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개설자의 정산조직 개입 여지...“꺼지지 않는 불씨”



지금까지 도매시장에 도입된 정산조직은 모두 정부와 개설자가 주도했다. 좀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의 실무적 차원의 주도가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 이는 가락시장정산(주)가 출범하는 과정을 살펴보면 여실히 드러난다.

일례로 지난 2013년 10월 24일자 농림축산식품부의 보도자료는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의 작품이다. 당시 농림축산식품부는 농산물 유통구조 개선 종합대책의 성과에 목말랐다. 이에 가락시장정산(주)의 출범이 가시화되자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로 부터 자료를 제공받아 이를 직접 발표한 것이다.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는 가락시장정산(주)을 출범시키기 위해 기존 농산물비상장품목정산조합을 바탕으로 설계했다. 당초 개설자의 개입여지 확대와 공공성 강조를 명분으로 51:49 수준의 지분관계를 설정했지만, 농산물비상장품목정산조합의 반발에 부딪혀 각각 15억원의 출자금에 50:50의 공동대표 체제에 합의했다.

또한 강서시장의 정산조직 설립을 주도하며 주주로서의 참여를 당연시했다. 그러자 시장도매인들이 반발했다. 시장도매인들은 개설자, 즉 제3자 참여를 거부하는 조합방식을 결정하고 기업은행을 주거래은행으로 선정해 통합정산시스템을 구축했다.

이러한 전례에 비추어볼 때 ‘중도매인의 미수금 납입을 위한 정산조직’에 대한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의 개입 시도는 어쩌면 당연한 수순으로 보인다. 이미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는 가락시장정산(주)을 활용한 도매시장법인과 중도매인간 거래 뿐만 아니라 도매시장법인의 출하자 대금정산 등에 대한 금융비용과 정산수수료율 까지 산정한 연구용역 결과를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도매시장법인과 중도매인간 거래에 한정된 ‘중도매인의 미수금 납입을 위한 정산조직’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개설자의 개입은 기업대 기업간의 상거래까지 간섭하는 과도한 행정으로 판단될 가능성이 상당하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일본의 사례와 비교하면 뚜렷하게 나타난다. 가락시장정산(주)의 경우 상장예외품목중도매인의 가입이 의무화되어 있다. 설립 초기 상장예외품목중도매인의 허가조건과 결부시키는 강제성이 동원됐다. 한국시장도매인정산조합 역시 52개 시장도매인 모두가 출자에 참여했다.

그러나 일본의 경우 정산조직 이용이 자유롭고 다양하다. 일본 농림수산성이 1996년 기준으로 조사한 ‘정산조합 및 정산회사방식 도입 도매시장 조사자료’에 따르며 청과부류 70개 도매시장에서 운영되고 있는 정산조합이 195개, 정산회사가 16개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현금결제를 원칙으로 하는 도매시장법인과 중도매인 및 매매참가인 거래과정에서 지불유예를 인정하고, 확실한 대금회수를 담보하기 위한 목적으로 정산조직이 도입됐기 때문이다. 정책이나 행정의 선택이 아닌, 도매시장 거래의 자연스러운 흐름 속에서 정산조직이 탄생했다. 각각의 도매시장 상황과 이해관계 속에 다양한 방식과 복수의 조직이 운영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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