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살던 동해시에는 우리나라 5대 장 중 하나라는 북평장이 매월 뒷날이 3이나 8로 끝나는 날 북평 일대에서 상당한 규모로 열립니다.

시골 살면서 장날이 기다려지는 건 장터를 어슬렁거리는 재미가 꽤나 쏠쏠하기 때문입니다. 없는 것 빼고 다 있다는 장터에서 이 좌판 저 좌판 기웃거리다 잔치국수 한 그릇이나 메밀전병 한 접시 시켜 허기를 채우는 게 전부이긴 하지만 괜히 장날이 언제가 헤아려 보는 건 시골살이가 꽤 됐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간선도로는 물론 나란한 골목길까지 온갖 상품과 먹을거리 좌판이 가득한 북평장에서 맥없이 걷다간 길에 가득한 인파에 떠밀리려 다니기 십상입니다. 전문적인 장사꾼은 물론 인근 할머니들 좌판까지 다 돌아보려면 반나절은 족히 걸릴 일입니다.

봄철 모종이 장에 나오는 시기에는 인근 농사꾼들은 물론 시내에 거주하는 이들도 텃밭에 심을 모종을 고르느라 더 번잡해집니다. 고추나 상추, 토마토는 종묘상이나 좌판에 넘쳐나고 고구마순은 늦은 오후에는 가격이 오전보다 20%정도 내려가는 게 보통입니다.

포트에서 길러진 모종들은 정식이 너무 늦지만 않으면 죽는 경우가 없지만, 고구마순은 사정이 다릅니다. 커다란 비닐 백에 수 십 다발씩 넣어놓고 팔다보니 잘못사면 시들거나 비닐 백 속에서 열로 인해 곯은 순을 구입하면 살리기가 어렵습니다.

이사해야 할 시기와 모종 심을 시기가 겹쳐 제때 고구마순을 사지 못해 애를 태우다 가장 가까운 장이 옥계장이라는 말에 차를 몰고 나갔습니다. 끝이 4나 9인 날 열리는 옥계장은  장터 입구에 커다랗게 장터를 알리는 아치형 조형물까지 설치돼 있어 그 규모가 상당할 것이라고 지레 짐작했지만 실제 장터는 기대 이하였습니다.

상설점포를 제외하고 100여 미터도 되지 않는 길을 따라 좌판들이 듬성듬성 자리 잡고 있어 북평장에 비해 을씨년스럽기까지 해 오히려 농협 하나로마트가 화려해 보일 정도였습니다.

강릉시내에 거주하는 지인부부와 함께 한 장터나들이라 천천히 둘러볼 시간도 많지는 않았지만 살만한 물건들도 보이질 않습니다.

모종 파는 좌판이 서너 개 보여 모종을 살펴보는데 판매하는 이는 영 관심이 없는 모양입니다. 손님이 들여다보던지 말던 지 딴 곳만 바라보다 묻는 말에도 성의 없는 답변만 하니 이걸 사야하나 말아야하나 갈등이 생깁니다.

그래도 시기를 놓치면 또 5일이나 지나야 살 수 있을 터고, 그나마도 너무 시기가 늦게 되는지라 그냥 눈 딱 감고 구입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호박고구마 한 다발과 꿀 고구마 2다발을 사 차에 실었지만 영 찜찜한 마음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비닐 백 속에서 시들기도 했고 꿀 고구마에 대한 설명도 없어서 그저 늘 사다 심던 일본고구마일거라고 판단하고 샀기 때문입니다.

실제 장터를 경험한 곳이 북평장 한곳인 탓도 있지만 옥계장은 북평장에 비해 규모도 작고 상인들 태도도 너무 차이가 나 다시는 가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아마도 제가 모르는 옥계장 나름의 장점이 있을 텐데 그걸 몰라 이런 편견을 갖게 될는지도 모릅니다.

성남 모란장이나 잘 알려진 정선장, 북평장과 마찬가지로 유명세 없이 열리는 시골 5일장도 나름 생존법칙이 있을 테니 말입니다.

생선을 좋아하는 집사람이나 저나 생선 파는 좌판이 없어 섭섭했었는데 장이 끝나는 지점에 냉동동태와 소금에 절인 임연수와 갈치 등을 올려놓은 좌판을 발견하고 집사람과 지인이 발걸음을 멈췄습니다.
장터마다 조금 다르기는 하지만 대개는 판매단가는 1만원입니다. 옥계장도 예외는 아니어서 동태 몇 마리와 작은 조기 몇 마리 사니 몇 만원이 훌쩍 지갑을 떠납니다.

이제 사온 고구마순을 어떻게 살릴 것인가가 숙제입니다. 눈치 보며 길어온 물통을 들고 미리 멀칭해둔 이랑에 구멍마다 물을 붓고 고구마순을 찔러 넣으면서 잘 살아나길 마음속으로 기도하지만 잘 될지는 오직 하늘만 알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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