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엊그제 미국을 방문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회담했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제로 알려진 사드, 북한의 핵 실험 도발 등 긴박한 군사외교 현안을 고려해 한미 정상회담을 서두른 것으로 보인다. 내우외환의 위기를 극복하고 빠른 정국 안정을 꾀한다는 면에서 긍정적이다.

한편으로 트럼프 대통령이 공언한 한미 자유무역협정 재협상 카드가 걱정스럽다. 무역 불균형 운운하며 전 방위 압박을 가하고 있으니 저성장의 늪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우리로서는 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 늘 그렇듯 군사외교 문제가 통상 마찰로 번지는 양상이다. 최근 중국의 무역보복도 만만찮다. 경제대국 일등이등을 다투는 중국과 미국 사이에서 우리 경제는 끙끙 앓을 수밖에 없는 것인가 자괴감이 든다.
농업계는 다시 희생양이 되지 않을까 노심초사다.

쇠고기시장 완전 개방과 밥쌀 수입 등 노골적인 압력을 가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상황이 여의찮지만 한미 자유무역협정 재협상 국면은 피할 수 있다면 피하는 것이 낫다. 농산물시장 빗장은 한 번 풀면 다시 지르기 어렵다. 게다가 미국뿐이겠는가, 호시탐탐 한국을 노리는 나라가 한둘이 아니다. 등짐지고 지게지고 작대기 휘두르며 들어와서는 제 맘대로 안마당에 부려놓고 생떼거리 쓸 나라들이 줄을 섰다. 예컨대 쌀 관세화유예 포기 대가는 매우 컸다. 밥쌀을 포함해 해마다 40만 톤이 넘는 쌀을 수입하고 국내 생산량도 소비량을 크게 웃돌면서 국내 쌀값은 폭락했다.

농업이야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는 것인지, 역대 정부는 대개 농업을 경시했다. 못 살겠다 저항하고 농업을 지키자 호소했지만 정부의 농업인 홀대 현상은 점점 심하게 나타났다. 그때마다 아쉬웠던 것은 농업인단체의 농정 참여가 일천하다는 점이다. 이는 결국 농업인의 목소리를 농업정책에 제대로 반영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를 낳는다. 그리고 그 우려는 현실이 되고 말았다.

지난 30년간 비정부기구가 우후죽순 생기며 민간단체의 활동영역이 넓어지고, 통치 개념을 넘어 협치 시대에 들어섰다고 하지만 농정분야는 유독 구태에 물들어있는 듯하다. 환경, 노동, 교육, 금융, 복지, 여성 등 분야별 민관 협치체제가 확장일로에 있음에도 농업분야는 여전히 관민의 불협화음으로 시끄럽다. 농정파트너로 농업인단체를 제일로 꼽으면서도 정작 농업인의 요구와 주장은 모르쇠하거나 무시해버리기 일쑤이니 말이다.

협동조합인지 금융회사인지 정체가 모호한 농협이야 농식품부와 갑을의 지위를 바꿀 수 있을 만큼의 어마어마한 세력이니 확실한 농정파트너다. 몇 조의 정부예산으로 건사하는 농어촌공사나 농수산물유통공사, 마사회 등 농업관련 공기업도 농협과 함께 농정파트너로서, 농정의 축으로 존재한다. 이 밖에도 적잖은 준정부기관이나 공기업, 재단들은 농정 파트너라기보다는 사실상 농업정책을 관장하는 정부조직과 한 몸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생산자들로 조직된 농업인단체도 꽤 많다. 특정지역의 농업인단체는 말할 것도 없다. 전국조직을 갖추고 단절이나 휴면기 없이 활동을 이어가는 농업인단체만 해도 서른이 넘는다. 대표적으로 한국농촌지도자중앙연합회,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 전국농민회총연맹, 생활개선중앙회, 한국여성농업인중앙연합회,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한국4H회 등 이른바 ‘종합’ 단체가 있으며 쌀, 과수, 채소, 축산 등 부문별 품목별 단체가 있다.

농업인단체의 연대기구도 꾸준히 활동해왔다. 농업인단체협의회, 축산단체협의회와 농민연대, 농민의 길 등은 이합집산의 과정을 거치기는 했으나 힘을 합쳐 당당히 농정파트너가 되고자 노력해왔다. 특히 거의 모든 단체를 아우른 농단협은 자유무역협정 협상이나 쌀 시장개방 등 주요현안에 대해서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함으로써 정부와 협상하고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적극 싸우기도 했다. 그럼에도 정부와 농업인단체는 상생과 협치 관계보다는 대립과 반목을 향해 치닫는 경우가 허다했다.

적전분열일까, 각개전투 프레임에 갇힌 것일까. 인과를 따질 일은 아니나 가끔 의아하다. 농업인단체끼리 이해가 상충한 탓에 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것일까, 정부가 일부러 단체별로 따로 접근하는 방식을 취함으로써 분열을 유도한 것일까 하는 사변이다. 특히 기업농 혹은 극히 일부 대농 중심의 농정을 펴기 시작한 이명박 정부 이후로는 농단협의 결속력이 약화한 감이 있다. 일례로 쌀 목표가격 설정과 관련한 풍문이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한 가마 목표가격 23만원을 공약했고, 농업인단체들은 쌀값 하락세가 이어질 것을 우려해 공약이행을 요구했다.

그 와중에 정부는 공약하지 않았다고 발뺌했고, 일부 단체의 합의로 목표가격은 18만원으로 설정되기에 이르렀다. 정작 23만원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인 단체들은 허탈해할 수밖에 없었다. 단체들은 서로 이해가 엇갈리며 한 목소리를 내지 못했고, 반면 정부는 각개격파 식으로 단체 성향에 따라 밀어붙이거나 회유작업을 벌였다는 의심을 받았다.

문재인 정부가 농업회의소 설립을 공약했다. 1998년 법제화 시도이후 20년 가까이 흘렀다. 지역별 농업회의소 설치와 운영의 경험도 충분하다. 농업회의소는 농업인단체의 대의기관이 되기에 충분하다. 농단협을 포함해 농업인이 농정에 적극 참여할 수 있는 관문이기도 하다. 여러 농정공약이 있으나 무엇보다 농업회의소 설치에 각별한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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