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김춘수 시인의 <꽃>이라는 시의 전문이다. 1952년에 발표되고 이듬해 펴낸 시집에 수록됐다. 모두 네 개의 연으로 구성됐는데, 문장으로 이어붙이니 무척 짧다. 짧은 만큼 강렬한 것인가, 이 시는 한국어 교과서에도 실리며 많은 이의 사랑을 받았다. 연시로도 쓰임이 많았으니, 학창시절 연애편지에 필사하거나 사랑하는 이에게 꽃 선물과 함께 한 번쯤 읊었음직도 하다.

사실 <꽃>은 사물과 언어의 관계, 존재와 이름의 관계를 깊이 사유하고 있다. 시를 평하는 이들의 분석은 가끔 유용하다. 학교에서도 <꽃>의 꽃은 감각적 실체가 아니라 관념 혹은 개념으로서의 꽃이라고 가르친다. 꽃은 무엇인가, 꽃은 어떻게 존재하는가 하는 물음이며 철학적 해명이라는 설명이다. 특히 이름을 지어 부르는 인간의 ‘명명행위’ 혹은 언어를 떠나서 사물은 존재할 수 없다는 인식론적 세계를 노래한다는 것이 <꽃>에 관한 정평이다.

뜬금없기도 하다. 갑자기 <꽃>을 떠올리다니. 실은 오월, 오월의 광주, 대한민국의 오월을 잊을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무엇이라고 부르든 오월 광주는 우리 모두에게 꽃이다. 내가 그 이름을 불렀을 때 나의 꽃이 되는, 서로에게 잊히지 않는 눈짓이 되고 눈물이 되는, 그리하여 존재하는 꽃인 것이다. 8·15광복, 4·3제주이듯 5·18광주는 ‘개별’ 꽃이 아니라 ‘우리’ 꽃이요 민주화운동의 꽃이다.

엊그제 광주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열린 제37돌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은 적잖이 새롭다. 우여곡절을 겪으며 부르지 못했던 노래 <임을 위한 행진곡>을 유족과 대통령, 참석자들이 제창했다. 9년만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기념사도 유족을 비롯한 대다수 국민의 호응을 얻었다. 5월 18일 당일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순위에는 5·18 기념식, 대통령 기념사, 임을 위한 행진곡 등 관련 낱말이 내내 상위에 올랐다. 그만큼 많은 국민의 관심이 집중됐다는 얘기다. 많은 이가 오월 광주를 불러준 것이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 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동지는 간 데 없고 깃발만 나부껴. 새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 깨어나서 외치는 뜨거운 함성.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임을 위한 행진곡>은 1980년대 말부터 민주화운동 집회를 열 때 선열에 대한 묵념과 함께 의례적으로 부르는 노래가 됐다. 1980년 5월 광주 ‘사태’의 진실이 조금씩 드러나고 ‘민주화운동’이라는 이름을 얻기 시작한 시기와 같다.

문 대통령의 기념사도 큰 반향을 일으켰다. 구구절절 심금을 울리고, 그간 가슴 아팠을 유족을 위로하기에 부족하지 않은 명연설이라는 평이다. 그는 5·18을 ‘국가권력이 국민의 생명과 인권을 유린한 우리 현대사의 비극’이라면서도 ‘이에 맞선 시민들의 항쟁이 민주주의의 이정표를 세웠다’고 강조했다. 아, 얼마나 명쾌한가. 꽃을 꽃이라 부르고 꽃잎을 꽃잎이라 부르는, 이 당연한 명명행위에 왜 그리 많은 사람들이 환호하고 감동하는가. 우리는 이름을 불러 존재를 확인하고, 동시에 제 스스로도 존재감을 체험하는 것이리라.

압권은 아마도 ‘오월 영령의 넋을 위로하며 자신을 던진’ 젊은이들을 직접 거명한 것일 게다. 1982년 광주교도소에서 광주진상규명을 위해 40일 간의 단식으로 옥사한 스물아홉 살 전남대생 박관현. 1987년 ‘광주사태 책임자 처벌’을 외치며 분신 사망한 스물다섯 살 노동자 표정두. 1988년 ‘광주학살 진상규명’을 외치며 명동성당 교육관 4층에서 투신 사망한 스물네 살 서울대생 조성만. 1988년 ‘광주는 살아있다’ 외치며 숭실대 학생회관 옥상에서 분신 사망한 스물다섯 살 숭실대생 박래전. 대통령은 그렇게 꽃을 불렀고, 그 존재를 확인한 국민들은 눈시울을 붉혔다.

우리는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서로에게 잊히지 않는 존재가 되고 싶다. 엉뚱하게도 5·18 기념식을 보며 11월 11일 농업인의 날을 떠올렸다. 국가기념일이다. 기념할 성격이 다르기는 하지만 이름을 붙이고 이름을 불러주기를 바라는 마음은 같을 것이다. 대통령이 오월 광주를 불러주었듯 이 땅 농업인과 농업, 농촌을 불러줬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관심과 사랑은 역사적 진실에 다가서는 징검돌이 되기에 충분하다.

농업과 농촌을 지켜온 농업인들은 어찌 보면 대한민국 ‘개국공신’이요 국가위기마다 구원 등판한 ‘구국전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일이 거론하지 않아도 많은 이들이 인정하는 바이다. 그럼에도 늘 희생하고 손해 보는 존재로 치부해버린다. 이 또한 일일이 거론하지 않아도 아는 이는 다 안다. 꽃이 있고, 그 꽃이 화원을 아름답게 가꾸는데 관심을 두지 않는다면 이 얼마나 억울하고 서글픈 일이겠는가. 요즘 문 대통령의 행보로는 살짝 기대해볼 만도 하다. 농업인은 농업인이 되고 싶다, 그 이름을 불러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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