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리수거를 개인이 아무리 열심히 해도 최종 수거당국에서 모조리 허접한 폐기물로 처리한다면 분리수거를 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사하기로 결정하고 보니 지난 5년여 원래 살림에 보태진 각종 살림살이들이 엄청납니다. 종이박스나 신문지, 비닐봉지 등은 혹시나 쓸 용도가 있을 거라는 미래 예측으로 이곳저곳에 모아놓은 게 이렇게나 많은지 놀랄 정돕니다. 헛간은 물론 다용도실로 사용하는 방 두 곳에도 양파 망이나 매실 망 등이 가득합니다. 그러고 보니 시골살림이란 게 이처럼 언젠가는 쓸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쓰레기조차 버리지 못해 집안이 늘 어수선하고 지저분해집니다.

재활용품을 모아 버리는 나일론포대도 10여 개 구입하고, 50리터 쓰레기봉투도 몇 개 사와 집안 곳곳 쓰레기들을 정리하기 시작했습니다. 헛간 두 곳부터 정리하려고 시작해보니 5년 전 도시에서부터 이사 올 때 묶어 쌓아놓은 책 더미가 먼지를 뒤집어쓴 채 곰팡내를 풍기고 있습니다. 펼쳐 묶어놓은 종이박스가 가득하고, 패트병이나 유리병 따위들을 모아놓은 포대자루도 여기저기 자리를 잡고 있어 어디서부터 처리해야 할지 난감할 정돕니다.

일주일에 한 번만 쓰레기를 수거해가니 일단은 끄집어내는 내는 대로 승용차로 몇 번에 걸쳐 수거 지정장소로 날랐습니다. 모르긴 해도 이 동네에서 이처럼 다량의 재활용품과 쓰레기가 한군데 쌓이기는 흔치 않은 일일 겁니다.

5년이란 시간이 추억도 만들었지만 비례해서 삶의 찌꺼기도 이처럼 많이 남긴 겁니다. 지정된 수거장소 옆에는 산불감시초소가 있습니다. 제가 승용차로 쉬지 않고 쓰레기를 날라다 놓으니 근무하는 이도 놀란 얼굴입니다.

망가진 철제의자는 물론 플라스틱 보관함도 다 버려야 될 물건들입니다. 하루해가 저물도록 끄집어내고 정리했지만 헛간 한군데도 다 치우지 못했습니다. 예기치 못한 문제는 플라스틱 보관함에 있던 카세트테이프를 잘 살펴보지 않고 재활용품 포대에 쓸어 담은 데서 시작됐습니다. 시 청소차가 원래 수거하는 날이 매주 월요일이었는데 그날은 무슨 일인지 화요일에 수거해갔고, 그날따라 헛간에서 내온 플라스틱 보관함을 열어보던 집사람이 카세트테이프를 어쨌느냐며 무섭도록 화를 내서 어안이 벙벙할 정도였습니다. 그 테이프는 아이들이 어렸을 때 옹알이를 하는 소리는 물론, 서너 살 무렵 엄마와 종알대는 목소리까지 녹음돼 있는 테이프라며 당장 청소차를 세워 찾아오라며 소리소리 질러대니 어쩌겠습니까. 집사람의 이런 모습이 이해는 되지만 한편으론 그처럼 귀중한 테이프라면 집안에 잘 보관할 일이지 헛간에 방치한 게 잘한 일이냐고 맞받아 소리쳐 보지만, 그만 꼬리를 내리고 수거해간 청소차를 수배하기로 했습니다. 가까운 주민센터와 시청에 간곡하게 부탁하니 몇 차례에 걸쳐 이사람 저사람과 연결하더니 지금 청소차가 쓰레기 매립장에 도착해 아직 쏟아 붓지는 않았으니 빨리 가보면 찾을 수도 있을 거라고 알려주더군요.

유명한 해수욕장으로 가는 길에 표지판으로만 봤던 쓰레기 매립장은 산꼭대기에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고속도로 인터체인지로 향하는 넓은 도로변에서 산으로 올라가는 길은 바다를 내려다 볼 수 있는 좋은 풍광을 보여줬지만 마음이 급한 저는 아름다운 풍경도 뒷전이었습니다. 마침 점심시간이어서 청소차 기사는 식사중이라며 기다리라고 합니다.

사무실을 나와 매립장으로 향하는 청소차 뒤를 따라 어마어마하게 넓은 매립장으로 나가 차를 세우니 온갖 쓰레기들이 산더미를 이루고 있고, 수 십 마리는 족히 될 까마귀와 들 고양이들이 쓰레기더미를 뒤지고 있는 풍경은 공포영화의 한 장면이 따로 없을 정돕니다.

분리수거했던 포대자루도 매립장에 아무렇게나 내동댕이쳐지니 시골에서 분리수거는 괜한 짓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기사의 말로는 시내와 달리 시골은 분리수거 포대든 쓰레기봉투든 농촌폐기물로 여겨 한몫으로 처리된다는 말에 허탈한 마음마저 듭니다. 쏟아낸 쓰레기더미에서 두 시간여에 걸쳐 맨손으로 카세트테이프를 찾고자 미친 사람처럼 뒤졌지만 결국 깨진 병조각에 손을 다치고 온몸은 시커먼 먼지를 뒤집어 쓴 채 돌아설 수밖에 없었습니다. 몸도 마음도 쓰레기처럼 버려진 하루였습니다.
저작권자 © 농업인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