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야, 소설 좀 그만 써라. 쌀농사 고집하는 게 아니고 쌀농사 지을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똑바로 알고 써라.(아이디 위**) 거꾸로, 우리농업 망쳐서 쌀값도 제대로 못 받는 문제를 짚어야하지 않나? 수입쌀로 농민 다 죽어나는데.(처*) 쌀은 돈이 전부가 아니다. 우리 미래가 달린 일을 쉽게 이야기하는 건 맞지 않다. 식량독립이 얼마나 중요한지 아는가?(더*****) 쌀 대신 다른 것 짓고, 쌀은 수입할까요? 비용이 많이 들더라도 쌀 산업만큼은 지켜야 합니다. 대한민국 미래를 위해서라도.(G***)

최근 모 일간지 ‘쌀 직불금 2조 시대…수익성 최악에도 쌀농사 고집’이라는 제하의 기사에 달린 댓글들이다. 농식품부 출입기자가 쓴 것으로 보이는 이 기사는 포털사이트에서 한 때 ‘많이 읽은 기사’ 상위에 오르기도 했다. 기사를 요약하면 이렇다. 쌀농사 수익성이 3년 연속 하락해 역대 최저를 기록했는데 이는 쌀 소비가 급감하는데도 쌀농사를 고집한 결과로 보인다, 재고가 쌓여 쌀값이 하락했고 그만큼 정부가 농가에 주는 직불금 규모는 기하급수로 늘어 지난해 2조3천283억 원에 달한다.

기사말미에 덧붙은 한 단락은 누가 봐도 주견이 짙다. ‘정부가 직불제를 통해 농가 손해를 보전해주는 탓에 과잉생산과 쌀값 하락이라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정부의 예산 퍼주기가 농가의 모럴해저드를 키우고 있다는 얘기다.’ 행간에 숨은 뜻을 찾아볼 일도 아니다. 직불제도를 대놓고 중상모략하고 농가를 모함한다. 농가 손해를 정부가 보전해주기 때문에 악순환이 이어진다니, 대부분 국가에서 정당하게 운용하는 직불제도를 ‘정부의 예산 퍼주기’라니, 그것이 농가의 도덕적 해이를 키우고 있다니.

끓어오르는 열불을 짓누르며 기사를 일독한 후 댓글을 살폈다. 공감순서로 된 댓글 첫머리가 바로 ‘기자야, 소설 좀 그만 써라’이다. 그 뒤를 잇는 댓글 대개가 기자의 무지를 꼬집거나 쌀농사를 지을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지적하고, 예산이 많이 들더라도 쌀 산업은 반드시 지켜야한다거나 쌀을 수입하는 정부가 잘못이라고 논박하고 있다. 그 중 스스로 농민이라고 밝힌 댓글도 많은 공감을 얻었다. ‘농민입니다. 2013년 40킬로 나락 판매가격이 57000원, 2014년 52000원, 2015년 45000원, 2016년 35000원. 직불금 안 받으면 농사지을 사람 있을까요? 일만 미친 듯이 하고 직불금 받아 빚 갚았네요. 농민이 천덕꾸러기입니까?’(김**)

농민이 천덕꾸러기입니까? 실로 가슴 먹먹해지는 반문이다. 언제부터 이렇게 농업과 농업인을 경시하고 홀대했던가, 뼈아프다. 나라가 위태로울 때, 백성이 어려울 때 든든한 울타리가 되고 훈훈한 이웃이 된 농업이요 농업인이 아니던가. 사실 누구보다 더 힘들고 어려워도 농업인들은 내색 없이 농촌을 지켜왔다. 자식 보듬듯 넉넉한 품으로 도시를 싸안고, 못난 소나무가 선산을 지키듯 농촌에 붙박였다. 식량자급으로 굶주림을 벗어나게 한 녹색혁명, 사계절 신선한 먹을거리를 제공하게 된 백색혁명, 외환위기 때 허리띠 조여 재기의 발판을 마련한 기초산업. 농업과 농업인은 그 자긍심으로 버텨왔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데 천덕꾸러기라니.

4월 4일은 24절기 중 다섯째인 청명이다. 이튿날은 식목일이자 한식이다. 동지로부터 105일째 되는 날인 한식은 대개 청명과 같은 날이거나 하루 앞뒤에 선다. 그래서 ‘청명에 죽으나 한식에 죽으나’ 하는 속담이 있다. 농사력으로는 춘분과 곡우 사이에 있는 청명 무렵 겨우내 허물어지거나 흐지부지된 논두렁밭둑을 손보는 등 농사를 시작한다. 세시풍속으로는 논밭뿐 아니라 집 안팎, 조상 묘까지 손질하는 날이기도 하다. 농사든 풍속이든 새로운 기운으로 다시 시작하는 절기가 청명이자 한식인 것이다.

찬밥을 먹는다는 한식의 유래를 좇다보면 기원전 춘추시대에 가 닿는다. 가깝게는 우리 세시풍속도 알 만하다. 조선후기 <동국세시기>나 <열양세시기>에 따르면 한식 무렵 새 불을 나눠주는데, 묵은 불을 끄고 새 불을 기다리는 동안 밥을 지을 수 없어 찬밥을 먹는다고 해서 한식이라고 했단다. 불을 하사한다는 의미로 사화(賜火) 혹은 바꾼다는 뜻으로 개화(改火)라고 한다. 버드나무와 느릅나무를 비벼 새 불을 일으켜 임금에게 바치면 임금은 정승판서 문무백관 고을수령에게 나눠주고 고을수령은 이 불을 백성과 나눴다고 하니, 온 백성이 한 불을 씀으로써 운명공동체를 이루는 셈이다.

춘추시대 진나라 개자추 이야기는 드라마틱하다. 희씨 진나라 문공의 이름은 중이. 아버지 헌종이 여희에 빠져 태자 신생을 죽이자 동생인 중이는 피신해 19년을 타국에 떠돌았다. 이때 도려낸 제 허벅지살로 탕을 끊여 아사위기에 처한 중이를 살리는 등 지극정성으로 보필한 이가 바로 개자추. 중이가 떠돌이 삶을 끝내고 왕에 즉위한 직후 논공행상을 통해 조정을 꾸리는 과정에서 충신 개자추를 잊고 말았다. 입신하지 못하게 된 개자추는 입산을 택한다. 홀어머니를 모시고 면산 깊숙이 숨어버렸다. 뒤늦게 상황을 안 진문공이 사람을 보내 입궐을 요청했으나 거부하고, 개자추의 하산을 기대하며 면산 삼면에 불을 질렀으나 이마저도 통하지 않았다. 결국 개자추는 노모와 함께 불에 타죽었다. 애통한 진문공은 이날 불 때기를 금하고 찬밥을 먹도록 했다고 전해진다.

혹자는 이를 ‘개자추 콤플렉스’로 칭했다. 내가 이만큼 해줬는데 은공을 알아주지 않으니 얼마나 억울한 일인가, 그렇다고 보답을 바라고 한 양 충심을 깎아내리면 그 또한 억울하기 짝이 없다. 일종의 보상심리와 보상이 이뤄지지 않았을 때 보이는 이차 심리를 보편화해 이해하려는 시도로 ‘콤플렉스’를 붙였다. 농업인의 억울함이 이와 같지 않을까, 찬밥을 먹으며 곱씹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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