업인의 분노는 더 크다. 김 씨는 국익을 외면했을 뿐 아니라 농업인의 고통과 호소를 무시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 협상당시 미국은 이른바 ‘4대 선결조건’으로 압박했다. 자동차, 반도체 등을 저율관세로 미국시장에 수출하고 싶으면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 스크린쿼터 축소, 약값 재평가 제도 철폐, 배출가스 강화기준 철폐를 즉시 시행하거나 약속하라는 강압이었다.

협상을 서두른 참여정부는 야당과 국민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선결조건을 수용하고 말았다. 소탐대실 운운하며 농업, 환경, 영화, 의약품산업 지키기를 작은 것을 탐하는 일로 치부했고 그 선봉에 김 씨가 있었다. 그러니 김 씨 등용에 대한 농업계의 반감은 클 수밖에 없다. 적폐청산을 외치는 문재인 정부가 폐족해도 시원찮을 적폐를 끌어다 중용하겠다는 한심한 작태를 당장 멈추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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