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편물 함에 농업기술센터가 발신인으로 돼 있는 편지봉투가 꽂혀있어 개봉하니 밭농사 직불금을 신청하라는 공문과 신청방법 등이 기재돼 있었습니다. 논농사나 밭농사 직불금에 대해 실상 별다른 관심도 없었을 뿐더러, 대규모 농사를 짓는 이들이나 목돈이 되지 저처럼 임차해서 작은 규모의 밭을 일구는 사람에게는 귀찮기만 한 일일 수도 있어 그동안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일이었습니다.

㎡당 밭직불금이 45원이니 평당(3.3㎡)148원50전, 제가 임차해서 밭작물을 재배하는 면적이 대략 600평쯤 되니까 얼추 계산해 봐도 89,100원 정도는 받을 수 있을 것 같아 한번 신청이나 해볼까라는 마음으로 일단 직불금 신청을 받고 있는 주민센터를 방문했습니다.

동네별로 일정 일시를 정해 기술센터와 농산물품질관리원이 합동으로 신청을 받고 있어, 지정된 일시에 신청치 못하면 기술센터나 삼척에 있는 농산물품질관리원까지 가야되는 불편함 때문인지 상당히 많은 이들이 북적거리고 있었습니다. 일단 접수창구에서 이름을 대고 기술센터에서 미리 작성한 관련서류를 받아 대기하고 있으면 처리 순서에 따라 금액이나 지불시기 등이 결정되는 방식이라 꽤 시간이 걸렸습니다. 신청하는 이들 대부분이 연로하신 분들이 일처리가 빠르게 진행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제 순서가 돼 담당직원과 얼굴을 맞대고 상담을 시작하면서부터 일이 꼬이기 시작했습니다. 집에서 나올 때 임대차계약서 사본을 들고 나와야 한다고 생각하고는 그만 깜박 잊고 빈손으로 나왔으니, 처음부터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지 못한 겁니다. 물론 나중이라도 보완하면 아무 문제가 없는 일이긴 했습니다만, 다음 순서에서 그만 마음이 상해버렸습니다.

인구에 회자되고 있는 문제의 테블릿PC로 위성사진을 띄워 집이 차지하고 있는 부분과 임차한 농지의 위치까지 보여주면서 농지 원주인이 증여를 받은 땅인지, 상속을 받은 땅인지 알아야 나중에라도 제가 떠나고 나서 원주인이 피해를 입지 않는다는 설명 때문이었습니다. 지금이야 저는 신청하고 계좌번호 알려주면 직불금을 수령할 수 있지만, 나중에 원주인이 증여받은 땅이라는 게 밝혀지면 농지 원주인은 직불금을 수령할 자격을 상실하게 된다는 겁니다. 아니 땅주인이 증여받은 건지, 아님 상속받은 건지 그게 왜 중요한 사항인지는 설명이 부족한 상태에서 무조건 땅주인과 통화해보고 그 사실 여부를 확인해갖고 오라니, 결국 임차인에게 직불금을 지급하면 골치 아픈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으니 사전에 차단하려는 의도인지도 모를 일입니다. 지금까지도 직불금은 받지도 받으려고도 하지 않았는데 새삼스럽게 계약도 만료되는 시점에서 괜히 직불금이나 받고나서 좋게 헤어지지 못하면 그것도 문제라 그 자리에서 직불금 포기라고 선언하고 확인서 한 장 받아가지고 나오고 말았지만 기분은 영 그게 아니었습니다.

일 년에 한 번 89,000여원을 정부로부터 받으면 안 받은 거보다는 낫겠지만 그렇다고 그게 또 얼마나 살림에 보탬이 되겠습니까. 애초에 신청을 하지 말걸, 괜히 신청하러 갔다가 기분이나 상해서 돌아오게 됐으니 뭐든 일을 시작할 때 신중하게 생각해야 된다는 진리가 새삼스럽습니다. 그런데 그 직불금이라는 게 높은 자리에 앉게 될 이들도 불법으로 타 먹어 청문회에서 낙마되는 사례가 가끔 언론에 보도되는 걸 보면 먹고 싶은 돈인 건 틀림없는 모양입니다. 하기야 농지규모가 몇 만평, 몇 십 만평 정도 된다면 얘기가 달라지게 됩니다.

얼핏 10만평이라고 가정해도 1480만 원이나 되니 만만치 않은 돈인 겁니다. 이러니 저처럼 임차해서 밭을 경작하고 있는 이들도 직불금에 눈독을 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집 뒤편 밭을 임차해서 쓰는 이도 밭 규모가 400여 평 정도인데 임대차계약서 들이밀고 직불금 신청을 했다면서 저보고도 그냥 신청하지 그러냐고 핀잔을 주더군요. 하기야 한 푼이 아쉬운 살림에 그래도 돈 십 만원이 어디냐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만 그냥 애초부터 없었던 돈이라고 생각하면 섭섭한 마음도 들게 없습니다. 직불금을 만든 원 목적이 농업인을 위한 것이라면 모든 농업인들이 골고루 혜택을 받아 억울한 이가 없도록 제도가 잘 운용되길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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