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른가뭄이다. 본격 영농기를 맞이한 농어촌 들녘이 타들어가고 있다. 정부당국에 따르면 5월 31일 현재 농업용수를 공급하는 전국 저수지의 평균 저수율은 57퍼센트에 불과하다. 같은 시기 평년 저수율 73퍼센트에 견주면 그 심각성을 짐작할 수 있다. 전국 저수지의 저수율을 표시한 ‘가뭄지도’에는 경기 남부의 화성, 평택, 안성과 충남 서부지역 서산, 예산, 홍성이 ‘심각’ 단계에 들어섰다. 앞으로 열흘 지나도록 비가 오지 않을 경우 57곳, 스무날이면 123곳의 저수지가 바닥을 드러낼 것이란 예상이다.

이낙연 국무총리가 취임 뒤 첫 일정으로 가뭄현장을 찾았다. 이 총리는 1일 바닥이 쩍쩍 갈라진 안성시 소재 마둔저수지에서 피해상황을 보고받고 대책마련을 주문했다. 안성, 평택지역은 30년 만에 최악의 가뭄을 겪고 있다. 범정부 차원의 ‘통합 물 관리 상황반’도 꾸렸다. 같은 날 국무조정실장 주재로 상황반 회의를 열어 가뭄대책 추진상황을 점검했다. 가뭄피해지역에 대한 정부의 지원도 잰걸음이다. 농식품부는 브리핑을 통해 가뭄대책 116억 원, 저수지 준설사업 50억 원 등 모두 166억 원을 긴급 지원한다고 밝혔다.

앞으로가 더 걱정이다. 날이 갈수록 저수지 저수율은 뚝뚝 떨어지고 물을 댈 수 없는 지경에 이를 터인데 이렇다 할 방도가 없다. 속수무책이다. 이른모를 심은 논이 거북등처럼 갈라지고 잡초만 듬성듬성 남아있는 처참한 광경이라니, 모를 다시 키워 늦모내기를 할 수만 있다면 다행인데 그도 어려우면 벼농사는 아예 작파해야 하는 판이라니, 볏짚이나 비닐을 덮어 수분증발을 막는다고는 하나 제대로 크지 못하고 빌빌대는 작물은 또 어쩌라는 것인지 농업인의 속은 새까맣게 타들어가고 있다.

가뭄 끝은 있어도 장마 끝은 없다지만 요즘 가뭄은 큰비만큼이나 여파가 크다. 최근의 가뭄은 폭염과 고온 현상이 지속되면서 쉽게 끝나지 않기 때문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한반도가 ‘대가뭄’ 주기에 들어섰다고 진단하고 있다. 지구온난화와 한반도의 기후변화를 볼 때 당분간 가뭄이 계속될 것이라는 얘기다. 실제로 우리는 지난 2012년 이후 산발적인 가뭄피해가 끊이지 않았고 이태 전에는 극심한 가뭄에 시달려야 했다. 아열대기후에 가까운 기온 상승, 한파와 폭염 등 더 이상 이상하지 않은 이상기후와 함께 가뭄도 일상화된 듯하다.

사실 가뭄은 직접적 피해 못잖게 간접피해 혹은 후유증이 크다. 특히 장기간의 가뭄은 생태계를 흐트러뜨리고 농작물에 큰 해를 입힌다. 몽골, 중앙아시아, 호주, 아프리카, 아메리카 고원지대 등 지구 곳곳은 가뭄과 물 부족으로 사막화의 길을 걷고 있다. 땅은 광활한데 물이 없어 농업을 영위할 수 없는 곳이 점차 많아지고 있다. 호주는 극심한 물 부족사태를 겪고 있고, 중국 또한 식량 순수입국 처지에 놓였다. 가뭄은 물의 품질도 떨어뜨린다. 없어서 위기이고, 있어도 오염 가능성이 커 문제가 된다.

물 부족과는 조금 의미가 다르지만 가뭄의 피해를 열거해보면 그 심각성이 쉽게 와 닿는다. 기근, 영양실조, 탈수증, 농작물 병충해 증가, 용수부족으로 인한 산업위축, 생태계 파괴, 민물의 염분 축적, 환경오염, 전염병 창궐, 산불 빈발, 가축질병과 떼죽음, 토양침식으로 인한 사막화, 생활근거지 파괴로 인한 이주와 난민 양산, 식량 쟁탈전, 물과 천연자원 확보를 위한 전쟁, 불신과 사회 불안 등 일일이 열거하기도 벅찬 후과가 가뭄 끝에 있다.

요순시절은 치산치수에서 비롯한다고 해도 허언이 아닐 것이다. 가물어 민심이 도탄에 빠졌을 때 옛 임금이든 요즘의 대통령이든 누구라도 달려가지 않았던가. 이태 전 강화지역이 크게 가물었을 때 소방호스로 논에 물대기 시늉을 했던 이도 대통령이다. 출범 한 달이 채 되지 않은 새 정부는 인사만사 바쁜 와중에도 가뭄 극복에 심혈을 기울이는 태세다. 물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면 민심이 흉흉해지고, 수많은 문제가 발생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을 터이다.

삼라만상이 가뭄에 시달려 고사하기 직전이옵니다. 억조창생이 하늘을 우러러 단비를 갈구한 지 어느덧 반년이옵니다. 임금 된 자가 덕이 없으면 삼재팔난으로 나라를 괴롭힌다 하였으니, 혹여 소자 도의 부덕으로 인한 벌을 내리시는 것입니까. 여기 염천에 면류관, 곤룡포로 벌을 서오니 일체 허물을 도에게 내리시고 단비를 점지해 주옵소서. 과학을 숭상했던 세종이 즉위 5년, 서기 1423년 7월에 기우제를 지내며 읊은 축문이라고 한다. 도는 세종의 이름이다.

가뭄에 비를 바라는 기우제는 농경사회에서 매우 큰 행사였다. 관개시설이 발달하면서 기우제는 거의 사라졌으나, 그 이전에는 조정과 민간을 가리지 않고 거행하던 풍습이었다. 삼국시대 명산대천과 조상시묘에서 기우제를 지냈고 고려, 조선 당대에도 불교식 법회든 유교식 제례든 기우풍습은 국가대사요 민간신앙이었던 셈이다. 정초 줄다리기 전통도 ‘쌍룡상쟁’의 상징으로서 기우를 비는 풍습이며, 산에서 불을 지피는 ‘산상분화’도 양의 기운을 태워 음인 비가 내기를 기대하는 것이라고들 한다.

미국 서남부 그랜드 캐니언 끝자락 토착민인 호피 인디언들의 기우제는 백퍼센트 성공률을 자랑한다. 그들의 기우제는 비가 와야 끝나는 까닭이다. 현재 ‘급한 물’도 중요하지만 장기적인 대책, 대가뭄도 거뜬히 이겨낼 만한 물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기우제 백퍼 성공보다 유비무환이 더 낫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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